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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환자가 몇 명 되지 않아서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처음 왔는지 알 수 있는 것일까.
목소리 또한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분홍색의 매니큐어가 정갈하게 칠해진 긴 손가락으로 마동 앞에 있는 키보드를 손짓하며 마동에게 의료보험을 적용시켜야 하니 주민등록 번호의 앞부분을 기입하라고 했다. 분홍색이 칠해진 손톱이 몇 번 마동의 눈앞에서 휘이익 움직이는가 싶더니 홀로그램으로 스크린이 나타났다. 홀로그램 안에 커서가 깜박이며 마동의 기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종종 보던 모습이다. 아직 상용화가 되기에는 먼 기술인데, 여기, 이 내과에서는 홀로그램으로 고객과 소통을 하고 있다니. 이 작은 병원은 무엇일까.
마동은 고개를 들어서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잃지 않고 간호사는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미소는, 다 알아요, 처음 오셨죠? 처음이면 이곳에 기입을 하셔야 합니다, 하는 미소였다.
오늘은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군.
마동은 키보드로 자신의 생년월일과 이름과 주소를 기입했다. 홀로그램은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저희 병원은 처음이시라고요?”
의사는 젊었다. 사십 대 초반도 안 돼 보였다. 머리카락이 유난히 짙고 검었다. 코가 올곧았고 입술의 색이나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고 좋았다. 메이크업 전문가 몇 명이서 들러붙어서 쿵딱쿵딱하며 자연스러운 풀 메이크업을 해 놓은 것처럼 깔끔했다. 얇은 은색 안경 속의 눈이 아주 또렷하게 흰자위가 대단히 하얗다. 어린아이들의 눈동자만큼 맑았다. 이런 사람은 여자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결혼을 했든 간에 말이다.
“네, 처음입니다.” 신뢰감이 묻어나는 의사의 목소리에 비해 마동의 목소리는 종이 사이를 관통하는 바람소리 같아서 듣기 싫었다.
“감기 증상 때문에 오셨다고요. 자세하게 한 번 들어볼까요.” 차트 같은 종이에서 맑은 눈동자의 시선은 마동에게로 옮겨왔다. 조금 오랫동안 의사는 마동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동은 어쩐지 살짝 부끄러웠다. 의사의 시선은 부드러운 가시처럼 마동을 찔렀다. 작은 플래시를 들고 마동의 동공을 확인하고 목 안을 들여다보았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심박 수를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정교한 손놀림으로 정확하게 이뤄졌다. 청진기를 마동의 가슴에 대고 나서 광고 한 편이 지나갈 만큼 있었다.
이런 건 빨리 끝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간 병원을 너무 등지고 있어서 병원의 내부진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의사는 천천히 청진기를 마동의 가슴에서 떼고 차트에 흘림체의 영어로 무엇이라 갈겨 적었다. 옆에서 분홍간호사(그렇게 부르기로 마동은 생각했다)가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한 명뿐인 간호사인데 대기실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 마동은 간호사가 신경 쓰였다.
“증상이 어떤지 한 번 들어볼까요.” 의사는 역시 천천히 청진기를 접으며 마동에게 증상을 요구했다.
“뭐랄까 몸이 아주 무거운 느낌입니다. 무기력한 듯하구요. 머리가 아픈 건 아닌데 머릿속에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마동은 찬물 한 모금 마실 만큼의 뜸을 들인 후 다시 증세를 말했다.
“마치 소화가 아주 안 되는 느낌인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음에도 이런 증상이라는 게 더욱 신기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조깅을 하고 흘린 땀을 깨끗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주기 때문에 감기기운이 올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마동은 껄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는 마동의 증상을 경청해 주었다.
진심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