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6

126

by 교관


126.


샤워를 끝내고 방에 가서 라디오 헤드의 ‘엑시트 뮤직’을 틀어놓고 노래를 들으며 시원하게 잠이 들어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뜬 내일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생각처럼 돌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 역시 마동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니 욕실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물을 잠그고 큰 타월로 몸을 감고 소파에 앉아서 나머지 물기를 닦아냈다. 태양의 열기 속에 바짝 마른 수건으로 마지막 물기를 닦아냄과 동시에 피곤함도 수건에 완벽하게 닦여 버렸다. 베란다로 밤의 기운이 몰려와서 거실의 문을 두드렸다. 태양이 저 멀리 아주 작아진 모습으로 보이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하늘에는 어느새 달과 태양이 공존했다가 찰나의 순간에 태양이 사라짐과 동시에 마동의 몸에서 피곤도 싹 빠져나갔다. 순식간이었다. 스콜기후에서 비가 내리는 장면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몸살기운이 빠져나가는 경계가 확실했다. 오늘밤도 불면으로 밤을 꼬박 보낼 것이라는 걸 알았다. 태양이 사라진 후에도 마동은 거실의 불을 켜지 않았다. 밤이 찾아와 거실에 불을 밝히지 않아도 여름밤의 혼탁한 어둠에 적응이 되고 나면 태양이 쨍쨍한 낮보다 오히려 눈앞의 것, 그 이상을 보게 된다. 하늘에 떠 오른 달은 컴퍼스로 그려놓은 듯 아주 동그랗다. 눈에 보이는 달은 쟁반처럼 크게 보였다. 그 큰 달의 표면에 사람의 실핏줄처럼 검은 결이 안타깝게 드러났다.


여름에도 달이 이렇게 크게 보이는 것일까.


추석을 지나 겨울초입의 밤 거대한 곰처럼 크고 신비로운 자태의 달이 얼굴을 내밀지만 여름에는 아니었다. 아, 어쩌다가 수퍼문이 하늘에 떠올라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대체로 수퍼문을 볼 수 있었던 계절이 가을보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니 정말 기억은 제멋대로다. 여름에 큰 달이 떠오르지 않지만 여름의 기억 속에는 당당하게 수퍼문이 존재해 있었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달 역시 크고 아름답고 풍성했다. 마동은 실제로 수퍼문을 본 적은 없었다. 그저 뉴스를 통해서 거대한 달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좁은 거실에서 바라보는 한여름의 달이 이렇게 컸구나.


달에 대한 생각에 곰곰이 잠겨 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달에게 시선을 박고 한참 보던 마동은 일어나서 전신거울 앞에 섰다. 윗옷을 벗고 배를 보았다. 거실의 불을 켜지 않고 달빛만으로 비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몸의 선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배에 드러난 확고한 복근이 아름답게 보였다. 배에는 선명하게 근육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스팩 사이사이에 잔잔한 골을 만들어낸 잔 근육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고 마동은 근육에 손가락 끝을 대고 서서히 움직임을 느껴보았다. 실제였다.


변이 하기 전에는 없던 근육이었다. 전신을 비추는 거울 속에는 승모근과 흉근에 근육이 자리를 굳건히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동의 눈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모든 근육들이 자리를 잘 잡았고 몸을 움직이기 쉽고 용이하게 근육이 배치되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최상의 신체 상태로 유지해 주었다. 마동은 근육의 움직임을 좀 더 강력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팔을 들어서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탐색했다. 몸을 비틀어 보기도 했고 왼쪽 팔로 오른쪽 어깨를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은 마동 자신의 모습이지만 거울 속의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세세하게 근육이 드러나는 몸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거울을 보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여보았다. 영화 ‘미러’에서 자신이 허리를 굽혔을 때 거울 속의 자신을 닮은 상이 허리를 구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천천히 허리를 굽히다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하는 생각에 마동은 굽히려던 허리를 다시 폈다. 다리의 근육을 풀었고 허리를 서서히 힘 있게 돌렸다. 팔에 힘을 주고, 배에 힘을 주고 상체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근육의 틈으로 잔 근육이 갈라지고 달이 만들어내는 천연 조명을 받은 마동의 신체는 오래전부터 근육의 운동을 골고루 한 몸처럼 탄탄하고 긴장이 잔뜩 가해져 있었다.


근육의 덩치가 너무 커버려도 몸의 움직임이 둔하기 마련이다. 마동이 매일매일 하는 조깅을 통해서 근육 양은 많지 않았고 근육의 덩어리도 크지 않아서 호리 한 몸을 유지했다. 마동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서서히 근육을 만들어야 하는 근력운동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을 근래에 들어서 많이 했다. 지금 거울을 통해서 보는 근육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었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부분의 근육도 자리를 잡고 발달되어 있었다. 거울 속에 보이는 근육은 달리기만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모습의 근육이었다. 다이어트식단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준수해서 근력운동을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씩 투자를 해야 나올 수 있는 근육들로 마동의 몸은 무장이 되어 있었다.


몸이 안 좋았던 낮에는 분명하지만 이런 질 좋은 피지컬이 아니었다. 근육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gym에서 하는 근육 펌핑을 해도 이렇게 야생마 같은 근육은 단시간에 만들 수는 없다. 그렇지만 완벽한 근육의 모습은 마동의 마음을 결락으로 이끌었다. 완벽함을 사람들은 추구하지만 완벽함을 이룬 다음에는, 그다음은……. 다음이란 없다. 음악도 완전하지 못한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이 꾸준하게 들을 수 있다. 완벽함으로 다가가려는 과정이 가져오는 충족한 마음이 필요한 것이지 완벽함을 가지게 되면 이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피가 나고 살을 깎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추락하는 길이 완벽함 다음에 오는 수순인 것이다.


거울에 비친 마동은 자신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은 완벽한 몸이라는 것이다. 완전한 체제를 이루고 있는 몸은 더 이상의 무엇도 될 수 없기에 무서웠다. 그런 몸이 마동이 보는 맞은편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완벽함이 바로 마동의 무의식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이었다. 병원에서 만들어준 약을 먹기 전까지 몸살이 심해서 정신이 멍하고 속이 울렁거려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베란다를 통해서 밖으로 뛰어 내려가도 될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달릴 것이다. 마동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입 꼬리가 생각과는 다르게 살짝 올라갔다. 빠르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긴 거리를 조깅할 것이다. 이미 마동의 마음은 바닷가를 힘 있게 달리고 있었다.


거울 속에 있는 마동은 거울 밖의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달빛만으로 보이는 거울 속 무의식의 눈동자는 마동의 눈동자와 다른 빛을 띠고 거울 밖에 있는 마동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다. 미흡하게 갈색 빛을 띠는 눈동자를 지닌 마동이 거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거울 속의 마동과 닮은 상은 마동에게 무엇에 대해서 전달하려고 했다. 거울 속 무의식의 마동은 눈동자가 갈색에서 벗어나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울에 가까이 갈수록 푸른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계속]

keyword
이전 08화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