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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176

by 교관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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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지내왔는가. 누군가는 나에게 이타적이지 못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동안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향한 비방이 도의를 넘어서는 것을 많이 봐왔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채워졌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자본주의사회 아닌가. 자유연애를 하며 원하는 것을 버튼을 눌러 가지는 자동판매기의 세계인 것이다. 눈앞의 것을 보는 타인들에 비해 나는 그 너머를 보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때 기억이 사라져 버린 사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일이 제일 영향이 많았다.


그 사고 내지는 사건은 나를 바꾸어 놓았다. 사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크게 바뀌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나만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에 늘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고 고통을 겪는다.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타인이며 결국 타인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쩐 면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런 경의가 없다는 말이다. 하나의 개체에서 벗어난 수를 생각해 본다면 세상의 이면에는 한 면을 제외한 또 다른 어떠한 면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때로는 ‘제시’라는 부분에서 막히는 경우가 있다.


말로 할 수 없는 애매한 경우도 있다. 저기 보이는 남녀의 모습이나 가족의 모습을 사랑이라고 정의를 하면 그저 달콤함을 유지하거나 지켜내기 위해서 막중하게 큰 저항이 사랑 속에서는 가득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 책임이라는 묘한 감정이나, 비슷하지만 보이지 않는 형태를 알았을 때는 이미 시간을 달려와 늙어 버렸다거나 사랑이라고 하는 위대한 모순으로 인해 누군가를 잃어버렸을 때이다.


사랑, 그것은 만질 수 없는 감촉의 질이 좋다는 것을 안다.

사랑, 그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심안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촉촉하고 달달하지만은 않지만 혀로 느껴지는 맛이다.

사랑, 그것은 아픔의 또 다른 이름이다.


체험으로, 몸으로 알 수 있는 그것. 나는 그동안 애써 사랑을 외면하면서 지내왔다. 사랑을 하게 되면 타인에 대해서 비방을 하는 경우를 만나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사랑을 나눈다는 거, 나에게는 보통의 일은 아니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밤꽃냄새가 났다. 여름이 지나고 밤나무 근처에 가면 저녁의 냉랭한 공기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밤꽃냄새가 여기저기서 안개처럼 퍼졌다. 밤꽃냄새는 연약했지만 생기를 품었다. 달이 빛을 발하고 해면의 조개들이 큰 소리로 울었다. 밤꽃냄새는 기억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마동은 기억이 뒤죽박죽에다가 떨어져 나가 버린 깨져있는 기억이 많았다. 마동의 눈앞에 어떤 광경이 나타났다. 보이는 저 광경이 마동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마동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마동의 인격과 기억의 배열이 재구성되어서 배치가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마동을 이루고 있는 에고가 어딘가로 실뱀장어처럼 기어서 달아난다.


에고는 달아나면서 몸이 작아져갔다. 점점 작아지더니 완두콩만 한 작아져 버리고 에고가 섰던 자리에 또 다른 에고가 몸집을 부풀리더니 작아진 원래의 에고를 어딘가에 집어넣어 가둬버린다. 원래의 에고는 겁이 많고 가녀린 몸이었고 원래 에고가 지니고 있던 인격은 새롭게 자라난 에고와 의식을 공유하지 못할 터였다. 원래의 작은 에고는 어딘가에 갇혀서 꺼내 달라고 말하지만 새로운 에고는 그 말을 무시했다.


새로운 에고는 기형적으로 덩치가 점점 커졌다. 표정도 없고 무시무시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얼굴이었다. 새롭게 자란 에고는 발을 바닥에서 떼더니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걸어가는 모습이 설인이 무릎까지 오는 눈밭을 걸어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에고가 걸어간 곳에는 작은 공터가 있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놀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인지 새로운 에고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작은 공터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기에는 턱없이 작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작은 공간의 중간에 모여 앉아 재잘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무엇인가 만지기도 했다. 새로운 에고는 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은색의 철제 큰 바구니에 담겨있는 무엇인가를 만지고 입에 넣어서 씹어 먹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도넛이었다. 요즘처럼 여러 종류의 맛과 초콜릿이나 딸기시럽이 듬뿍 들어있는 식감이 좋고 입맛을 돋게 하는 도넛이 아니라 그저 중간이 뻥 뚫린 밀가루 빵에 설탕이 발린 단순한 도넛이었다.


주위는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집들이 보이고 집들의 오늬무늬 벽이 아주 오래되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낡은 가구처럼 허름한 벽돌로 쌓여있는 벽에는 정의할 수 없는 페인트 색이 무늬에 걸맞지 않게 칠해져 있다. 집들은 낮았고 기왓장이 지붕에 덮여있거나 옥상이 보이는 대부분의 집들이 공터를 에워싸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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