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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9.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5

제목미정

2-5


https://brunch.co.kr/@drillmasteer/3996


그럼 저것이 우시카와의 그림자란 말인가?


그건 저도 잘 모릅죠. 저따위가 그렇게 깊이 있는 것 따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림자가 아니라 본체 일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하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저 사람은 하나를 잃어버림으로 해서 삶의 한 부분이 깡그리 망가진 것 같군요. 무엇보다 잃어버린 쪽이 본체인지는 모르나 그 잃어버린 쪽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겁니다. 그 어떤 세계에도 도달하지 못하게 되면 저렇게 허상으로 존재합니다.


그럼 영원히 저렇게 존재하는 거야?


설마요. 이 세상에 영원히라는 건 없습니다. 형태를 지닌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나 생명이 붙은 것이나 생명이 없는 것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맙니다. 영원히 저런 모습일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형태가 일그러지거나 없어집니다.


우시카와는 그날 208209 술집에서 화장실에 간다고 한 후에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라진다는 건, 죽는다는 건 어떤 관념인지 너무나 혼란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가족과도 완전히 벌어졌지만 그렇지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생활을 했던 이곳에 미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 미련이 모여서 우시카와의 그림자는 여기에 머물게 했을지도 모른다. 우시카와는 멍하게 어딘가를 바라보지만 이곳에 남겨 놓은 그림자는 이곳을 떠나기 싫은지도 모른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제일 꼭대기 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7층까지 올라가다가 5층과 6층 사이에 머물렀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내렸다.


내리세요, 저의 숙소는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시나가와 원숭이가 말했다. 나는 한 번 둘러보고는 따라 내렸다. 이곳은 호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5층과 6층 사이에서 지내고 있습죠. 다른 층에 있으면 사람들과 자주 마주쳐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난처한 일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저는 이곳에 좋습니다. 예전에 묵었던 료칸의 숙소에서처럼 쥐가 나오지 않아서 아주 만족합니다.


복도는 길었다. 어두웠다. 평소 호텔을 밝히는 전등은 없었다. 축축했고 습한 냄새가 났다. 마치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복도를 걸어도 긴 복도만 나올 뿐 방은 없었다. 복도의 끝에서 시나가와 원숭이는 어두운 벽면에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문이 열렸다.


자, 들어오시죠.


시나가와는 소파를 권했다. 소파는 작은데 앉으니 딱 맞았다. 이 장소가 가지는 어떠한 재능 같았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어딘가에 난 문으로 들어가더니 5분 정도 있다가 나타났다.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고 그 위에는 크라운 병맥주 큰 것으로 두 병과 컵 두 개와 피스타치오가 있었다.


헤헤, 계산은 손님 앞으로 올려놨습니다. 괜찮으시죠?라고 말하는 시나가와 원숭이에게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카타 씨에게 줄 요량으로 포장을 해왔던 열목어 구이를 시나가와 원숭이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먹었으니 시나가와 원숭이에게 먹으라고 했다.


오, 이렇게 맛있는 것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열목어 포장을 뜯는 동안 나는 맥주잔에 맥주를 따랐다. 좋은 소리가 났다. 나는 맥주잔 하나를 시나가와 원숭이에게 건넸다. 그는 맥주를 맛있게 꿀꺽꿀꺽 마셨다. 역시 좋은 소리가 났다.


이 열목어는 참 맛있군요. 혹시 참새집 식당의 음식입니까?


그곳이 어디야?


할머니 한 분이 하는 식당인데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저에게 잘 대해주는 분입죠. 제가 보이면 몰래 불러서 먹을 걸 챙겨주곤 한답니다. 손님들이 먹다 남은 술도 주시죠. 헤헤. 아주 맛이 좋답니다. 이 열목어 구이는 그 집의 음식이죠.


시나가와 원숭이와 맥주를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의 이름을 훔치는 이야기. 사람이라 해서 남자의 이름은 훔치지 않는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사람의 손에서 자라면서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는 대신 원숭이 무리에서 쫓겨났고 원숭이 암컷에게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예쁜 인간 여자에게 성욕을 느껴서 그만 여자의 이름을 훔치기 시작했다는 것. 사람의 이름을 훔치고 나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들을 소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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