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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80

by 교관 Jul 16. 2024


브런치 글 이미지 1


280.


 회사에 입사할 때에도 마동은 증명사진을 제출하지 않았다. 입사원서는 인터넷으로 보냈고 첨부파일로 사진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사진이 필요할 때에는 사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서 USB로 연결해서 사용하면 되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면서 증명사진을 한 번 찍었을 뿐이었다. 지금 마동의 지갑 속 운전면허증에 붙어있는 사진이 증명사진의 마지막이었다.


 “글쎄, 아주 오래전에 한번 찍었는데.”


 “당신의 사진도 보고 싶은데 그냥 참을게요.”


 는개는 마동에게 와인 병의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녀가 부어준 와인은 병원의 주스처럼 목으로 잘 넘어갔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마동이 집중을 해봐도 그녀의 의식에 접근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생각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보통 인간의 모습일까.


 혈류를 타고 흐르는 혈액의 흐름도 보통 때와 비슷하고 심장의 박동 수도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동은 는개와 네 번째 비 청아한 쨍그랑 소리를 냈다.


 “당신의 주방에서 독특한 부분을 발견했어요”라며 그녀가 말했다. 는개는 젓가락으로 회를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그녀는 배가 고프다고 하더니 음식은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주방의 선반 안에 땅콩버터의 빈병이 어째서 많은 거죠? 당신, 땅콩버터를 좋아하는군요.” 는개는 주방 선반 쪽을 보았다.


 “땅콩버터를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한국에서 먹는 음식에서 벗어난 색다른 맛이라 아주 가끔씩 사놓기는 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하나씩 병이 늘어나 버렸어.” 마동은 많이 빨아서 퇴색된 운동화 같은 얼굴을 하고 선반을 쳐다보았다.


 “왜 버리지 않는 거죠? 빈병을…….”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계기라고 한다면 이거였어.” 마동은 방의 책상에서 노트북을 들고 와서 화면을 터치해서 하나의 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흑백이고 오래된 느낌의 영화였고 영화는 듀공수프의 맛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는개는 첫 장면을 보자마자 “천국보다 낯선’이군요”라며 단번에 알아봤다.


 “에바가 참 예쁘죠? 헝가리 여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쁜 거 같아요. 저렇게 옷을 입었는데도 예쁘고 담배를 막 피워도 대는데도 예뻐요. 자다가 일어나서 씻지 않아도 예뻐요. 전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서 에바의 예쁨에 반했어요. 어째서일까요?”


 “영화니까.”


 마동의 대답에 그녀는 또 웃었다. 는개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다음부터 웃음이 더 많아졌다. 크게 웃으니 치아가 피아노 건반처럼 고르게 아름다웠다. 웃음소리는 듣기 좋게 크게 나왔고 큰 소리의 웃음만큼 마동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녀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청아하지 않는 몇 번째 소리일까.


 지금까지는 몇 번째인지 셀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 몇 번째인지도 모를 와인 잔의 부딪힘이었다. 와인은 목을 타고 내려가 몸속 구석구석 퍼졌다. 혈관을 타고 손톱 끝과 말피기소체까지 흘러들어 갔다. 와인은 더더욱 깊이 흘러들어 가 마동의 마음속 천국보다 낯선 그곳까지 들어갔다.


 “짐 자무쉬는 에바를 예쁘게 보이고 싶게 하고 싶었을 거야. 유일하잖아. 따지고 보면 그의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잖아. ‘커피와 담배’에서도 쌍둥이로 나온 케이트 블란쳇도 그렇고 인생에 단 몇 분 정도가 영화인생의 전부인 ‘르네’도 그렇고 말이야.”


 는개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다. 2, 3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무표정으로 생각에 빠져있는 2, 3초 동안 작은 행성이 몇 만 광년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 세계가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있었다.


 “생각이 났어요. 에디가 여행 중에 빈 땅콩 병을 들고 다니잖아요.”


 “맞았어.”


 “에디를 보고 선반 위에 저렇게 땅콩 병을 모아 둔 거예요?”


 “부분적으로는.”


 “알 수 없어”라며 하고서는 조용하게, 귀여운 사람이라고 했다. 묘한 눈빛을 띠고 는개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는개의 미소를 볼 때마다 마동의 불안감은 조각이 되어 의식을 짓눌렀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그녀는 배가 고픈 사람치곤 많이 먹지 않았고 그 빈속에 와인이 들어가서 그런지 얼굴의 양쪽 볼이 붉게 물들었다.


 “부분적으로는 에디의 영향이 있었지만 땅콩 병을 씻어 놓으니까 마치 새로운 하나의 물품을 보는 것 같았어. 다른 빈 병보다 좋아 보였어. 땅콩 병에 붙어있는 라벨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야. 언젠가는 버려질 빈병인데 저렇게 모아놓고 보니 텅 빈 선반을 멋지게 채워주고 있잖아. 저 빈 병 속에 무엇을 채워 놓으면 그 속에서 땅콩의 맛이 나지 않을까. 좀 더 맛있을 거야. 물을 부어 놓는다고 해도 더 맛있는 물을 맛볼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어”라고 마동은 말했다.


 잠시 침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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