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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틈을 두었다.
“가끔 꿈속에서 나타나는 환영 같은 모습 속에 내 옆의 그녀가 누구인지 병원복도를 내 손을 잡고 걸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어째서 같은 꿈을 몇 년 동안 계속 꾸고 있는지 나도 알 수가 없어. 뇌의 단층 촬영을 해도 나타나지 않았어. 심리학자나 꿈학자를 찾아갔지만 해답을 시원하게 얻을 수는 없더군. 나는 결국 오너에게 부탁하여 내 뇌파를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
“사장님이 해 줬어요?” 는개는 의아해했다.
“당연하지만 안 된다고 하더군. 오너는 안 되는 일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어. 잘못 건드리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이야. 단순히 알고리즘에 의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멀쩡한 뇌파를 채집할 수는 없다고 하더군. 우리는 하나의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뇌파를 채집한다.” 마동은 손가락으로 ‘일’ 자를 만들었다.
“사장님의 말이군요.”
마동은 빙고,라고 입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단면적인 내 기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어. 하지만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마음은 나에게 잠시 유보시켜 두는 거라고 말했어. 언젠가는 기억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지. 나는 늘 답답했어. 속이 거북한 사람처럼 가슴 한편이 갑갑한 채로 살아오고 있었어. 그런데 이젠 기억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어.”
마동은 는개의 사진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저도 변이하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변이 하니까”라고 마동은 조용히 말했다. 는개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입술 옆에 작은 보조개가 꽃을 피웠다. 초승달 같은 미소였다. 과장이 없는 달 같은 미소.
마동은 오늘 는개에게 손끝이 닿았을 때 그 느낌을 내내 물어보기를 엿보고 있었지만 이제 함구하기로 했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은 물어봐야 답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 보면 이때 증명사진이 가장 예뻤던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그땐 죽고 싶을 만큼 싫었던 얼굴인데 말이에요. 전 증명사진을 해가 바뀔 때마다 찍었어요. 당신 덕분에 이렇게 증명사진을 해마다 찍을 수 있었죠. 그때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이렇게 마주 보며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을 거예요. 언젠가 당신을 만난다면 내 지나간 증명사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개인에겐 소중한 무엇인가가 존재해요. 나에게는 이 증명사진이 소중했어요. 당신에게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내가 좀 우스운가요?”
“응, 많이.”
“당신, 처음으로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군요.”
마동은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그녀를 웃게 하는지 알지 못해서 잠깐 생각하면서 미소를 슬쩍 지었다. 그리고 재빨리 표정이 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는개가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어때요? 언제 적 사진이 가장 예쁜 거 같아요?”
“음……. 학창 시절에도 예뻤지만 지금이 제일 예쁜 거 같은데.”
는개는 조금 큰 소리로 웃었다. 숨죽이고 고요하게 듣고 있던 침묵이 와르르 흩어졌다.
“정말이야.”
“재미있는 사람.”
“여자들은 변덕이 심하군.”
“그래서 여자죠.”
는개는 초승당의 웃음을 간직한 채 마동의 손에서 사진첩을 쏙 뺐었다. 그리고 세 번째 울리는 청아하지 않는 쨍그랑.
“요즘은 증명사진 찍지 않아?”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찍고 이후로는 찍지 않게 되었어요. 당신이 이 회사에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이젠 더 이상 찍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버렸어요.”
“이제 나를 찾아서 는개는 조금 행복한가?”
“그럼요. 지금 이렇게 당신과 마주 앉아 있는 이 시간과 이 공간 속에 있음이 행복해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마동은 행복해하는 그녀를 볼수록 불안함이 크게 밀려왔다.
“이젠 어떻게 할 예정이지?”
“글쎄요. 이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영원한 건 없다는 거예요. 증명사진으로 그 모습을 잡아두지만 영원하지는 않아요. 모든 것이.”
“하지만 사진은 영원히 그 시간을 붙잡아 두잖아”라고 마동은 말했다.
“그래서 더더욱 영원성이 떨어져요.” 는개가 웃었다.
인간은 정말 그렇다. 세상에 ‘영원히’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영원히 사랑할게 같은 말처럼 믿을 수 없는 말도 없다.
[you know what? they keep on trying to split up.
“Never say ‘never ever’”]
어느 영화 속의 대사였다.
사진은 영원한 것 같지만 사진 속의 과거가 살아있을지라도 실재가 사라지고 나면 사진도 더 이상 영원하지 않았다.
“당신 증명사진은 어때요? 언제 찍었어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생각했다.
나는 증명사진을 언제 찍었더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