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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류 형사는 아침 일찍 깨어나 본부에 앉아 있었다.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지만 눈도 잘 떠지지 않았다. 48살로 다부진 체격과는 다르게 얼굴의 상태가 형편없었다. 주방에서 배가 고파 처음으로 눈에 띄는 것을 주워서 씹어 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검정 반팔 티셔츠는 땀이 여러 번 흘렀다가 마른 흔적이 역력했다. 듬성듬성 빠져버린 머리칼은 그가 부산스럽게 긁을 때마다 더 고슬고슬하게 가늘어지는 듯 보였다. 한 눈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류 형사는 머리를 긁고 손톱의 냄새를 한 번 맡고는 청바지에 손을 비볐다.
한 손에는 사건서류가 들려있고 시선은 서류에 머물러 있었다. 형사들 대부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실종사건과 기이한 시체의 사건 때문에 경찰서 내 분위기는 긴장이 흘렀다.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놔서 그런지 냉랭한 기류가 마치 초겨울처럼 다가왔다. 병든 닭처럼 책상에 엎드려 자는 형사가 보였고 강아지처럼 의자에 모로 누워 끙끙거리며 잠이 든 형사도 보였다. 본부의 실내는 씻지 못한 형사들의 발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가 책상이며 의자사이며 본부의 바닥에 꼼꼼하게 내려앉아 외부인의 출입을 방해했다.
류 형사는 불과 며칠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리를 해봤다. 전혀 다른 사건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의해서 모두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하나 들어맞는 구석이 없었다. 류 형사는 30도 각도에서 모든 추리를 동원해서 꼬리가 이어지는 부분을 유추하려 했지만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상식선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닌 만큼 상식을 벗어나서 유추하려 해도 힘들었다. 류 형사가 근무하는 동부지구에서 한꺼번에 알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부지구의 남부서 선배에게 연락이 와서 자신의 매제가 이번 동부의 야산에서 실종이 되었는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종신고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무엇인가 기이하고 이상하다며 매제가 뛰어 올라간 산을 한 번 조사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선배는 오래전에 동생의 남편(최원해) 때문에 호되게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사리진 매제 때문에 고생을 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선배는 류 형사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류 형사에게는 늦게 본 딸이 하나 있는데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신장을 갖고 태어났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 마냥 류 형사는 생각해 왔다. 수빈이의 신장이 갑자기 수술을 요해서 수술비를 마련하느라 뇌물을 받고 혐의를 풀어준 적이 한 번 있었다. 하지만 감사과의 감찰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선배가 그 일을 대신 뒤집어쓰고 사건을 해결해 주었다. 류 형사에게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고 수빈이의 수술을 잘하라고 격려해 준 선배였다. 수빈이는 이제 7살이다. 작은 생명의 불꽃이 주먹만 한 작은 신장에 달려 있었다. 엄마 없이 류 형사는 딸을 잘 키워보려고 했지만 늘어나는 사건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은 힘들었다. 수빈이는 신장이 약해서 달리면 안 되지만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다가 달리기를 한 모양이었다. 소식을 듣고 모든 것을 미루고 가서 딸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가면서 류 형사는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때 선배 덕분에 수술을 했지만 건강해지지는 않았다. 수빈이는 한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처음 했던 수술에 비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술비가 두 배는 더 든다. 수술을 받지 못하면 몸에 구멍을 내고 피를 걸러야 할 판이다. 류 형사는 은혜를 입은 선배에게 빚을 갚을 날만 기다려왔는데 선배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