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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6. 2024

손톱깎이를 빌려 달라는 남자 1

소설

1.

 은빛 생물체처럼 보이는,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손톱깎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나는 그대로 손톱깎이를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

  가게 앞 로비에 앉아서 한 남자가 내가 일하는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보니 무표정한 얼굴에(약간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다른 곳은 전혀 보지 않고 내가 일하는 가게 안을 죽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젊은것 같았다. 20대 후반이나 중반이 되었을 법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또래 같지 않게 코밑에 어둑하게 수염이 자라나 있었고 턱에도 검푸른 바다와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막 자라게 내버려 두었다가 대충 깎은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는 다섯 시간 정도(더 걸릴 때도 있었다) 로비에 앉아서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 배가 고픈지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내가 일을 하는 곳을 쳐다보는 것이다. 남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홈리스는 아닌 듯 보였다.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며칠 동안 다섯 시간 이상 로비에 앉아서 가만히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시내 중심가의 15층 높이의 꽤 오래된 주상복합건물의 일층에 자리한 코너에서 양말을 팔고 있다. 가게 앞에는 로비가 바로 보이고 로비에는 벤치가 있는데 남자는 가게 바로 맞은편 벤치에 앉아서 가게 안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일층을 통행하는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다. 좋은 자리에 양말 코너를 얻은 덕분에 사람들이 양말을 많이 구입하는 편이었다. 처음 양말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다.


  요즘 누가 양말을 살까,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도 대부분 양말을 신고 다닌다. 그동안 사람들의 발을 조금 유심히 관찰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백 퍼센트 양말을 신고 다녔고 학생들 역시 양말을 대부분 신었다. 요즘은 양말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양말을 가방에 여분으로 하나씩 더 넣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물론 양말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디자인이 조금씩 변했지만 양말을 찾는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신고 다녔다. 여름이 되면 슈즈나 발가락이 나오는 신발을 신고 다녀서 양말을 잘 신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꾸준하게 양말을 신는 사람들은 늘 있었고 그 사람들은 역시 끈질기게 양말을 구입했다. 무엇보다 아내가 양말 장사를 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을 해주었다.


  양말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심리까지는 모르겠지만 동향을 잘 파악한다면 판매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저렴하게 구입하여 편안하게 신고 버릴 수 있는 양말부터 기능성 양말까지, 가격은 좀 비싸지만 패션을 완성하는 데 한몫을 하는 양말도 잘 보이는 곳에 진열을 했다. 어떻든 단가가 센 물품을 팔아치우는 것이 판매자의 입장에서 이윤이 나기 때문이다.


  가게가 그리 큰 편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이 북적이지는 않았다. 덕분에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인생의 재미중에 어딘가에서 어디로 지나치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건 재미가 좋은 축에 속했다. 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때에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틀어놓은 음악을 들으며 멍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눈은 지나치는 사람들이 신고 있는 양말을 본다. 그러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된다.


  어느 날이었다. 오전 9시에 가게의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는데 하루는 로비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파란색의 스판바지를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구두가 불편한지 로비에 앉아서 구두의 끈을 조이고 매만지고 있었다. 일층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무엇 때문인지 여자 화장실에만 대걸레를 빨거나 헹굴 수 있는 수도시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대걸레를 빤 다음 들고 와서 가게 안의 바닥을 닦는다. 당연하지만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있으면 대걸레를 가지러 들어가지 못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갔고 대걸레를 들고 나와서 가게 바닥을 청소하면서 보니 로비에 앉아 있던 여자가 가버리고 없었다. 십 분 정도 바닥을 걸레질하고 여자 화장실에 대걸레를 갖다 놓으려 들어가는데 냄새가 강하게 났다.


  뭐랄까, 일주일 만에 본 대변에서 나는 냄새처럼 아주 지독했다. 화장실에 똥 냄새가 나는 것쯤이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사이에(가게 바닥을 닦는 동안) 누군가 변기 밖에, 그것도 엉덩이를 대고 앉는 변기 커버에 어정쩡하게 대변을 본 것이다. 생각해보니 구두를 만지던 여자밖에 없었다. 어째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오전이었고 여자는 술을 마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멀쩡하게만 보이는 여자는 변기 커버에 똥을 싸놓고 사라진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보복이었을까. 정말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제멋대로다.


  양말 가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지나침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이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떻든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흐르는 전류처럼 어딘가로 갈구하듯 굳은 결심의 표정으로 가게 앞을 지나쳐갔다. 오전에는 비교적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 시간대가 지나면 밝은 표정의 학생들이 우르르 시내로 나와서 건물을 관통했다. 하교 시간이 각 학교마다 엇비슷하니 오후가 되면 압도적으로 학생들의 이동이 많은데, 학생들은 의외로 싸고 질이 썩 좋지 못한 양말은 선호하지 않았다. 아디다스, 나이키의 최고 고객이 청소년들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학생들은(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몇 백 원이나 일이천 원이 더 비싸더라도 땀을 잘 흡수하고 발목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양말을 선호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맑은 하늘처럼 보냈는데 어느 날 젊어 보이지 않는 젊은 남자가 가게 앞의 로비에 앉아서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양말에 시선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양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선은 정확하게 양말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게 안의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었고 그 지점은 양말과 양말 사이이거나, 양말이 놓인 선반의 끝이거나 또는 서랍장의 모서리 같은 부분을 향하고 있었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지만 장사를 하는 시간 내내 가게 앞의 로비에 앉아서 이곳을 쳐다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좀 벗어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남자는 무표정했고 눈을 피한다든가 눈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눈은 내 쪽에서 피하게 되었다. 남자는 나에게 무엇을 갈구하는 눈빛을 약간 띠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고 봄이 끝나고 여름이 막 오려는 계절이라 오전에는 서늘하고 오후에는 움직이면 등에서 열이 나는 날씨였다.


  유행의 근처도 가지 않을 것 같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투박해 보이는 진한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 계절에는 좀 더워 보이는 점퍼였다. 하지만 남자는 더워 보이는 기색 없이 점퍼를 입고 사선으로 멘 가방을 배 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여름이 오려면 아직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떻든 남자가 입고 있는 점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워 보이게 만드는 점퍼였다. 남자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언뜻 멍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지만 시선은 정확하게 보고자 하는 부분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보고자 하는 부분이 어째서 내가 일하는 양말 가게 안이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최초에 몇 시에 로비로 걸어와서 앉아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있었다. 모두가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건물의 일층을 지나갔지만 남자는 그날부터 로비에 머물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터미널’에서 빅터 나보스키처럼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하루 동안 할 일이 없어 그러나 보다 했다. 남자는 내가 가게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로비에 앉아서 내가 문을 닫는 장면까지 쳐다보았다.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게 문을 닫는 모습을 확실하게 본 후 나중에 가게를 털려고 그러는 것일까. 하지만 가게에는 양말뿐이다. 오직 양말밖에 없다. 양말 가게이니 그야말로 양말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양말 가게를 턴다면 죽을 때까지 양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양말과 양말을 진열해 놓을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수납장과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와 컴퓨터 한 대가 고작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가게일 뿐이다. 남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로비에 앉아서 꼿꼿하게 시선을 고정했다.   


  “낮에 로비에 앉아 있던 그 사람 말이에요? 홈리스처럼 보이던 남자?”


  아내는 점심시간이 되면 가게로 와서 싸온 도시락을 같이 먹는다. 아내는 근처 여행사에서 일을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철이 되면 외국으로 나가려는 여행객들이 많아져서 아내는 몹시 바빴다. 여권을 발급하여 여행사에 예약을 하려는 사람들로 연일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에는 여권도 여행사에서 대행을 해줬는데 요즘은 여권 발급은 본인이 가야 한다. 점심을 같이 먹으며 아내는 로비에 앉아서 가게 안을 쳐다보는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홈리스는 아닌 것 같아. 어쩐지 흐르는 기류가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어.”


  나는 아내의 신음소리를 좋아한다. 아내의 신음 소리는 교태스럽지 않고 억억 하는 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다른 여자들의 비해 굵었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타인으로 하여금 계속 듣게 하는 매력이 스며든 목소리였다.

  아내가 여행상품을 소개하면 사람들이 어느 샌가 고개를 끄덕이며 죽 듣고 있었다. 아내와 섹스를 하면서 처음 듣는 아내의 신음소리는 꽤 이질적이어서 머리를 때리는 것처럼 충격이었지만 나는 그 소리에 깊게 빠져들어 버렸다. 아내의 신음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아내의 신음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 아내의 속옷을 벗겼다. 어느 날은 밥을 먹다가 속옷을 벗겨 신음소리를 들었다.아내는 입안에 밥이 있다고 했지만 나를 나도 막을 수 없었다. 식탁을 물리고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쓰러뜨리기도 했다. 저녁에 집에 있을 때 아내는 나를 위해 팬티를 입지 않는 날도 있었다.


  “속옷을 입지 않고 있으면 어때?”


  “대단한 일탈은 아니에요. 하지만 머릿속 생각은 뭔가 조마조마하면서 당신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팬티를 입지 않은 채 헐렁한 치마를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연기 같은 형태로 떠돌아다녀요.”


  아내의 말을 들으면 나는 아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어떤 사내에게 당하는 장면을 자동적으로 떠올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는 거부하면서도 억억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생각의 끝에 닿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아내를 잡아당겼다.       


  남자는 다음 날에도 나타났다. 9시면 나는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열고 양말을 정리하고 신상품을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지난 상품을 안으로 밀어 넣고 재고를 체크하고 먼지를 털고 가게 앞에서 선반을 내어 양말을 진열했다. 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음악을 틀어 놓는다. 아무래도 시내 중심가다 보니 유행하는 팝을 틀어 놓는 경우가 많지만 오전에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 놓는다. 트래비스의 노래를 틀고 물청소를 하는데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저쪽에서 걸어와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게 앞의 로비에 앉았다. 어제와 다른 점은 남자는 점퍼를 입지 않고 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좀 더 더워졌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점퍼를 벗고 왔다. 남자는 늘 하는 일처럼 로비의 벤치에 앉아서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자가 쳐다보는 것에는 망설임이라든가 자신이 타인을 쳐다보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할까, 따위는 없었다. 머리는 잠들기 전에 감고 일어나서 그대로 나온 것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정리를 하는 것은 남자의 의식에 들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대걸레를 빨아서 바닥청소를 하고 먼지를 털면서도 남자를 의식했다. 남자는 앉아서 가만히 이곳의 한 지점에 시선을 두었고 그 이후로는 계속 그 같은 양식을 유지했다. 알 수 없었다. 어째서 한창 일해야 하는 시간에, 일해야 하는 나이에, 이곳에 계속 앉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했다. 점퍼를 벗고 왔다는 것은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겨울 동안 입었던 점퍼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남자가 입고 있던 점퍼는 한 겨울에 입기에는 추워 보였지만 지금 입고 다니면 분명 더워 보이는 점퍼였다. 일단 남자를 의식하고 나자 나는 평소처럼 제대로 가게 안에서 쉴 수 없었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가게 안을 쳐다보았고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왜 그렇게 뚫어져라 여기를 쳐다보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 물어봐야 하는 시점을 놓쳤다. 일단 시점을 놓치고 나니 남자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멀어졌다. 그러다가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남자는 3일째 되는 날에도 나타났다. 이쯤 되면 남자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의 보증금이나 이런저런 세입자에 관한 부분은 나쁘지 않았고 주인이 혹시 은행의 빚을 떠안고 야반도주를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큰 피해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전세권 설정도 부동산을 통해서 해놨다. 그런 조사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남자는 직업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벗어났다. 어쩌면 작가일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관찰이라는 것을 해야 하고 그걸 토대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양말에 관한 것에 대해서 글을 적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양말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양말이 많은 곳에, 그곳이/은 당연히 양말 가게이니 양말 가게 앞에서 양말에 관해서, 양말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관념에 대해서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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