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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2

342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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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시냅스? 뉴런?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시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내 머릿속은 일반인들보다 많은 수의 시신경과 대뇌피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의 대뇌피질이나 시신경, 좌 뇌, 우 뇌 공간감이나 분석적 사고가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이런 나의 뇌 변이를 막고 있는 것이 이드를 누르고 있는 또 다른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장군이에게서 들었다. 그렇다면 저기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나란 말인가.


나는 걸음을 천천히 옮겨 철탑과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남자 곁으로 걸어갔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람이 뒷모습으로 돌아앉아 있어서 저 사람이 내 모습인지 인지하기 어려웠다. 나는 나의 뒷모습을 알지 못한다. 특히 무릎 꿇고 앉아있는 뒷모습은 전혀 모른다. 그동안 나는 왜 거울로 비치는 나의 뒷모습을 봐놓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은 잘 봤으면서 나는 내 뒷모습에 대한 모습을 확인한 바가 없어서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뒷모습에 막대한 슬픔이 스며들어 있지는 않았는지, 뒷모습이 당당했는지 뒷모습의 옷 입은 모양새가 괜찮았는지, 조깅을 할 때 뒷모습이 우습지는 않았는지 왜 한 번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수만 가지의 생각이 흩어지는 낙엽처럼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져서 뜨거운 소각장 안에서 다 타버리듯 나는 내 뒷모습에 대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잘못 박힌 나사가 세상에 지니는 힘에 의해 문드러져서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그랬다. 내가 내 뒷모습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내 뒷모습이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바뀌거나 하지 않는다. 내 뒷모습은 흘러간 시간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가가는 발걸음이 덜덜 떨렸다.


옛 시대의 내음이 났다. 녹슨 못에 묻어서 풍기는 피비린내와 같은 냄새가 마동이 철탑인간이 있는 근처로 다가 갈수록 강하게 번졌다.


“이봐, 그렇게 떨건 없다구. 그렇게 몸을 떨어봐야 힘만 빠질 뿐이야.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작업이 순조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네. 나는 프로페셔널하지. 순식간에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느긋하게 하기도 해. 고통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천천히 작업을 하기도 한다네. 먼저 이 첫 번째 칼로.”


“단조로울 걸세. 아차 하는 그 순간 각막을 칼날이 도려 낼 거야. 교묘하게 도려 낼 걸세. 난 아주 섬세한 칼잡이라 동공과 홍채는 그대로 둔 채로 자네의 각막만 도려낸다는 말이네. 차갑고 날카롭게 자네의 각막을 도려낼 때 자네는 진정한 고통을 느낄 거야. 하지만 괜찮다네. 각막을 도려내는 건 금방이니까 말이네. 아 이런, 비가 떨어지는군.”


철탑인간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남자에게 속삭이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던 비가 하늘에서 투두둑하며 일정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는 철탑인간을 적시고 무릎을 꿇고 있는 그 남자를 적셨다. 철탑인간은 비가 오는 것엔 신경 쓰지 않고 비를 맞고 쇳가루를 뿜어내며 칼을 그의 눈앞에 대고 음산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비를 맞고 철탑인간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비린내가 근처에 진동을 했다. 쇳덩어리가 자아내는 말캉한 비릿한 내음, 선택에 의해서 자아내는 내음이 아닌 강요에 의해서 뿜어져 나오는 그 냄새의 포자가 철길 위로 떠올라 공간을 마구 헤집고 다니며 비린내를 확산시켰다.


“비가 온다 해도 우리의 작업은 계속되고 이루어져야겠지. 그렇지 않나?” 철탑인간은 음울하게 웃었다. 단지 웃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자 각막을 도려낸 다음은 자네의 동공과 홍채를 도려 낼 걸세. 이건 좀 어려운 작업이지. 잘못 도려내면 자네는 시력을 완전하게 잃게 될 테니까. 하지만 자네는 시력을 잃은 채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말했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게 세상이치 아닌가. 눈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이 좋아지니 나머지 기능을 잘 살려 볼 수 있지 않겠나. 첫 번째의 고통보다 참지 못할 고통이 느껴질 거네. 칼날이 쓱싹쓱싹 하며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마치 마취하지 않은 채 팔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통과 비슷하지. 아니지, 아니지, 그것보다 더 한 고통이 수반되겠지. 자네 눈엔 수정체만 각막이 벗겨진 채로 보일 거야. 타인이 그런 자네의 모습을 본다면 자네보다 더 두려움에 떨 테지만 말이네.” 철탑인간은 음흉하게 다시 웃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비를 맞은 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남자는 몸을 심하게 떨었다. 비에 젖어 추위에 몸이 떨리는지 철탑인간의 손에 들린 칼의 공포에 두려워서 몸을 떠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에 흠뻑 젖은 무릎 꿇은 남자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렸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밤, 칼바람에 흔들리는 문풍지처럼 남자의 몸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떨렸다. 철탑인간은 그의 뒤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세 자루의 칼을 휙휙 돌리고 있었다. 칼을 서로 소리 나게 부딪힐 때마다 피비린내가 어디선가 쥐어짜듯 풍겨났다. 피비린내와 비린내는 뒤섞여 사후공간을 연상케 했다. 최원태 부장이 사라지고 난 후 맡았던 피비린내였다.


강했다. 무척.


비를 뿌리는 구름은 유난히 검었다. 흑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검은 구름은 히 내음을 흡수한 비를 폭력적으로 뿌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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