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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2

343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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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한쪽 눈의 각막을 도려내면 반대쪽 눈의 각막을 도려 낼 걸세. 하나 하고, 하나 하는 거지. 가내 수공업 식으로 말이야. 한쪽 눈의 작업을 다 마치고 옆으로 옮겨 가서 또 다른 한쪽 눈을 작업하는 것이라네. 한쪽 눈의 홍채를 드러내는 순간 자네의 안구라는 건 빛의 조절을 실패하는 거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비가 내려줘서 말이지. 태양이 떠 있었다면 눈을 뜨지도 못할 테고 말이야. 쏟아져 나오는 피를 비가 다 씻겨 줄 테니 말이지. 망막을 드러내면 이제 피사체의 상이 보이지 않겠지. 어떤가? 그렇게 다 도려내서 정보가 없으니 대뇌로 전달할 게 없다네. 이제 내가 그 시신경을 통해 대뇌로 가서 자네의 여러 가지 흘러넘치는 시냅스를 잘라 올 거네.”


바닥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땅속으로 스며들어가지 않고 땅 위에 머물고 있었다. 빗방울은 비교적 기울어진 대지에 떨어져 바닥으로 스며들지 않고 기울어진 대지의 높은 곳으로 빗방울이 이동하는 듯 보였다. 철길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죽 늘어져 있었지만 평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오르막길이었다. 검은 구름이 만들어낸 빗방울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오르막 위로 이동을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빗방울이 아니었다.

굵은 빗방울은 괄태충들이었다. 손가락만 한 괄태충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은 검은 구름에서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잘못 떨어진 괄태충은 떨어지면서 몸이 바닥에 부딪혀 터지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괄태충들은 대부분 땅 위에 빗방울처럼 떨어져서 오르막길로 꿀렁꿀렁 기어갔다. 세상이 괄태충들로 꽉 들어찼다. 검은 구름이 뿌리는 괄태충은 역겨운 누린내를 동반했고 피비린내와 뒤섞였다. 냄새만으로 구토를 유발했다.


“이렇게 들어낸 자네의 동공과 홍채는 여기 이렇게 철길 위에 놓아두겠네. 너는 철길을 좋아하지. 그런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런 다음 마지막 칼을 잘 쑤셔 넣어서 공막과 황반과 망막에서 자네의 유리체를 들어낼 거야. 고통이 심하겠지.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릴 거야. 뒷머리를 누군가 확 잡아당기는 거 같겠지.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 손바닥에서 피가 나올지도 모르겠네. 오줌을 지릴 거야. 아플 거야. 아프지. 고통이야. 고통. 입에서 침이 계속 새어 나올 거야. 그런 거지. 어쩌면 항문이 열릴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된 거라구. 하지만 시신경을 건드리지는 않겠네. 그것을 통해 자네의 뇌를 들여다봐야 하니까 말이네. 난 머리를 잘라서 뇌를 가르는, 그런 식의 칼놀림은 하지 않아. 아까도 말했잖은가? 고통을 느끼게 해 준다고. 유리체도 철길 위에 각막과 동공의 옆에 잘 놔두겠네. 도려낸 자리에서 유리체를 들어내야 하는데 그 작업 역시 고통이 수반될 수 있겠네.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다리가 끼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멈추지 못하고 다리가 엘리베이터 힘에 못 견뎌 결국 잘리는 고통을 아나? 눈을 뜨고 그 모습을 똑똑히 보는 거지. 그런 걸세. 그런 거야. 아플 거야. 아프지. 아프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지. 숨이 막힐 거네. 눈으로 봤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자네의 눈을 도려내는 일은 자네가 보지 못하니 어쩌면 고통이 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괄태충들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어딘가로 계속 기어갔다. 철길 위에 떨어진 수많은 괄태충들은 철길 위를 꿈틀거리고 지나가면서 철길을 부식시켰다. 부식되는 소리가 치익하며 기분 나쁘게 들렸고 그들은 머리에 난 두 개의 촉수를 레이더처럼 더듬거리며 음산하게 천천히 움직였다.


이봐, 자네는 그동안 많은 것을 버리며 살아왔네. 난 그것을 알지. 자네가 꾸준히 달리는 것도 더 많은 무엇을 버리려고 달린다는 것을 난 아주 잘 아네. 나는 알 수 있지. 멀리서도 자네가 달리는 모습을 봐왔거든. 자네는 달리는 것에 집중하면서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를 했어. 오랜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잘도 버려왔네. 수고했어. 수고했다고 해주지. 하지만 자네는 너무 많은 것을 버려버렸어. 마음까지는 버리지 않아도 되었다네. 마음은 남겨뒀어야지. 마음이 없어지니 자네의 마음을 누군들 탐내지 않겠나. 그래그래, 어쩌겠나, 이제 와서 뭘 하겠나. 일전에 내 앞을 지나쳐 달릴 때 난 자네를 붙들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 자네는 자네도 모르는 사이 굉장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거든. 폭주를 해 버리면 나라도 어쩌질 못했을 거야, 버릴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거야. 대단한 동시에 다행일지도 몰라. 나는 아쉽게도 버릴 마음이란 게 없어. 아무나 그렇게 버리지 못하지. 그럼, 그럼. 인간이란 그런 것이야. 인간이란 두 손에 가득 쥐고 있어서 양손이 모자라는데도 또 잡으려고 해. 두 손에 가득 들어찼는데도 더 잡으려고 한단 말이네. 썩 필요하지 않은 것도 원한다는 이유로 전부 잡으려고 해. 그런데 넌 사람들과 달랐어. 난 인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생활을 지켜줬지. 버릴 건 버려야 한다네. 난 잘 알지. 그런 면에서 넌 참 잘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군. 어찌 되었던 자 이제 작업을 해야지. 비가 더 거세지기 전에 말이지.” 철탑인간은 쇳가루를 입에서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은 사람에게 허리를 구부려 속삭였다.


그의 몸은 영화 속에서 구울로 변하기 직전 흔들리는 사람의 몸처럼 심하게 떨었다. 마동은 방어적인 자세로 그들의 곁으로 갔다. 철탑인간은 괄태충을 잔뜩 짊어지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세 자루의 칼을 각각의 손에 들고 있었다.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철탑인간의 몸에 떨어진 괄태충들은 검은 구름에서 철탑인간의 몸에 떨어지자마자 철탑의 뼈대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 자리에는 피식피식 하는 연기를 피워 올리며 철탑인간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괄태충들은 누린내만 남기고 사라졌다. 괄태충들을 빨아들인 철탑인간은 기이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태 하기 시작했다. 마동은 조심스레 등을 보이며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남자의 앞으로 가서 섰다. 무릎을 꿇고 몸을 사시 떨듯 떨고 있는 마른 체구의 남자는 바로 마동 자신의 모습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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