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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인슈타워의 사건경위는 부식으로 인한 철골구조가 휘어지면서 상층부의 내력벽이 무너져 생긴 사고라고 단정 지었고 건축시공사와 건축주가 속해있는 회사에 대해서 대대적인 조사가 들어갔다. 경찰들은 사고의 본질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아마 정부 쪽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낱낱이.
엘리베이터의 추락도 검증되지 않은 부품의 사용으로 인해 부식이 빨라졌다고 보도가 되었다. 하지만 건물은 고작 5년밖에 되지 않은 건물이었고 이 도시에서는 가장 인텔리전트 한 건축물이었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꺼내서 지도를 열었다. 지도상으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바다의 사건, 빌딩의 붕괴사건을 엮으면 정삼각형의 구도가 나타났다. 그 중심 어딘가에 마동이 있었다. 마동의 마음 중심에는 작은 마음이 있었다.
마동의 근처에는 철탑도 있었다. 모니터를 껐다. 아이팟 클래식을 스피커 독에 연결하고 음악을 틀었다. ‘세상의 끝’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결국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서
세상의 끝을 맞이하네, 맞이하네.
거실천장의 다운라이트 조명을 껐다. 미미한 어둠이 거실에 가득 들어찼다. 거실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채 와인을 마셨다. 물론 주스를 섞어서 마셨다. 주스를 같이 탄 와인은 맛이 좋았다. 주스의 맛에서 는개는 향이 번졌다. 한잔씩 마실 때마다 마동의 눈앞에 는개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동은 와인 한 병을 비우고 또 한 병을 땄다.
세상의 끝에 다가가면
우리 모두는 무너지고 마네, 무너지고 마네.
마동은 새로 딴 와인을 반 병쯤 비웠다. 아직 와인을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마동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철길 위에 철탑이 서 있었다. 철탑은 마치 인간처럼 철길 위에 버젓이 네 개의 다리로 걸어 다녔다. 철탑은 서서히 허리 부분을 구부려 철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한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철탑의 한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너의 고뇌를 내가 깔끔하게 삭제해 주지. 그러기 위해서는 널 이곳으로 불러내야 했어.”
철탑은 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에서 쇳가루를 흘려가며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인간에게 말을 했다. 철탑의 꼭대기 부분의 입모양이 움직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거대한 철탑은 아메바처럼 몸이 이리저리 휘어지더니 철탑의 크기는 어느 순간 인간의 두 배 가량의 몸집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철탑인간이라고 불리지. 내가 하는 일은 네가 하고 있는 작은 고뇌를 없애 주는 거야. 내가 할 작업이지. 그것이 나의 일이야.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이치는 잘 알겠지? 고통이 따를 거네. 고. 통. 고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말이지.”
고. 통.
이라고 발음할 때 철탑인간의 입에서는 쇳가루가 스르르 떨어졌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한 인간과 철탑인간이 서 있는 철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 먼 곳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여 군데군데 철길은 비에 젖어 있었고 철길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죽 이어져있었다. 철길 위로 느닷없이 빗방울이 떨어져 츠윽 하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철탑인간은 한 손에 들고 있는 칼을 자신의 눈앞에서 이리저리 돌리며 다른 한 손으로 그 칼날을 갈았다.
그르륵, 그르륵, 칼이 쇠붙이에 갈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려 퍼졌다. 철탑인간이 들고 있는 칼은 많이 보던 칼이었다. 칼은 는개가 마동의 거실에서 아홉 동가리를 자를 때 쓰던 바로 그 칼이었다. 철탑인간의 몸에서 팔이 하나 더 나왔다. 그 모습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어둠이 원래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모습 같았다. 철탑의 몸통 어느 부위에서 쇠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곳에서 철탑인간의 팔 하나가 또 비어져 나왔다. 철탑인간에게는 총 세 개의 팔이 달려있었고 손에는 각각 칼을 쥐고 있었다. 칼 세 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철탑인간의 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철탑의 몸통에서 튀어나온 세 개의 팔은 인간의 팔을 닮아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팔이라고 부르기에는 모자라는 부분이 많았다. 팔처럼 보이는 그것은 모두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었다. 한 자루는 물고기의 포를 뜨는 칼이고, 한 자루는 뼈를 발라내는 칼이었다. 그리고 또 한 자루는 회(살점)를 뜨는 칼이었다. 철탑인간은 쿵쾅쿵쾅 거리며 철길 위를 옮겨 다니며 무릎을 꿇은 한 남자 앞에서 칼을 들고 쇳가루를 흘려가며 서성 거렸다.
“이것 봐, 눈을 떠라구. 그리고 두려움에 한없이 젖어들어라. 두려움이라는 건 느낄 수 있을 때 느끼는 건 좋은 거야. 이제 조금 있으면 너의 그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지. 눈을 뜨고 두려움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어차피 너의 눈을 도려내야 하니까 말이지. 싫든 좋든 눈을 뜨게 될 거라구. 이봐, 그리고 서서히 너의 뇌 속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뉴런과 시냅스를 잘라 낼 거야. 그게 내가 할 일이야. 그런 거라구. 잘라낸 시냅스는 내가 가지고 가지. 넌 남아 있는 걸로 앞으로 살아가면 돼.” 철탑인간은 세 개의 칼날을 서로 끼이익 부딪히며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