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4.
여자는 7년 전에 남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고 결혼도 약속했다. 서로에게 관심은 있되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간섭은 무섭게 사람을 변하게 한다. 서로를 옭아맬 수 있다. 두 사람은 불타올랐고 행복했다. 여자는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좋아하는 고깃집으로 다니며 데이트했다.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살면서 집세가 나가는 것이 아깝다며 여자의 집을 처분하고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서 합쳤다. 남자의 집은 번화가에서 30분 거리에 있고 병원과 기차역과도 가까운 곳에 있는 26평형 아파트였다. 남자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일찍 집을 사들였다. 여자는 공짜로 들어가서 사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그러면 전기세와 가끔 외식비는 여자가 맡고 나머지는 남자가 맡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돈도 아끼고 무엇보다 둘이 붙어 있을 수 있었다. 매일 같이 누워서 영화도 보고, 사랑도 나누고, 끌어안고 잠들고 같이 일어났다. 채취도, 땀 냄새도 전부 좋았다. [아직 꿈이다] 특히 그곳의 냄새를 둘 다 서로 좋아했다. 만난 지 일 년이 흘렀을 때였다. 침대 위에서 둘이 같이 있었는데 남자에게 메시지가 들어왔다. 사랑을 나눈 직후라 옆에 잠시 있어 주기를 바랐지만 남자는 메시지를 확인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여자는 누구에게 온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사실 일 년 동안 여자는 남자의 폰이 궁금했다.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남자는 어떤 메시지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둘이 함께 무엇을 하다가도 메시지가 오면 하던 일도 중단했다. 설령 그것이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중간에도 말이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회사의 중요한 일이라고만 했다. 남자는 서로 폰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약속했다며 일축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는 동안 여자는 살이 많이 불었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체구였지만 남자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의 식단으로 먹다 보니 여자는 살이 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근육도 그대 로고 살이 붙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운동해야겠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남자는 보기 좋다며 그대로이길 바랐다. 나 살이 쪄서 보기 싫지 않아? 여자의 말에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만지며 지금이 너무 예쁘니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남자가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여자에게는 집 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으라고 했다.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남자가 변할 줄은 몰랐다. 집에서 나가면 너는 지낼 곳도 없는데 좀 깨끗하게 하라고 했다. 먼지 제거에 민감한 반응을 남자는 보였다. 여자는 점점 간섭하지 않는 사이에 의문이 들었다.
간섭은 하지 않되, 관심은 가져야 하지만 남자는 일 년이 넘어가면서 여자가 뭘 먹는지, 뭘 입는지, 뭘 마시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결혼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남자는 결혼 이야기를 피했다. 어느 날 여자는 남자의 폰 속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여자의 슬픈 예감처럼 남자는 회사의 여사원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건 벌써 10개월이나 되었다. 그 안에는 자신과는 절대 주고받지 않았던 내용이 있었다. 몸이 그립다, 고작 한 시간 못 봤는데 당신의 거기가 너무 만지고 싶다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모든 메시지가 충격적인데 자신을 청소부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여자는 그만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하는 여자의 손은 어쩐지 좀 더 길쭉해지고 투명해진 것 같았다.
[꿈속이다 아직]
그 뒤로 헤어졌나요? 나는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남자와는 헤어지는 게 맞다. 그래서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여자는 내 물음에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는 듯 모른다고 했다. 여자는 나와 더욱 가까워졌다. 여자는 덩치가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준 내가 고맙다고 했다. 여자는 정말 내가 고마운 걸까. 여자는 나의 가까이 앉았다. 앉아 있는 여자의 투명하고 길쭉한 손이 자기 무릎에 올라가 있었다. 기기괴괴하게 보였다. 어째서 손가락만 외계인처럼 생겼을까.
우리는 그날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같이 잠을 자게 되었다. 자연스러웠지만 부자연스러웠다. 그녀와 잠자리에 들어가는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투명하고 내 손가락보다 두 배는 길어 보이는 손가락이 나의 페니스를 잡는 건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상하지만 한 번 잡았을 뿐인데 나는 그만 사정하고 말았다. 여자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부자연스러운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기분이다.
여자는 그 뒤로 나에게 점심 도시락을 싸 주었다. 도시락은 정말 맛있었다. 정갈했고 매일 다른 반찬이었다. 마치 일본의 유치원 도시락처럼 알록달록 기분 좋은 도시락이었다. 여자는 나를 위해 먹을 것을 정성스럽게 식사를 차려주었다. 여자는 나를 집에 초대했다. 여자가 만들어주는 음식은 맛있었다. 먹을수록 더 먹게 되었다. 이상했다.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복감이 자꾸 들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잠이 쏟아져 나는 잠들고 말았다. 이기지 못하는 잠이었다. 이런 잠은 자연적인 잠이 아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의자에 묶여 있었고 여자는 칼을 들고 있었다. 칼을 든 여자의 손가락이 더 길어져서 투명하고 길쭉한 나뭇가지 같았다. 여자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인간의 뼈와 신체 부위가 보였다. 여자의 전 남자의 신체였다. 여자는 남자의 신체를 가지고 나에게 요리해 주었다.
꿈에서 깼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어째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그건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일까. 문제는 항상 나에게 있다. 나의 꿈이 그 지경이니까 나의 문제가 맞다. 꿈과 현실은 반대라는데, 꿈속에 등장하는 내가 사는 집은 언제나 형태가 틀어져 있거나 내 집인데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집이다. 일하는 곳도 그렇다. 분명 내가 일하는 곳이 맞지만, 뭔가가 변형되어 있다.
일하는 곳의 내부 안쪽에 커튼이 있어서 걷으면 다른 사무실로 바로 연결이 되어 있다거나, 가게의 뒷부분에 문이 있어서 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가면 그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그게 너무 싫지만 나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집과 일하는 곳이 꿈속에서 겉은 그럴싸하지만 늘 어딘가 일그러져있다. 실제 마주치는 덩치가 있는 여자가 꿈속의 여자처럼 살인마는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제는 어떻든, 여자에게 말을 해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