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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14. 2023

어떤 로봇의 사랑

힐끔 단편선 - 004

 에밀리는 식사 준비 중인 내 옆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수업은 어땠고, 수학 수업 때 숙제를 하지 않아서 선생님께 혼이 났고, 급식은 오늘 자기가 좋아하는 미트볼이 나왔으며, 그가 좋아하는 남자인 찰스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애꿎은 알렉스만 자신을 좋아한다는 그런 이야기.


 나는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듣고 그에 알맞은 답변을 도출하여 그녀에게 말했다. 숙제는 다음부터 제때 해야 하며,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잘해주는 것은 물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친절히 대해줘야 인간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편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에밀리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로버트는 너무 정답만 얘기하려는 경향이 있어. 내 상황에 적극적으로 공감을 해줘야지. 그러니까 로봇 같다는 소릴 듣는 거야.”     


 “공감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가씨. 저는 오로지 아가씨의 삶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보호자이지만, 어디까지나 로봇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진짜 내가 그걸 몰라서 그러겠냐고요. 로봇이라도 외울 순 있는 거잖아요. 계속 가르쳐 드려도 이러시네.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땐,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괜찮아요? 자. 한 번 말해봐요.”     


 내가 괜찮냐는 말을 하자, 그녀는 앞으로는 꼭 이렇게 말하라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그녀가 먹었던 음식들과 그릇들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에밀리를 돌보는 것은 꽤 큰 힘을 요하는 일이다. 비록 내가 로봇일지라도 말이다. 매일 어질러져 있는 그녀의 방을 치우고, 그녀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최대한 그녀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만들되 영양소는 놓치지 않게끔 말이다. 가끔은 그녀가 먹고 싶은 반찬을 주문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나트륨 함량이 높거나 자극적인 음식들 뿐이었다. 그녀에 관한 일이 이것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너무 정석대로 말하면 상처를 받았고, 너무 공감위주로 대답을 하면 성의 없다는 소릴 들었기에, 간단히 해결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최근에 그녀가 졸업반이 되면서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는데, 취직과 대학을 가는 것 중에서 어떤 걸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매일같이 물어보는 바람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저번에는 통계학적으로 대학을 가는 편이 성공하기에 더 좋겠다고 말했다가 그녀를 울려버렸던 전과가 있었기에 최근에는 더욱 말조심을 하는 편이다. 아직도 그녀가 울면서 소리쳤던 내용이 내 메모리 속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말들이 아니라고. 세상은 모두 통계로, 숫자로 이뤄진 게 아니잖아!”     


 어째서 인간은 이토록 감정적인가. 숫자는 변하지 않는 결과이고, 이것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포함한 다른 인간들은 자주 감정에 휩싸인 채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선택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이는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요소 중 하나이다. 울고불고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상황만 악화될 뿐인데도. 그렇게 후회하고 절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인간이란 참으로 여린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에밀리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핫초코 한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럴 때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에밀리는 내 쪽을 한 번 바라본 후에 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 나는 나지막이 그 단어를 입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메모리가 재생됐다. 나의 주인님이자, 에밀리의 엄마였던


 레이첼.


 그녀는 십오 년 전, 큰 화재로 인해서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레 번진 화재는 손쓸 새도 없이 빠르게 집안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소화기를 사용해 봐도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레이첼에게 집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에밀리를 찾고 있었다. 흩어져서 찾아보자는 말에 나는 1층을 그녀는 2층을 맡아서 에밀리를 찾기 시작했다. 연기 때문에 점점 산소는 줄어들었고, 이러다가는 레이첼마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쾅 -


 하는 소리가 2층에서 들려왔다. 소리가 난 곳은 에밀리의 방이었고, 내가 도착했을 때 레이첼은 책장에 깔린 채 악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품 안에는 서럽게 울고 있는 에밀리가 보였다. 레이첼은 자신은 틀렸으니 에밀리라도 빨리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이대로 가다간 레이첼은 분명히 죽는다. 하지만 책장은 아무리 힘을 줘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레이첼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로버트. 명령이야. 에밀리를 데리고 나가. 이대로는 그냥 다 죽는 거야. “

 

 나는 그녀의 품에 있던 에밀리를 안고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집은 폭삭 내려앉아버린 후였다. 레이첼의 시신은 책장 아래서 발견되었고, 곧 장례를 치렀다. 그렇게 에밀리는 나와 함께 자랐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서럽게 울고 있는 에밀리를 꼭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에밀리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자장가나 동화를 재생해주기도 했고, 힘든 일이 있을 땐 옆에 앉아서 얘기를 들어주기도 했다.(한 번도 만족시킨 적은 없지만) 친구들을 데리고 왔을 때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기도 했고, 휴일에는 가끔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에밀리는 종종 웃고, 울고, 화내고, 우울해했으며, 가끔은 외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을 내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부터 나는 그런 기능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아니니까.      


 에밀리가 말했던 것처럼 그녀에겐 레이첼이 필요했다. 그때 2층으로 가야 했던 건 그녀가 아니라 나여야만 했다. 누군가 죽어야만 했다면 내가 죽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일이었다. 로봇은 언제든 대체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재생해 봐도 레이첼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가 없는 삶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레이첼의 스무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얼마 전부터 갖고 싶다고 얘기했던 노트북과 생크림 케이크를 준비했다. 집으로 돌아온 에밀리는 내가 준 선물과 케이크를 받고 뛸 듯이 기뻐했고, 평소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자신은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좋은 판단이었다고 말했고, 그곳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레이첼은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의 눈에 조금씩 눈물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에밀리의 바람대로 그녀는 대학에 합격했고,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에밀리가 집을 떠나는 날. 그녀는 나를 힘껏 안아주었다.     

 

 “나 잘 다녀올게요! 로버트도 건강해야 해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에밀리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일까 슬픔의 눈물일까.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그 순간, 내 가슴에서 무언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뭔가 몸에 오류가 생긴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도대체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에밀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울면서 웃고 있었다. 나를 향해서 웃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개의 기억이 한꺼번에 재생되는 기분이 들었다. 반찬 투정을 하는 에밀리, 학교에 입학했던 에일리. 친구와 싸우고 돌아온 에밀리.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에밀리. 산책을 하는 에밀리. 내 기억 속에서 그녀는 정말 다양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한동안은 이 집에 없을 것이다. 매일 아침 깨워줄 사람도, 도시락을 싸줄 사람도, 매일 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가슴이 다시 한번 울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에밀리를 조금 더 힘껏 안았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 괜찮을 거예요. 에밀리. 잘 다녀와요."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한 택시가 도착했고, 그녀는 점점 내 눈앞에서 멀어졌다.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드는 에밀리가 보였다. 나 역시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조금 전에 느꼈던 뜨거운 무언가가 조금이나마 더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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