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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07. 2023

하얀 발과 더러운 발

힐끔 단편선 - 003

 한가로운 금요일 아침. 대호는 오랜만에 연차를 쓰고 늦잠을 자고 있었다. 오늘을 쉬고도 토요일, 일요일. 총이틀을 더 쉴 수 있다는 안락함이 그의 마음을 더욱 나태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몸을 뒤척일 수밖에 없었는데, 조금 전부터 나기 시작한 담배 냄새가 그 원흉이었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며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냄새는 계속해서 심해졌고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집은 일 층이었다. 집을 계약하면서부터도 걱정되었던 사생활 문제라든지, 벌레나 쥐들은 물론이고, 술 먹고 노상 방뇨하는 사람들이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까지. 이렇게까지 리스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곳보다 월등히 저렴했던 월세 때문이었다. “이 정도 월세라면 이정돈 감안해야지.”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 생각이 뒤엎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 금연 구역이라고 이 새끼들아!”     


 베란다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며 그는 소리쳤다. 가뜩이나 날씨도 더워서 창문도 못 닫고 있던 터라 그는 결국 에어컨을 마음껏 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진 모르지만, 아주 그냥 보이기만 하면 한소리를 제대로 해줄 작정이었다. 말로 안 되는 놈이라면 경찰이라도 부를 각오도 다졌다. ‘그래 뭐 나만 기분 더러워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그의 결심과는 다르게 베란다에 도착했을 땐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네 개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로 급하게 떠난 걸 보면 그의 고함 소리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담배꽁초를 밟아서 꺼버렸다. 묘한 승리감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툭 -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눈앞으로 떨어진 것은 한 개비의 담배꽁초였다. 조금 전에 치웠던 꽁초들과 똑같은 모양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는 얼른 꽁초가 떨어진 곳을 찾기 위해서 위를 쳐다보았다. 빌라는 총 오 층. 누군지 모르더라도 한 층씩 다 헤집어 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범인은 올 테면 와보라는 식이었는지,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맨 꼭대기의 5층.


 “딱 걸렸다 저놈.”     


 대호는 떨어진 담배꽁초를 그대로 든 채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칸씩, 그리고 두 칸씩 오르던 그는 삼 분도 안 되어서 오 층에 도착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접고 부딪히기로 결심했다. 아무튼 그의 손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지 않은가.    

  

 503호.     


 그는 초인종을 누르고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만약에 벌어질 많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예상했다. 상대방이 욕을 하면 자신도 할 예정이었고, 상대방이 주먹을 휘두른다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할 예정이었다. 그는 휴대전화에 112를 찍어둔 채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문은 조심스레 열렸다. 그리고 나온 것은 하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였다.     

 

 “누구……세요?”     


 그녀는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대호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를 보며 멈칫했지만, 이내 마음을 잡고 담배꽁초를 내밀었다.     

 

 “아니 담배꽁초를 그렇게 아래로 버리면 됩니까? 누가 맞거나 불이라도 나면 큰일 나는 거 몰라요? “


 그녀는 담배꽁초를 보더니 더욱 겁먹은 표정으로 변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담배를 안 피워서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그걸 저보고 믿으라고요? 떡 하니 창문도 열어놨더만요. “


 그녀는 못 믿겠으면 잠시 집에 들어와 보라고 말했다. 대호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집 안에는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다.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대효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까진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이 열려 있는 집은 물론 503호였지만, 그것 만으로 이 어자가 범인이라고 추궁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없었다. 창문을 조금만 열고 꽁초를 버린 후에 곧바로 닫았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대호는 고이 접어두었던 이성의 끈을 잠시 붙잡은 채로 그녀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지더니 그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발이었다. 새하얗고 작은 발. 그것은 천천히 다가오더니 내 상태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손에는 야구 방망이 하나를 든 채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만졌다. 야구방망이 끝부분에는 피 같은 것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하얀 발은 이내 중심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땅을 타고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커다란 발이 보였다. 커다랗고 더러운 발. 마치 태어나서 한 번도 씻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발이 다가왔다. 더러운 발은 하얀 발 옆에 선채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야. 이제 잘하는데? 하여간에 남자들은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쓴다니까.”


 묵직하면서도 깊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서 이 더러운 발의 주인을 보고 싶었지만, 머리에서 흐른 피가 눈을 적시는 바람에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정도면 됐잖아요. 이번 일까지만 하면 저 풀어준다고 했잖아요. 밖에 가서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저 좀 풀어주세요.”


 하얀 발의 목소리였다.


 “으음. 음. 안 되지 그건. 나한테 협력한다는 의미로 살려주기로 한 거니까. 그리고 네가 밖에 나가서 뭘 할 수 있는데? 너도 이제 살인마잖아. 그것도 연쇄 살인마 말이야.”


 그는 큭큭대며 웃기 시작했고, 하얀 발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알았으면 다른 놈들도 좀 어떻게 끌고 와봐. 음. 그래. 이번엔 층간 소음이 좋겠다. 춤을 추든, 쾅쾅 뛰든 어떻게든 한 명 끌고 와보라고. 그동안 나는 이 녀석을 처리하고 있을 테니까. “


 하얀 발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몇 발자국 걸어가더니, 쿵 - 쿵 - 그 자리에서 뛰기 시작했다. 주변의 있던 물건들을 일부러 떨어트리고, 다시 쿵 - 쿵 - 거리며 뛰고 있었다.


 “자, 이제 나도 일을 좀 해볼까.”


 더러운 발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쿵 - 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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