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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21. 2023

감상하기 전에

힐끔 단편선 - 005

 “크리스. 일어나 봐.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거 같아.”


 크리스의 뺨을 계속해서 두드렸지만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버렸다. 그를 계속해서 흔들어 깨워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책으로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의 단말마 같은 비명이 들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엘라. 늦잠 정도는 잘 수 있는 거잖아.”


그는 짜증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크리스. 지금 잠이 중요한 게 아니야. 주위를 좀 둘러봐.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잠이 온다면 자도 좋으니까.”


 “집이 뭐 어쨌다는 거야.”


 크리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둘러보았다. 탕 – 하는 소리와 함께 크리스는 머리를 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아? 크리스?”


 내 손을 잡으며 크리스는 벽을 만지기 시작했다.


 “엘라, 언제부터 여기에 벽이 있었지? 아니, 그것보다, 우리의 방이 왜 이렇게 좁아진 거야? 이 알 수 없는 벽들은 뭐냐고. 그리고 저 커다란 문은 또 뭐냔 말이야.”


 “내 말이 그 말이야. 크리스. 난 그저 화장실을 가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런데 일어나 보니 우리가 전혀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던 거야. 설상가상으로 투명한 벽 때문에 저 커다란 문엔 다가갈 수도 없어. 우린 여기에 갇힌 게 틀림없어.”


 “엘라,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크리스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그럼 말만 하지 말고 뭐라고 해봐. 크리스. 이 엿 같은 방 안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당장 말해보란 말이야.”


 “살려달라고 소리쳐 보는 건 어때?"


 "크리스, 그걸 내가 안 해본 줄 알아? 당신이 일어나기 전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일이 내 목구멍이 터져라 살려달라고 외치는 일이었어. 그런데도 당신은 잠만 자고 있었지만.”


 크리스는 일어나서 투명한 벽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주먹을 쥐고 투명한 벽을 몇 번 두드려보았다. 둔탁한 목재를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크리스는 점점 세게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의 손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벽에서 떼어 놓고, 그의 손을 살펴보았다. 그의 새끼손가락에서는 붉은색의 피가 선명하게 맺혀 있었다.


 "크리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도대체 어떤 악질이 이런 짓을 했는지 가늠할 수도 없어. 제발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말해줘.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줘."


 크리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이건 지독한 악몽일 뿐이고, 우리는 곧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크리스의 손 또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쾅 -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문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불이 켜지고 수많은 목소리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내 커다란 문은 열렸고, 우리는 겁에 질린 채로 그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서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누구야? 왜 우리를 향해서 저런 눈빛으로 다가오는 거지?"


 "오, 엘라 이건 꿈이야 꿈. 그냥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엘라 우리 저들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어보자. 숨도 조금씩 쉬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이야.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고 다시 불이 꺼지면 이곳에서 나가는 거야. 이 망할 놈의 방에서 나가버리자고."


 크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 역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멍한 표정으로 밖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멈춰있었다.




 

 이 소설은 <에드워드 4세의 아이들>이라는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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