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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28. 2023

찰리

힐끔 단편선 - 006

 오, 나의 찰리. 우리가 만났던 날을 기억하고 있니? 회사에서 잘리고 비극으로 가득 차 있던 나에게 다가와 준 그날을 말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코끼리 소리가 들렸던 그날.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못 보던 동물원이 생겨 있었지. 나는 무엇에 홀렸는지 몰라도 동물원의 표를 사게 되었어. 혼자 동물원의 들어가는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꽤 어색했어. 엄마나 아빠와 같이 온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연인이나 자식과 같이 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 나 같은 남자 혼자서 동물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야. 표를 파는 사람도, 그 동물원에 있는 엄마나 아빠, 그리고 연인들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렇게 팸플릿을 들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어. 사자도 보고, 앵무새, 악어, 곰 같은 동물들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게 되었어. 다른 곳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인파에 나는 절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지. 내가 다가가서 본 것은. 그래, 찰리. 바로 너였어. 너는 사람들 앞에서 바나나를 까고 행복한 표정으로 먹고 있었지. 직원은 사람들에게 바나나를 하나씩 건네며 너에게 주라고 권했고, 아기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너를 쳐다보며 바나나를 건넸지. 그리고 네가 바나나를 까서 먹으면 아기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고,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서 셔터를 눌렀어. 그렇게 나는 한참 동안 네 모습을 보고 있었지. 왜 서 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단순히 나와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너에게 바나나를 주고 싶어서였을까.


 그리고 한두 명씩 사람들은 빠져나갔고, 결국 나 혼자만 남게 되었지. 사육사는 나에게 다가와 바나나를 줄 거냐고 물어보더라. 그 직원도 이게 뭔가 싶었을 거야.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아저씨가 원숭이를 몇 시간이나 쳐다보고 있었으니. 나는 바나나를 주겠다고 말했어. 나는 바나나를 받아 들고 너에게 다가갔지. 그리고 내 손으로 직접 바나나를 까서 너의 손에 쥐어주었어. 찰리. 그리고 내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니? 나는 너의 손에 바나나를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어.


 “안녕, 찰리.”


 너는 내가 준 바나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귀퉁이 부분을 떼서 나에게 내밀었어. 그때의 기분은 뭐랄까.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 우리는 사이좋게 바나나를 한 입씩 먹었지. 찰리. 난 그때의 바나나의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씁쓸하다가도 끝맛이 달콤했었던 그런 맛이었지.


 그렇게 나는 매일 너를 만나러 동물원에 가게 되었어. 매일 표를 사고 동물원에 들어가, 가족과 연인들 사이를 지나 너에게로 갔지. 너는 항상 같은 곳에서 바나나를 까며 먹고 있었고, 그런 너에게 나는 멀리서 손을 흔들며


 “안녕, 찰리.”


 라고 외쳤지. 그럼 너는 가끔씩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어. 사람들 앞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네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마음의 위안을 얻었어. 텁수룩했던 수염을 깎고, 단정한 옷을 입은 채로 너를 찾아갔지. 사육사와도 조금씩 친해졌고, 사소한 대화도 나누게 되었지. 그녀의 이름은 소피였어.


 한 번은 그녀가 찰리의 손을 이끌고 나에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어.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악수를 나눴지. 네 손은 아기처럼 보드라웠어. 꽉 쥐면 행여 부서질까 봐 꽃잎을 만지듯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지.


 네 덕분에 나는 소피와 가까워질 수 있었어. 찰리. 팔리 채플린과 생일이 같았던 탓에 이전 사육사가 지어준 이름이었지. 그리고 운명처럼 너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삶을 살게 되었지. 이름이란 건 참 신기해 찰리.


 그런데 찰리. 어느 순간부터 너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어. 동물원에 아기 코끼리가 들어왔을 때였을 거야. 사람들은 아기코끼리를 보기 위해 코끼리 우리 앞에만 서 있었지.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어. 자연스레 너를 위한 공간은 사라졌고, 너는 다시 같은 원숭이들이 있는 우리에 갇히게 되었어. 소피 역시 아기 코끼리를 돌봐야 했기에 너에게 신경을 못써주게 되었지. 하지만 나만큼은 달랐어 찰리. 네가 공연을 하든 안 하든. 나는 매번 동물원에 들려서 네가 있는 우리로 향했지. 수많은 원숭이들 사이에서도 찰리 너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하지만 내가 아무리 크게 손을 흔들어도, 너는 나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어. 공연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소피에게서 네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소릴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 급하게 찾아간 병원에서 너는 힘겹게 숨만 쉬고 있었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소피나 의사는 전혀 대답하지 못했어. 그냥 죽을 때가 됐다는 그런 얘기를 할 뿐이었지. 나는 소피의 어깨에 기댄 채로 서럽게 울었어.


 이제 나는 더 이상 동물원에 가지 않았어. 너를 보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야만 했으니까. 너는 여전히 나에게 손을 흔들지 않았고, 그 좋아하던 바나나도 먹지 못했지. 그리고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을 때즈음에 병원으로부터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 오 나의 찰리. 소피와 나는 이따금씩 너에 대해 생각하곤 해. 노랗게 익은 바나나를 볼 때마다. 아기들의 작은 손을 바라볼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었던 너의 작은 손과 천진난만한 표정을 기억해.


 오 나의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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