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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Jan 11. 2024

두 명의 아내

힐끔 단편선 - 008

 그래, 그러니까 내가 어쩌다가 앞을 못 보게 된 건지 알려달라는 거군. 이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예전 일을 짚고 넘어가야만 해. 올 해가 몇 년이지? 아, 그런가. 그렇다면 십 년도 더 된 일이군. 나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잘 나갔어. 이른 나이에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서 빠르게 승진을 달리고 있었으니 말이야. 나에게는 친한 동료 한 명이 있었는데, 나와 입사 동기이면서 음식이든 취향이든 잘 맞는 녀석이었지.     


 한 가지 이상했던 건 이 녀석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어. 뭐 물론 독신주의자나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녀석이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거든. 사실 속으로는 이 녀석 게이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니까. 하지만 뭐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어. 나는 가끔씩 이 녀석이 외로울 까봐 아내와 함께 그 녀석과 시간을 보내주곤 했으니까 말이야. 


 그러던 어느 늘, 내가 더 나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야. 연봉은 물론이고 복지도 뛰어난 곳이었지. 나는 곧바로 제안을 수락했고, 아내와 그에게 이 사실을 바로 알려버렸다네. 그는 축하한다고는 말했지만, 그다지 표정이 밝지 않더군. 나는 처음에는 아쉬움 때문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네. 그에게는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지. 그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찬장으로 가서 비싼 양주 한 병을 꺼내왔네. 그리고 우리는 술을 진탕 마시고 말 그대로 뻗어버렸지. 그리고 새벽에 깨어난 나는 휴대전화를 보게 되었고, 그에게서 긴 문자 한 통이 와 있는 걸 보게 되었어. 아니, 정정하겠네. 정확히는 그가 잘못 보낸 문자였지.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네. 그건 절절한 사랑이 담긴 편지였지. 애정이 가득 담긴 서두로 쓰인 그의 문장에는 절절하게 사랑하는 듯한 모습이 적혀 있었어.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 그래, 그 두 녀석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야. 그 녀석은 순진한 얼굴로 내 아내를 꼬셨고, 아내는 그의 순한 얼굴에 속아 넘어간 거였겠지. 곧바로 그를 찾았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 하는 수 없이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네. 하지만 아내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기 시작했지. 문자 내용을 보여줘도 같은 반응을 보일 뿐이었어. 그때의 나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어. 이 여자의 뻔뻔함에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지.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졌네.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는 유리병이 박살이 나 있었고, 그녀가 쓰러진 채로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더군. 분노는 금세 두려움으로 바뀌고, 아내의 시신을 숨겨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워버렸지. 그렇게 나는 아내의 시신을 끌고 근처의 산으로 가서 묻어버렸어. 집은 청소업체를 불러서 정리를 시킨 후에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지.


 그 이후로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지.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친한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지만, 그럴수록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네. 그래야만 그 괴로운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네.      


 혼자가 된 후로 나는 바에서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네. 어느 날은 어떤 여자가 합석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왔지. 합석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그녀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려던 찰나,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네. 그 여자는 내 아내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나! 자리를 박차고 황급히 바에서 나가려던 찰나 그녀는 내 손을 잡았어. 그리고 갑자기 말을 걸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번호가 적힌 쪽지 한 장을 쥐어주었지.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한참을 생각했네. 저것은 어쩌면 아내의 망령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이상하게도 아내를 닮은 그 여자와는 종종 마주치게 되었어. 바에서 시간을 보낼 때나,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산책을 할 때에도 말이야. 그녀는 멀리서 인사를 할 뿐 나에게 다가오진 않았지.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를 닮았던 그녀의 모습에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되었어. 그리고 결국 그녀가 쥐어줬던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게 되었지. 그리고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확신했어. 이건 아내의 망령 같은 것이 아니라고. 이건 내가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일 것이라고 말이야. 밥을 먹고, 술을 한 잔 걸친 후에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지.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하며 내 마음을 받아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사귀기 시작했다네.


 알면 알수록 그녀는 신기한 여자였어. 분명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내 취향이나 버릇을 빠르게 눈치챘고, 공통점도 많았지.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교제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네. 비싼 호텔을 예약하고 커다란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구매했지. 그리고 호텔방에서 나는 그녀에게 반지를 내밀었어. 그녀는 반지를 받고 울음을 터트렸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뭔가 굳어있는 것이 느껴졌어. 나는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자신이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면 내가 자신을 미워할 것이라고 말이야.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어.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야. 그리고 이내 그녀는 결혼은 못할 거 같다고 말했지. 내가 계속해서 조른 탓에 그녀는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기로 결심했다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이 비밀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을 절대 미워하지 마라고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네. 그녀는 


 내 이름을 불렀어.

 

 조나단.     


 그 순간 묘한 기분이 들더군. 고작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말이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네. 그녀와 사귀는 동안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캐서린이 아니라고 말했다네. 진짜 자신의 이름은 


 조지     


 라고 말이야.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 조지는. 내가 알고 있는 조지는 내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그 녀석의 이름이었으니까 말이야.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내게 그녀는(아니 이제는 '그'라고 말해야겠지.) 다시 말을 이었어. 그 내용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리만큼 충격적이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문자는 잘못 보내진 게 아니었네. 조지는 아내가 아니라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였어. 내가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이사를 가야 된다는 사실에 너무 힘든 나머지, 아내와 내 관계를 망치려고 했다는 군. 그러니까 일부러 문자를 잘못 보낸 '척'을 한 거였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지. 조지 역시 내가 아내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대.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고, 이 자리에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았어. 아무 말 없이 나가려고 하는 내 손을 조지가 잡았다네. 그리고 그 녀석이 뭐라고 말했는지 아는가?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더군. 완전한 모습의 여자가 되었다고 말이야. 그리고 나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까지 했다고 말하더군. 이보게. 도대체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겠냔 말이야. 그리고 그 녀석은 아내를 죽인 건 평생 동안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말했어. 우리 둘 만의 비밀이라고. 그 녀석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해 봐. 나는 옆에 놓여 있던 꽃병을 들고 그의 머리를 내려쳐 버렸어. 그는 뒤로 고꾸라지면서 서랍장에 머리를 부딪혔고, 바닥은 금세 피로 물들어 갔지.

  

 그러니까 결국 나는 내 아내와 친구를 모두 죽인 셈이야. 아니 어쩌면 내 아내를 두 번 죽인 것일지도 모르겠어. 차갑게 식어가는 그의 시신을 보면서 생각했다네. 저 조지의 눈인지, 내 아내의 눈인지 모를 그 파란 눈이 나를 평생 동안 쫓아올 것만 같다고 말이야. 도저히 눈 뜨고 보지 못할 광경이었어. 내 범행은 모두 우발적이었네.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휩쓸린 결과물이지.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유리파편으로 내 두 눈을 그어버렸어. 그 뒤로부터는 흔한 이야기야. 호텔리어가 방을 찾아왔지만, 장님이 된 내가 문을 열어줄 순 없었고, 그는 억지로 문을 열고 참담한 현실을 마주했지.  

 

 재판에서 나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어. 내가 아내를 죽였고, 조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곳에서 계속해서 말라가고 있는 거지. 그래. 꼬마야. 너의 궁금증은 다 해소됐을까? 뭐? 그래서 마음은 편해졌냐고?   

   

 그럴 리가.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의 모습은 싸늘하게 죽은 아내의 얼굴을 한 조지의 모습이었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망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데이터가 필요해. 하지만 난 새로운 걸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원히 그 순간에 멈춰있는 게지. 그리고 아마도 이 고통에서는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거야. 내가 눈을 뜨는 일이 다시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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