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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Jan 18. 2024

페달 밟기

힐끔 단편선 - 009

 학교에서 돌아온 하연이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죽상이다. 그녀는 가방도 벗지 않은 채로 가만히 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연이 오늘 학교 재밌었어?”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나는 고무장갑을 벗어놓고 다시 한번 묻는다. “우리 공주님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또 삐지셨을까?” 하연이는 볼에 한껏 부풀어 오른 채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삐진 거 아니거든?”


 “그럼 뭐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거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그제야 가방을 벗고 휴대전화를 꺼내서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하연이의 친구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는 이번주 일요일에 다 같이 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가자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예전에 엄마랑 아빠가 사줬던 자전거 타고 가면 되겠네!” 나는 하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사주었던 노란 자전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말마다 공원에 가겠다며 남편과 호언장담을 하며 사줬던 자전거지만, 약속을 못 지킨 지 반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짜증이 한가득 담긴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다른 애들은 두 발 자전거 탄대. 근데 난 네 발 밖에 못 타잖아. 쪽팔려서 어떡해. 어린애 같다고 놀림받는단 말이야.”     


 여덟 살짜리가 어린애가 아니면 도대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네 발 자전거가 어때서 그래. 엄마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진 네 발 자전거 탔어. 자전거 타는 게 익숙해지면 보조 바퀴는 떼버리면 되지. 그리고 애들이랑 타면서 두 발로 타는 거 가르쳐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나 엄마랑 말 안 해.”     


 하연이는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방에 들어가 버렸고, 나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하연이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그리고 내일부터 등교하기 전에 자전거 타는 거 연습해 보자고 제안했다. “됐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서 어느 정도의 긍정의 표시가 보였기에, 나는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다음 날, 하연이와 나는 근처의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전거를 끌고 한 손에는 물병을 든 채로 말이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공원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수다를 떨고 있는 할머니들도 보였고, 운동복을 쫙 빼입고 파워워킹을 하고 있는 아줌마들이나 반바지를 입고 조깅을 하고 있는 남자들까지. ‘대한민국에 이렇게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연이 역시 멍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연아, 이제 한 번 타볼까?"      


  보조바퀴를 떼어버린 자전거는 굉장히 날렵해 보였다. 나는 뒤에서 잡아주겠다고 말했고, 하연이는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뒤에서 잡고 있음에도 그녀는 부들대며 핸들을 이리저리 돌렸고, 얼마 가지 못하고 발을 내려놓았다.      


 “하연아. 페달을 계속 밟아야지 안 넘어지는 거야. 엄마가 뒤에서 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페달 밟아. 알았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번에도 얼마 가지 못해서 발을 내려놓았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출근해야 한다는 알람이 울렸을 때, 하연이와 나는 탈진이라도 온 듯이 비틀대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하연이의 두 발 자전거 정착기는 계속해서 대공황을 맞았고, 사건은 금요일에 터져버렸다. 그날도 계속해서 하연이는 얼마 가지 못한 채 멈추는 것을 반복했다. 자전거 끄트머리를 잡느라 손가락이 아팠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하연이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나 안 해. 아니 못 해. 그냥 집에 갈래.”      


 애꿎은 자전거에 화풀이를 하려는 하연이를 제지하면서 나 역시 억누르고 있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김하연. 자전거가 뭘 잘못했다고 걔한테 화풀이야? 잘 안 되더라도 끝까지 해보려고 해야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울먹거리면서 소리쳤다.


 “나도 속상해 죽겠는데, 왜 엄마까지 뭐라 하는데! 됐어. 그냥 애들한테 안 간다고 할래. 집에 갈 거야. 이제.”     


 하연이는 그야말로 와앙 - 소리를 내며 울어버렸고, 나는 하려던 말을 삼키며 그녀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등을 토닥거리며 도대체 이제 어떻게 해줘야 할지가 막막했다. 연습할 시간은 내일뿐이었고, 하연이가 갑작스레 잘 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어떻게든 하연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온몸은 쑤셨고, 애랑 싸우고 온 탓에 머리도 지끈거렸다. 해야 할 일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시간이 지날수록 아까 전에 삼켰던 말들과 분노가 슬슬 올라오려던 참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 옆자리의 이주임은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아, 응. 우리 애가 이번에 두 발 자전거 타려고 하는데, 연습을 해도 통 늘질 않네. 본인도 잘 안 되니까 짜증 났는지, 뭐라고 하는데 나도 화내버렸거든. 우는 애 달래고 출근하니까 마음이 좀 그렇네.”

  

 “두 발 자전거 처음에 타면 무섭죠. 넘어질까 봐 무섭기도 하고. 저도 예전에 엄마가 잡아주셨는데.”   

  

 “응 나도 예전에 우리 엄마가 잡아줬었는데……. 나는 왜 우리 엄마처럼 못해주는 걸까. 괜히 애한테 미안하더라. “


 내 표정을 살피던 이주임은 내일 같이 자전거를 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마음만 받겠다며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꽤 적극적인 기세로 나왔다. 이주임은 자신도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싶을 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오늘과 내일 점심은 나에게 맡겨달라며 호언장담을 한 후에 그녀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하연이와 이주임과 나눠 먹을 물과 도시락을 챙긴 채로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주임은 먼저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알은체를 해왔다. 하연이에게도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내 소매를 붙잡으며 내 뒤로 숨기 바빴다.     


 “우리 애가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하연아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이주임. 미안해요 주말에 바쁠 텐데. 이거 마시면서 해요.”     


 내가 물을 내밀자 이주임은 아니라며 손사례를 쳤다. 자주 운동을 나온다던 그녀는 물을 입에 대자마자 꿀떡꿀떡 삼키기 시작했다. 이주임의 자전거는 붉은색에 핸들이 신기하게 생긴 제품이었는데, 그녀는 로드바이크라는 것으로 산악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하연이 타는 거 한 번 봐볼까요? 하연아 이모가 뒤에서 잡아줄 테니까 한 번 페달 밟아볼래?”    

 

 내 뒤에 숨어 있던 하연이는 천천히 자전거에 올라타고 뒤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주임은 뒷부분을 잡은 채 웃고 있었고, 나 역시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연이는 힘차게 페달을 밟았지만, 어제처럼 얼마 가지 못한 채 다시 발을 내렸다. 이주임은 몇 차례 더 그녀의 자전거를 잡아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연아. 자전거 탈 때 바닥을 보지 말고 앞을 봐볼까? 페달을 잘 밟고 있는지 걱정돼서 보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앞을 보지 못하니까 무서워서 일부러 발을 내리는 거 같아 보여. “      


 하연이는 고개를 떨구면서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넘어질 거 같아서요……. 넘어지면 아프기도 하고, 일단 쪽팔리잖아요. 남들은 다 잘 타는데 내가 너무 못나 보이는 게 싫어서. 그래서 쪽팔리게 넘어질 바에는 그냥 멈추는 게 나으니까…….”  


 하연이의 말을 들은 이주임은 싱긋 웃어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어때. 세상에 뭔가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니. 잘하게 되는 시간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초보인 시절이 있는 거야. 이모도 처음에는 자전거 타다가 넘어지고, 피나고, 쪽팔리고 그랬다? 근데 계속 넘어지다 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 이까짓게 뭐라고. 그냥 잘해버려야지? 그런 마음 말이야. 넘어져도 괜찮아. 자전거를 못 탄다고 하연이한테 뭐라고 할 사람은 여기엔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넘어질까 봐 무서운 마음이 들 땐 그냥 페달을 밟아버려. 처음엔 휘청거릴지라도 네가 계속해서 페달을 밟으면 자전거는 절대 넘어지지 않아. 그리고 자전거를 잘 타고 있는 네 모습을 생각하는 거야. 어때? 꽤 멋지지 않아?”     


 하연이는 멍하게 이주임의 말을 듣더니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타보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자전거는 전과 달리 조금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주임은 손을 떼겠다고 말하며 자전거 뒤에서 손을 떼버렸다. 하연이의 자전거는 비틀비틀거리더니 이내 넘어져 버렸다. 나와 이주임은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그녀의 손은 조금 까져서 붉그스름한 피가 맺혀 있었다.  


 “아냐, 엄마 나 괜찮아. 다시 해볼래. 이모! 한 번만 더 잡아주세요!”     


 이주임은 알겠다며 같이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고, 다시 자전거 뒤를 잡은 채로 그녀가 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연이는 옷을 툭툭 털고는 자전거에 앉았다. 그리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아까 전보다도 자전거는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이주임은 “놓는다!”라는 말과 함께 자전거를 놓아버렸고, 하연이의 자전거는 곧바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연이는 더욱 세게 페달을 밟았다. 한 바퀴 두 바퀴.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자전거는 안정적이게 변해갔다. 그리고 이내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하연이는 기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고, 나는 이주임의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해댔다. 이주임은 쑥스럽다는 듯이 손사례를 쳤지만 그녀 역시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하연이가 돌아왔고,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목소리로,    

 

 “엄마, 이모! 나 봤어? 이모가 말해준 대로 페달을 계속 밟으니까 안 넘어지는 거 있지? 풍경도 막 변하구, 바람도 시원하고, 아무튼 너무 기분 좋았어! 나 이제 이모랑 같이 타볼래!”  


 그렇게 반나절동안 하연이와 이주임은 자전거를 타고 놀았고, 집으로 돌아온 하연이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나는 이주임에게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고 월요일에는 자기가 맛있는 점심을 사겠다며 호언장담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이 밝았고, 하연이는 방실방실 웃으며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났을 무렵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흙투성이가 된 아이들 사이에 하연이가 보였다. 얼굴과 옷에는 흙이 묻어있는 걸로 봐서는 몇 번 넘어진 것처럼 보였다. 걱정이 앞섰지만,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하연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사진 밑에는 <다음 주에는 엄마랑 자전거 타볼래>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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