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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Jan 04. 2024

이렇게, 사과

힐끔 단편선 - 007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방문을 가로막을 만큼 커다란 사과였다. 붉은빛을 띠고 있는 커다란 사과가 내 침대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닐까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몇 번이고 내 뺨을 때려보고,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지만, 이것은 확연한 현실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 몸의 두 배만큼 큰 사과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사과의 가까이에 다가가서 표면을 만져보았다. 매끈한 사과껍질의 표면이 내 손바닥에 느껴졌다. 한 입 베어 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만큼 내 눈앞의 사과는 탐스러워 보였다. 마침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싶었지만,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사과만큼 큰 벌레가 사과 속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과를 먹는 것을 포기하고 나는 그 커다란 사과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 방 안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이라고는 이 사과가 막고 있는 문 밖에는 없었고, 나갈 방법 또한 이 사과를 치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방을 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 것이다. 사과를 밀어 보기도 하고, 주위의 물건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커다란 사과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발 밑에서부터 조금씩 공포감이 내 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집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방 안에는 나와 커다란 사과 밖에 없었다. 배는 점점 고파왔고, 화장실도, 신선한 공기도 그리웠다. 그리고, 민희. 민희가 보고 싶었다.     


 너 같은 거랑 같이 사는 게 아니었는데. 어제 민희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와 싸웠던 이유는 그녀가 가져온 사과 때문이었다. 붉은빛이 띄고 있는 사과들은 민희는 퇴근해서 사 왔고, 우리는 그것을 깎아서 먹었다. 그렇게 한 입 베어문 사과는 그렇게 달지도 않았고, 퍼석하기까지 했다. "맛이 왜 이러냐. 사과가." 무심결에 말이 툭 튀어나왔다. 민희는 포크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과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평소처럼 그냥 놔두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TV를 한 참보고 있었다. 쾅 –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 밤에 어디 가는데?"


 "알아서 뭐 하게."


 "아까 그 말 때문에 그래? 별 것도 아닌 걸로 왜 그러냐."


 "별 것도 아닌 게 아니라, 아니야. 그냥 말을 말자. 너 같은 거랑 같이 사는 게 아니었는데."


 라며 민희는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잡기 위해 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 후에는,     


 그냥 그 후에는


 방에 가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니 커다란 사과 하나가 문 앞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민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물건을 모두 챙겨서 나가버렸고, 그런 민희를 잡지도 않았던 이런 집에 돌아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민희가 더욱 보고 싶었다. 나는 침대에 주저앉아 커다란 사과를 바라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 등 뒤쪽에서 휴대전화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나서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침대를 뒤지기 시작했고, 베개 밑에서 울리는 휴대전화를 찾을 수 있었다. 화면에는 민희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얼른 통화버튼을 눌렸다.      


 "여보세요. 나야. 이제 더는 그 집에 갈 일이 없다는 말 하려고 전화했어."


 민희야. 내 말 잘 들어. 우리, 아니 내 방문 앞에 커다란 사과가 놓여있어. 지금 우리 집에 와줄 수 있을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민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넌 끝까지 자기 얘기 밖에 안 하는구나. 그래도 마지막은 좋게 끝내고 싶었는데."


 "아니, 민희야. 내 말은. 그러니까, 미안해. 사과 때문이 아니란 거 알아. 정말 미안해. 어제 일도 지금까지 너한테 했었던 일도.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잠시만 집에 와서 다시 얘기할 수 있을까?"


 민희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았다는 말을 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후에 나는 민희에게 이 커다란 사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방 문을 바라보았을 때, 커다란 사과는 사라져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사과가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은은한 사과의 향이 남아 있었고, 문 손잡이를 돌리자 방문은 천천히 열렸다.





 이 소설은 르네 마그리트의 <The listening room>이라는 명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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