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끔 단편선 - 002
평범한 저녁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출근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온 월요일. 퇴근길에 가장 고민되는 것은 저녁을 뭘 먹으면 좋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배달 어플을 켜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치킨? 아니면 역시 피자? 오랜만에 마라탕? 아냐, 역시 오늘은 자장면이다. 윤기가 흐르는 면발에 바삭한 탕수육 한 입이면 이 피곤함을 눈 녹듯 녹여줄 것이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결제 버튼을 막아서는 것은 애매하게 높은 금액과 배달 수수료였다. 나는 버스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그러니까 이 돈이면 5일 치 점심값이기도 했고, 이걸 먹느니 아예 밖에서 간단하게 사 먹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편하게 집에서 자장면에 탕수육을 먹으며 유튜브나 보고 싶다고. 다시 결제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Web발신]
**BC ***님
체크카드 후불교통요금 출금안내11/22결제금액 29,900원(11/20기준)
나는 어플을 끄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들어오는 돈은 한계가 있는데 어째서 빠져나가는 돈은 한계가 없는가. 월세에 적금에, 휴대폰값과 보험비. 교통비와 식비가 빠지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번듯한 취미 생활 하나 즐기기 어려울 정도로 빠듯한 생활. 약속을 나가고 술이라도 한 번 마신다 치면 식비를 줄여가며 살아가야 했기에 평소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으며 식비를 최대한 아끼곤 했었다. 그런 나의 삶에 홀로 시켜 먹는 배달 음식은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MSG맛이 그리웠다. 입안을 맴도는 감칠맛을.
“이놈에 인생은 도대체 언제쯤 편해질라나.”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 4층을 누르고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향긋한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누군가 시킨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치킨인가 햄버거인가. 뭔가 고기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데.’ 이 궁금증은 이내 해결되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옆집에서 시킨 배달 봉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 못 참겠는데…….”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옆집 남자가 바로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그 역시 퇴근길에 참지 못하고 배달을 시킨 것이 분명했다. 잠시 냄새라도……. 나는 잠시 주변을 살핀 후에 봉투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주문 내역을 살펴보니 <1인 세트> 유니 짜장과 미니 탕수육. 배달 요청란에는 고춧가루를 따로 달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분 좀 먹을 줄 아는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배달 어플을 켜고 옆집과 같은 가게에 들어가서 1인세트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배달 요청사항에는 고춧가루를 달라를 문장을 쓰고 결제 버튼에 손을 올렸다. 1인 세트가 21,000원. 배달비가 3,000원. 총합 24,000원. 나는 다시 점심값과 내일 출금될 교통비를 생각했다. 휴대폰을 끄고 문을 열었다. ‘됐다. 뭐 오늘만 날인가.’ 하는 생각으로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마지막으로,
냄새만 맡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어둔 채로 짜장면과 탕수육이 담긴 봉투를 집어 들고 코를 파묻은 채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깊이 숨을 들이쉴수록 갓 튀긴 탕수육 냄새와 춘장 냄새가 뇌를 자극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 봉투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집으로 들고 가고 싶었다. 자장면을 슥슥 비빈 후에 탕수육을 올린 채로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싶었다. 돈 걱정 없이, 내일 점심 값을 걱정할 필요 없이 맘 편하게 음식을 먹는 게 왜 이리도 힘든 건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젠장. 짜장면과 탕수육 때문에 우는 날이 올 줄이야. 그때,
띵 -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것이 눈에 보였다.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옆집 남자가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필두로 음식에 코를 박고 있는 자신의 모습. 도둑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상황. 더 나아가서는 변태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닫았다. 나는 숨을 고르며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조금이라도 굼떴다면 옆집 남자에게 들켰을 것이 뻔했다. 그의 발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걸어오던 그는 잠시 멈춰 서더니 다급하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어……? 뭐야? 도착했댔는데?” 싸한 느낌이 등을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바스락 – 거리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옆집 남자가 시킨 1번 세트가 놓여 있었다.
“아 X발……. 도착했다고 사진도 있는데, 누가 가져갔나?”
그의 발소리에는 짜증을 넘어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그가 CCTV를 돌려보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범인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음식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모습도 들키게 될 것이다. 도둑으로도 모자라서 변태 취급까지 받을 게 뻔했다. 최악의 경우 경찰서에 가거나 이 집에서 쫓겨날 게 뻔했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돌려줄까? 도대체 뭐라고 변명하면서 돌려줘야 하냔 말이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져다 놓는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명분.
명분이 필요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던 명분이. <1번 세트>는 차가운 방바닥에서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다가 무심코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보인 것은 1번 세트가 담긴 배달 어플의 결제창이었다. 이건 정말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결제버튼을 눌렀다. 결제가 되었다는 문자와 가게에서 주문을 받았다는 알람이 뜬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인상을 잔뜩 쓴 채로 서성거리고 있던 옆집 남자의 모습이었다. “저기……!” 그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손에 들고 있는 음식 봉투를 바라보았다. “어……?” 그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얼른 그에게 봉투를 넘겨주었다. “진짜 죄송합니다. 저도 오늘 여기서 시켰는데 메뉴랑 요청사항도 똑같아서 착각했네요. 진짜 죄송합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주문서를 보여주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수상하다는 표정을 풀지 않았지만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신기한 우연도 다 있네요. 메뉴는 같을 수 있어도 요청사항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을 수 있다는 게.”
“자장면에 고춧가루 뿌려 먹는 사람은 꽤 많잖아요. 하하하…….”
옆집 남자가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을 닦았다. 그 순간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자장면과 탕수육이 배달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현관문에 머리를 기대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거……. 밥 한 번 먹기 더럽게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