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관광 이야기]
2024년 2월 9일 평양 순안국제공항, 국제공항이란 이름에 걸맞게 오랜만에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온 관광객 97명. 러시아와 북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도 한창이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 손에 큼직한 꽃다발이 눈에 띈다. 북한 외래관광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관광총국 관계자와 주북 러시아 대사관 인사들이 공항 환대 차 나왔다.
이날 평양 날씨는 최저기온 영하 6도, 최고기온 영상 4도. 2월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13.7도, 최고기온 또한 영하 5.9도에 불과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평양 날씨는 ‘포근했을’ 듯하다. 도착시간이 오후 2시 10분이었으니 더욱이 말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청사 밖으로 나온 이들의 두꺼운 외투 앞섬은 풀어재껴 있다.
국제선 치고는 짧은 편인 1시간 40분 만에 도착한 평양 공항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관광객들의 표정이 밝다. 피곤한 기색은 없다. 해외여행의 설렘도 있을 것이고 ‘쉽게 갈 수 없는’ 관광목적지인 북한이기에 더더욱 호기심 반 긴장 반일 수도 있겠다. 북한을 여행지로 선택했다는 자체가 이들의 해외여행 취향과 성향을 말해주는 듯싶다.
공항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에서는 성인뿐만 아니고 아이들 모습도 보인다. 스키 선수들로 구성된 학생단체로, 코치와 동행한 10대들이란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북한 관광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렌다”며 “스키장에 빨리 가고 싶고,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3박4일로 구성된 이 상품의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스키 휴가!’이다. 평양 관광 이외 북한 강원도에 조성된 마식령스키장에서 이틀간 스키를 즐기는 일정이다. 평양에서 스키장까지는 일반적으로 버스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상품은 특이하게도 원산갈마공항까지 국내항공으로 이동한다. 다만 관광객수가 50명 미만일 경우 버스로 대체한단다. 이번 단체는 97명이니 항공 이용이다.
이상은 코로나19 이후 북한이 맞이한 첫 번째 외국인 단체관광객 모습을 여러 자료로 재구성한 것이다. 의아했다. 북한의 첫 번째 관광단체가 중국이 아니고 러시아여서. 중국은 북한의 인바운드관광, 즉 외래객 관광에서 압도적인 규모를 차지한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보통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첫 번째 오픈한 대상이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다. 그러니 의아했다.
러시아 첫 번째 방북관광단체상품을 단순히 민간의 자율적인 관광상품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나 코로나 이후 북한이 받아들인 첫 번째 외래객 단체 아닌가. 북러 관계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단체에 알렉세이 스타리치코프 연해주정부 국제협조국 국장이 단장으로 동행했다는 점이 이를 웅변한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다시 점차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2022~2023년 인바운드 관광을 재개했다. 언제를 관광재개 시점으로 보느냐는,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특수한’ 조건이 붙지 않는, 입국 시 격리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조건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2022년 6월이다. 그때부터 코로나19 예방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해외입국자 격리를 면제했으니 말이다.
일본은 2022년 10월 기점으로 엄격한 외국인 입국 조건을 완화했고 대만도 같은 달에 단체관광 금지령을 해제했다. 태국도 2022년 2월 무격리 입국 허용지역을 전지역으로 넓혔고 홍콩은 2023년 4월부터 홍콩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출발전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조치했다. 비교적 해제가 늦었던 중국도 2023년 2월부터는 자국민의 해외 단체여행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유럽지역이야 이보다 훨씬 빨랐다. 예를 들어 영국은 2021년 7월 자유의 날을 선언해 모든 방역조치를 해제했고 2022년 3월부터는 입국 외국인의 방역 관련 모든 의무를 전면 폐지했다.
북한은 한참 늦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말이다. 2023년 8월에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그러니까 2020년 1월 이후 처음으로 평양-베이징과 평양-블라디보스토크 항공노선을 재개해 화제가 됐다. 자국민 귀국까지 막고 있다가 그때 처음으로 귀국을 허용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한 방역조치를 취했던 북한은 국경개방도 어느 나라보다도 늦었다.
외래관광 재개는 아니었다. 북한이 다시 북한관광상품 판매에 나서고 외래객 모객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제 이뤄지진 않았다. 평양국제마라톤 참가상품은 물론이고 골프상품까지 거론됐지만 풍문에 그쳤다. 그러다 2024년 2월에서야 드디어 외래관광객에 국경 문을 연 것이다.
그런데 왜 러시아일까? 이는 2020년대 북러 관계의 산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북한의 관광은, 특히나 인바운드 관광은 북한이라는 사회주의국가 특성상 독립적으로 추진되는 영역이라기보다는 북한의 국내외정치, 국제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코로나 이후 북한의 첫 번째 정상회담 국가는 러시아였다. 2023년 9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러시아 체류 기준 5박6일간의 방러 기간 동안 김정은 위원장은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 태평양 함대 등 러시아 극동 지역 주요 군사시설을 두루 시찰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2024년 6월, 2000년 이후 24년 만에 북한을 다시 공식 방문했다. 그리고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서 가장 큰 관심과 우려를 산 대목은 제4조 내용이다.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1996년 폐기된 양국간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의무가 사실상 부활했다는 평가다. 러시아는 1991년 우리나라와 수교하면서, 1961년 북한과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을 1996년 폐기했다. 이 조약에는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북러가 2000년 새로 체결한 ‘우호·선린·협조 조약’에는 상기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전쟁물자가 급한 러시아로서는 북한의 관련 지원이 요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 및 국제사회와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대결구도인 북한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면 미러 긴장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러시아와의 밀착은 다양한 측면에서 호재다. 핵개발로 지속되고 있는 대북 국제제재를 러시아의 지원을 통해 파열음을 낼 수 있고, 2017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2371호, 2375호, 2397호)으로 노동자 해외 파견이 금지됐으나 러시아 지원으로 암묵적으로 노동인력 해외파견이 다시 이뤄진다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양국이 관계를 다시 강화하면서 러시아인의 북한 관광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국제제재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관광 분야는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는 좋은 통로이자 선물이 될 수 있다. 실제 올해 체결한 위의 조약 제12조에는 “관광 등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조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올해 방북 전날 푸틴 대통령은 노동신문 기고글을 통해서도 여러 분야의 교류 활성화를 언급하며 “상호 관광여행, 문화 및 교육, 청년, 체육교류들도 더욱 발전시키려고 합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 하부단위 간에는 다양한 접촉이 이뤄졌다. 대표적인 것이 올레그 코제먀코 러시아 연해주 주지사의 움직임이다. 북한을 직접 방문해 강원도 마식령스키장까지 가서 답사하기도 하고 연해주에 온 북한 대표단을 접견하기도 하면서 연해주와 북한간 관광을 포함한 다양한 방면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올해 2월부터 추진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평양 노선을 이용한 러시아인들의 북한 관광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앞서 의아하다고 표현한 중국인의 북한관광이 먼저가 아닌 이유를 추론해 보자. 올해가 북중수교 75주년인 정주년이기에, 북한은 일반적으로 정주년일 경우 보다 많은 의미 부여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북중 인적교류가 원활치 않다는 것은 양국간에 무언가 미묘한 긴장국면이 조성된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게 만든다.
노골적인 파열음이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이후 회복 속도, 그 진척이 더디다. 북한 항공노선이 다시 재개되던 시점인 지난해 9월경만 하더라도 러시아가 관광 재개 첫 번째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시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가 정성일 북한 국가관광총국장을 만나면서 북측에 양국간 인적왕래, 관광의 조속한 정상화를 기대한다고 표명까지 했으니 말이다.
일각에서는 그래서 이렇게 해석한다. 중국은 현재 번듯한 국제사회 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 및 북한과, ‘북중러’라는 프레임으로 함께 묶이는 것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둘러싸고 미국과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국제제재 저촉 등의 민감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북한과의 활발한 인적교류 재개로 미국과의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특히 코앞에 다가온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신중 모드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코로나 전에는 북한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려 했던 중국의 입장이 시점에 따라 변화하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에 따라 그 대응이 달라지는 셈이다.
중국의 내심이 이렇다면 북한으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밀착은 북한으로서는 적절한 카드일 수 있다. 근현대 역사에서 혈맹관계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언제나 중국을 경계해 왔던 북한은, 또한 언제나 중국의 압도적 영향력을 경계해 왔던 북한은, 러시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에 시그널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 이후 첫 번째 외래관광 허용국으로 러시아를 선택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광 차원으로만 국한한다면 북한의 ‘러시아 관광 우선주의’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악수’다. 관광규모 및 외화수입 규모면에서 그러하다. 관광입국으로 따진다면 러시아는 북한의 첫 번째 개방 대상국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있어 관광은 물론 외화수입을 벌어들이는 통로이긴 하지만 그 절대적인 가치로 봤을 때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올해 북한관광은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3항차가 진행됐고 첫 번째 단체는 97명, 두 번째는 48명이었고 세 번째는 더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6월 상반기까지 추가로 몇 차례 관광이 더 진행됐는데 일부 항차는 모객이 안 돼 취소가 되었으며 대략 상반기에만 400여명이 북한을 다녀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여행기간은 항공운항일정과 연동될 수밖에 없기에 3박4일 또는 4박5일이다. 블라디보스토크-평양 노선은 주2회, 월/금 운항한다.
그럼 이 400명의 관광단체를 통해 북한이 벌어들인 외화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정확한 금액이야 알 수 없으니 거칠게 계산해 보면, 북한은 국가별로, 투숙 호텔별로, 단체 인원별로 1인당 1일 금액이 정해져 있다. 러시아, 단체당 10명 이상, 양각도 및 고려호텔 등 특급호텔 투숙 단체, 여행기간 4박5일을 기준으로 해서 산정한다면 1인당 1일 70유로를 송객여행사는 북측에 지불해야 한다. 그럼 계산해 보면 400명×5일×70유로×1,500(환율)=약 2.1억원이 된다. 여기에는 항공료, 마식령 스키장 이동 및 이용료, 가이드비용, 개인 쇼핑 비용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러시아 여행단체의 거주지역은 이론적으로는 러시아 전역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연해주 지역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연해주 인구규모는 188만명이다. 그리고 코로나 이전 2018-2019년 이 지역에서 북한 관광에 나선 규모는 러시아 연해주 관광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6,635명이고 관광목적으로 국한한다면 1,447명이다.
북한의 외래관광 규모 통계 자료가 없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코로나 이전 북한을 찾은 중국인은 120만명(관광 및 여타 목적 모두 포함)으로 추정되고 있고 북한 관광에 나서는 중국 배후지역을 동북3성으로만 국한한다 하더라도 그 규모는 약 1억9백만명이다.
이렇게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관광 규모는 비교가 성립되지 않는다. 6,635명 대 120만명, 188만명 대 1억9백만명이니 관광만 고려해서 선택하라면 명약관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국제관광을 재개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북한관광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 첫 대상국이 러시아라는 점도 여러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관광은 이런 점에서 북한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는 셈이다.
2010년대 북한 관광의 ‘화려한’ 서막을 열었던 국가는 중국이었다. 다음엔 2010년대 중국의 북한 관광이 어떤 점에서 화려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2010년대 굴곡지긴 했지만 북한으로서는 중국인의 북한관광은 달콤했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