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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국내관광이 있다?! 1-Day 투어 상품도!

[북한관광 21개 장면 중 열아홉 번째] 북한정책&사회변화의 또다른 지표

by KHGXING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는 7월 1일부터 국내손님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하게 된다.”


2026년 북한관광산업에서 가장 주목할 테마인 원산갈마지구 개장 소식을 접하며 이 문구가 눈에 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기사의 말미에 있던 문장. 평범하기에 더 낯설다.


북한에서도 국내관광이 이미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충분히 여겨지는 기사다. 사람 사는 곳인데 내국인이 국내 여행 다닌다는 게 뭘 그리 신기한가. 허나 우리가 ‘안다고 여기고 있는’ 북한과 국내여행,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국내여행이 별 건 아니지만 정확히 내가 아는 국내여행과 다른 사람이 아는 국내여행이 다르면 안 되니 먼저 정확히 그 개념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한국관광공사 자료를 보면 국내여행은 행정구역상 현 거주지(일상생활권)를 벗어나 다른 지역을 다녀오는 모든 여행이다. 그 목적은 관광·휴양, 출장·업무, 단순 귀성이나 단순 친구·친지 방문 모두 포함한다. 숙박여부는 상관없다. 여기에 세계관광기구(UNWTO)의 개념 가운데 하나만 추가하자. ’해당 국가에 거주하는 방문자‘의 여행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 정의의 기본 전제는 ‘국내 거주자가 이동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저 위 평범한 문장이 낯설다고 여기는 배경일 듯하다. 즉 여행은 이동을 기본 전제로 하는 행위이고 그러한 개인의 이동은 사회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과 같은 엄격한 사회주의 체제의 통제 시스템에서 관광, 여행은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실제 현상일 수도 있고, 외부에서는 적어도 그렇게 바라보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도 어느 사회에나 있는 관광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이동의 자유로움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북한에도 국내관광을 위한 인프라 조성과, 관련 관광소식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관광 관련 법령에서 국내관광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써가며 활성화 의지를 표방했다. 2023년 8월 30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27차 전원회의에서는 관광법을 채택했다. 북한에서 관광 관련 법규가 일반법규로 제정된 것은 처음으로 “국내관광을 활성화하는 것과 동시에 국제관광을 확대하고 관광객들의 편의를 보장하며 생태환경을 적극 보호할 데 대한 문제 등”을 담고 있다. 전면 통제됐던 국경이동을 재개하는 시기에 제정된 것으로 국내관광 활성화를 코로나 이후의 핵심 관광정책 방향으로 제시한 것이다.


법과 제도라는 것이 선제적으로 없는 현상을 조성 또는 억제하기 위해 생긴다고 보긴 어렵다. 이미 발생한 현상에 대해 사후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것이 법이 아닐까. 물론 향후 생겨날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막기 위해 제정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관련 현상이 있기에 그것과 연계해 문제를 따져볼 수 있는 것일 게다. 즉 북한에도 엄연히 국내관광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다고 바라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다. 물론 계층, 지역에 따라 향유 수준이 다를 수는 있겠다.


"북한 국내여행도 성황"


북한 국내여행에 개인적인 관심을 갖게 된지는 꽤 오래됐다. 2015년 언론 기사를 보고 ‘어 정말?’하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2015년 1월 북한 국내여행이 활황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에서 관광이라고 하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 주목을 받기 마련인데 인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 여행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여행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는 2012년을 꼽았다. 김정은 시대 시작과 대체로 맞물리는 시점이다. 활성화 요인으로는 관광자원의 개발과 하부구조의 정비를 꼽았다.


기사 제목은 ‘관광버스 타고 마식령으로’였다. 당시 마식령스키장이 개장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컸을 터이나 북한 국내관광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꽤 많았다. 여행 형태도 이전에는 ‘기관, 기업소가 조직하는 단체여행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가족여행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관련해서 한 연구논문(김현지, 북한 주민의 국내관광 실태에 관한 연구)에서 2022년 탈북자 대상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국내관광 유형은 단체관광 61.3%, 개별 여행은 38.7%였다. 단체관광도 당국의 정치사상 교양 수단이 아니라 직장 구성원 간 화합도모의 수단으로 내용도 바뀌고 있다고 한다. 개별 여행 비율이 높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사회의 통제 시스템이 이완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한편 실제 국내관광 상품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평양에서 마식령으로 가는 관광버스가 일주일에 3번 운영되고 있고 좌석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란다. 이렇게 국내관광을 취급하는 여행사로는 ‘평양관광사’가 소개되고 있다. 이 여행사는 2박3일, 3박4일, 6박7일의 스키관광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 여행사는 2019년에는 강서약수 치료관광 상품, 2020년에는 당일 설날맞이 평양 시내 관광상품도 출시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png 2025.6.24 준공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대내외 관광지구로 활용되겠지만 당분간 주력은 북한 국내관광용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Day 투어 상품도 등장


2023년 시점으로 시야를 돌려보면 코로나 기간인데도 앞서 얘기한 평양 관광상품이 다시 등장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내국인들 타깃으로 판매가 되었다. 코스에는 룡악산과 동명왕릉, 평양타조목장, 문수물놀이장, 릉라인민유원지, 통일거리운동센터, 공연관람 등이 포함돼 있다. 당일 상품이니 요즘 우리나라에도 많은 1-day 투어 상품인 셈이다.


판매 채널이 궁금하다. 보통 요즘 1-day 투어 상품은 OTA를 통해 홍보 판촉이 많이 이뤄지는데 북한에서는 신문, 방송을 비롯한 출판물과 인트라넷을 활용한 핸드폰 서비스에서 홍보가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 북한 온라인 쇼핑몰 ‘만물상’을 보면 판매상품분류에 신발/가방, 화장품/위생용품, 식료품, 보건의료품, 악기/체육기재, 특산물, 공예품 이외에 관광도 있다. 이를 운영하는 여행사는 2021년 신설된 모란봉관광사로 추정된다.


이러한 변화 시점은 앞서 얘기한대로 김정은 정권 시기이다. 북한의 국내관광에 대한 입장 변화는 꽤 드라마틱하다. 김일성 시대에는 ‘답사, 견학, 관혼상제와 같은 사유로 여행 증명서를 소지한 경우에만’ 지역 간 이동을 허용했단다. 김일성 시대, 김정일 시대, 김정은 시대 모두 외래관광에 대한 입장은 물론 국내관광에 대한 인식 차이는 꽤 컸다. 또한 경제 산업으로 받아들이는 정도와 통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준도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국내관광이 단순한 태동단계가 아니라 활성화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북한 당국의 정책 변화와 함께 관광에 대한 태도 변화 등 사회변화를 꼽아볼 수 있다.


북한재정수입 증가, 돈주들의 관광향유 심리


사회주의 통제시스템을 기본 골간으로 하는 북한에서 당국의 입장 변화는 중요한 변화 요인으로 꼽아볼 수 있다. 국내관광을 통해 재정수입 증가가 가능해 지면서 국내관광은 장려 대상으로 변모했다. 무료로 제공하던 시설에서 입장료와 사용료를 받으면서 국가재정은 증가될 수 있다.


또한 북한 경제의 시장화 속에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신흥 부유층이 자본을 쟁여두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게 함으로써 경제의 혈맥이 돌게 하는 데도 국내관광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울러 관광 인프라, 버스, 여행사, 각종 서비스 시설들을 돈주들이 운영하게 함으로써 인프라 확충과 재정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회통제와 재정수입증대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지만 북한 당국의 무게추는 김정은 정권 이후 후자로 기울었다. 물론 시점별로 ‘부작용’이 강해지면 전자와 후자 사이에 조이고 푸는 과정은 반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3년 국가기밀보호법은 조이는 과정에서 나온 사회통제법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나선형 우상향 흐름은 분명한 방향성이다.


국내관광 활성화는 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기반 확대 및 홍보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관광 인프라는 북한 주민들에게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는, 당국이 자신들을 신경 쓴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애민정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프로파간다, 통치이념 중 하나다.


사회변화측면에서는 북한에서 2002년 7.1 개선조치 이후 경제적 부를 축적한 돈주 등의 신흥 부유층이 소비문화집단으로 등장하면서 이들의 관광 향유 심리가 전반적으로 국내관광 희구 수요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국내관광 대상지가 된 곳은 온천이란다. 한때 무료로 운영하던 온천 요양소는 상업적 유료 봉사시설로 바뀌었다. 위 논문에서 인터뷰한 탈북민 인터뷰 내용이다.


“돈맛을 알기 시작하면서 머리도 복잡하고 아프니까 좀 피해서 쉬고 싶은데 집에서 쉬면 명분이 없으니까 웃긴 게 온천으로 가서 쉬는 거죠. 뭐 좀 한다는 사람들은 온천을 다니기 시작했죠. 이게 소문이 나서 엄청 많이 가기 시작했어요. 돈 있는 사람들한테 온천가는 게 여기서 말하는 관광의 발달이 된 거에요”


이렇게 북한 국내관광은 북한 사회 변화를 알 수 있는 주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국내관광의 시동은 북한 당국이 키를 주고 있을 수도 있지만 북한 주민, 북한 사회의 요구와 변화가 반영되어 주도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광이 북한을 바라보는 유효한 창이 될 수 있는 또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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