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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과욕은 금물!

23일: 살라스에서 캄피에요(35.19km)

2019년 6월 14일(금)

     

살라스 알베는 5층짜리 아파트의 1층의 한구석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협소했다. 하지만 하루 머무는 입장에서 이것저것 가리면 머물 곳이 없다. 하루 잠잘 곳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어제저녁 스페인 청년이 오늘 코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원래는 티네오까지 가면 된다. 그런데 일정을 하루 당길 수 있는 길이 있다며 내일 캄피에요까지 가고 다음 날 산을 넘어서 베르두세도까지 가면 된다고 한다. 

3일 길이 이틀로 당겨진다고 해서 영주 씨와 나는 그 길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 일정은 오늘 저녁에 포기했다. 캄피에요에 도착해서 우리 둘은 스페인 청년의 뒷담화를 엄청 해댔다. 그와 우리가 같다고 생각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은 모른 척하고 말이다. 사람이 이렇다. 

살라스 성당. 

30km가 넘는 일정이기에 5시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일어난다. 그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와서 짐을 싼다. 짐 정리가 끝나면 세면을 하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건너뛰기도 한다. 만날 사람이 없으니 그리고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짧은 인사와 함께 자기 갈 길을 가니 외모에 대해서 신경 쓸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아침을 먹기도 하고 아니면 길에서 먹기도 한다. 이런 날이 오늘로 23일째다. 23일 어쩌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23일 동안 길을 걷고 이런 일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내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아프기라도 하면 아침에 하는 일들을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는 것은 걷는 것을 못한다는 의미이다. 혹 아픈 것이 오래가면 결국에는 순례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걷게 도와주심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건강을 지켜달라며 짧은 기도를 했다.

어제 만들어 둔 샌드위치와 우유, 주스로 든든히 배를 채운 후 동이 트지 않은 살라스를 빠져나갔다. 길은 숲으로 이어졌고 곧이어 오르막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 처음에 넘는 게 낫지 하면서 열심히 산을 올랐다. 올라가면서 바라본 살라스와 그 뒤로 펼쳐진 산지는 떠오르는 태양 빛과 안개와 섞여서 신비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정상에는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밑에서 봤을 때는 날카로운 봉우리처럼 보였는데 막상 올라가니 생각보다 넓은 초지가 있었고 그곳에도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정상에서 한 숨 돌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계속해서 산을 타기도 하고 때로는 산의 8부 능선을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고지대로 올라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산 정상에 펼쳐진 푸른 초지.

 


순례길은 끝이 없다는 뜻인가?

보데나야 마을로 들어가는 터널에서 나는 재미있는 그림을 봤다. 이름 모를 순례자가 화살표를 뫼비우스 띠로 묘사하고 그 위로 순례자가 걷고 있었다. 순례는 무한대로 이어진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일까? 뫼비우스 띠는 무한대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니 전자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 사람만이 알겠지 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산티아고까지 가면서 몇 번을 더 보았다. 



티네오. 여기까지는 정말 문제없이 즐겁게 왔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길을 걷다 보니 티네오에 도착한 시간이 12시였다. 도시는 산 정상에서 중턱까지 이어졌다. 문득 데바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곳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었다. 티네오 입구에서 본 경치는 멋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앞으로 걸어갈 여정이 만만하지 않을 거야 하는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작은 마을들은 힘들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위로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티네오를 지나가는 도로를 보면서 캄피에요가 저 도로 어딘가에 있겠지 하면서 중심지를 향해 내려갔다. 

살라스에서 이곳을 지나가기로 결정했기에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노란색 화살표는 도심의 중심지인 성당을 지나가고 있었다. 

적당한 식당을 찾아서 우리는 샌드위치와 콜라로 점심을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늘 목적지인 캄피에요를 향해 걸었다. 티네오를 빠져나가는 길은 다시 오르막이었다. 


그나마 좋은 길. 정말 힘든 길이었다.

산을 넘는 길은 힘들었다. 어차피 산은 넘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길이 문제였다. 산의 그늘진 길에는 비가 와서 아직 마르지 않은 길이 많았다. 문제는 물이 가득 고여 있는 곳에는 소들의 배설물들이 엉겨있었다. 물과 흙 그리고 배설물이 섞여 있는 길을 피해 가는 길은 길 가장자리뿐이었다. 냄새까지 나니 머리도 아팠다. 그러니 멀쩡한 길을 걸어 올라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 이런 길은 시간은 시간대로 지체되고 몸은 몸대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걷다가 올라선 정상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렌즈에는 담을 수 없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고 바람 분 후에 잔잔하며’ 찬송이 생각났다. 이 멋진 풍경은 값없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험한 길을 걷다가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부지런히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눈을 정화해주는 경치임에도 힘들어서 인지 그냥 지나쳤다. 

강원도 대관령을 지나는 길에 사람 살기 좋은 높이가 해발 700m라는 표지판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높이의 길을 계속 걸으니 걷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힘들었다. 물론 렌즈에 다 담을 수 없는 멋진 풍경도 보고 그랬지만 점점 길은 힘들어지고 지루해졌다. 괜히 캄피에요 간다고 했나? 하면서 둘은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걸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내린 결정이니 재미있게 걷자며 나이 많은 내가 영주 씨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니 힘들었다. 

길에 똥 싸는 주범. ㅋㅋ

기록을 보니 912m 산을 넘었다. 그곳에도 넓은 초지가 있었고 어김없이 소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나는 소들에게 “너희들이 아무 데나 싸 놓은 응가 때문에 오늘 힘들었다~~” 하면서 말을 건넸다. 


산 정상에는 바람이 불어 걸으며 생긴 땀을 시원하게 말려주었다. 앞을 보니 왠 건장한 남성이 배낭을 앞뒤로 메고 걷고 있었다. 옆에는 여성이었다. 그라도에서부터 같이 길을 걸은 독일 부녀였다. 아빠는 꽤나 나이가 있어 보였다. 딸은 그에 반해 한참 어려 보였다. 아마도 늦둥이였던 것 같다. 

딸은 코에 귀에 많은 링을 걸고 있었다. 나도 딸이 있는데 내 딸이 저러면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딸이 왼쪽 다리를 다쳤는지 종아리에 붕대를 감고 나무 막대기에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아빠가 딸이 다리에 상처가 있다며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힘내라는 말을 해주며 길을 걸었다. 


길은 평지로 이어졌다. 비야루스 마을 간판이 보였지만 마을에 보이는 집은 두 채가 전부였다. “어떻게 이런 게 마을이죠” 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주 씨가 해주었다. 얼마를 걸으니 마을이 끝났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912m 찍은 순례길은 내리막 길로 바뀌었다. 마지막 삼거리는 정말 마의 구간이었다. 

길은 저 멀리에서 삼거리로 변했다. 그 먼 삼거리의 왼쪽에 두 명의 순례자가 힘들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도를 보니 삼거리에서 순례자들이 걷는 왼쪽으로 가면 오늘 목적지인 캄피에요였다. 

우리는 “다 왔어” 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 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정말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우리가 봤던 그 위치인 것 같은 곳에서 순례자들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도 우리처럼 희망을 안고 오겠지 했다. 


삼거리를 통과한 길은 삼거리까지 걸어온 만큼의 거리를 걸어서야 캄피에요에 도착하는 먼 길이었다. 

마지막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거리는 3km였다. 쉽다면 쉽게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산을 몇 개나 넘고 소똥 길 피하면서 걸었다. 시원한 바람도 오후에 들어서면서 찬바람으로 바뀌었고 그런 곳을 걸어서 인지 길게 보였고 힘들었던 것 같았다.


캄피에요에는 알베가 두 개 있었다. 일단 입구에 있는 알베는 작아서 패스하고 식당과 슈퍼를 겸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알베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슈퍼였다. 알베 안내 사이트에는 이곳에 부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슈퍼에서 식재료를 구입해서 저녁을 해 먹기로 했다. 하지만 안내와는 달리 부엌은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고생한 몸을 위해서 저녁은 식당에서 먹는 걸로 했다. 안내를 해주는 주인아주머니가 짧은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very very delicious” 저녁 식사는 10유로였다. 기대를 했고 10유로를 뛰어넘는 맛있는 식사에 고생한 몸은 행복해했다. 


군 생활관 같은 알베. 


알베 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간 내부는 창고의 한 구석을 개조한 곳이었다. 50개 정도의 이 층 침대가 있었고 깔끔한 샤워시설과 화장실은 좋았다. 우리 뒤를 이어 살라스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힘겨운 발걸음으로 숙소에 들어왔다. 그들도 우리만큼이나 힘든 모습이었다. 서로서로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인사는 힘든 수고를 조금은 잊게 해 주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왔다. 영주 씨가 발을 보여준다. 발 상태는 심각했다. 일정을 조율해야 했다. 영주 씨는 자기 때문에 내 일정이 틀어질까 걱정했다. 하지만 내 일정은 여유가 있었다. 사람이 먼저고 일정은 나중이라며 앱에 있는 데로 폴라 데 아얀데까지 가기로 했다. 원래 일정은 호스피탈 루트를 통해 팔로봉을 넘기로 했다. 하지만 영주 씨 발로는 무리였다. 그렇게 일정 조율을 한 후 잠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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