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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잊지 못할 부대찌개

24일: 캄피에요에서 폴라 데 아얀데(14.66km)

2019년 6월 15일(토)

     

아침에 일어나서 영주 씨 발부터 살폈다. 역시 무리였다. 영주 씨는 자신 때문에 일정을 바꾸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 일정은 넉넉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미안해하는 영주 씨를 위로했다. 짐을 싸고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보슬비가 뿌려서인지 날씨는 쌀쌀했다. 

아침을 먹고 길 위에 섰다. 걸으며 먼 곳을 봤다. 먼 하늘과 가까운 하늘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곳은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가야 할 방향의 하늘은 파란 하늘색이 선명했다. 조금 걸으면 파란 하늘을 보겠네 하며 걸었다. 길은 도로를 따라 걷다가 산길로 이어졌다. 오늘 가기로 한 호스피탈 루트 앞에는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안내판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결정한 대로 폴라 데 아얀데로 향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하늘은 맑았다.

790m까지 올라가는 산길은 어제 걸었던 산길과 같았다. 정상으로 가기도 하고 8부 능선을 타고 도는 산길은 걸을 만했다. 군데군데 어제처럼 험한 길도 있었지만 어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쌀쌀했던 날씨는 12시가 넘어서면서 따뜻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구름 덕분에 뙤약볕을 피할 수 있어 감사했다. 



서로서로에게 작은 다리가 되어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폴라 데 아얀데 입구는 2차선 도로였다. 카미노 길은 주택가로 향하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가려다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화살표를 따라 걷기를 잘했다. 주택가를 넘은 순례길은 곧장 폴라 데 아얀데 중심가로 이어졌다. 공립 알베를 찾지 못해서 잠시 길을 헤맸지만 알베에 도착한 시간은 13시였다. 












알베에 도착해서 하루 일과가 끝났다는 표시.


경찰서 주차장 위에 세워진 알베여서 안전하다는 사이트의 안내는 사실이었다. 관리인은 없었고 문은 열려있었다. 관리인을 기다리면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있었다. 30분을 기다려도 관리인은 오지 않았다. 잠시 뒤 한 순례자가 들어가더니 우리를 부른다. 그러면서 안내문을 가리킨다. 내용을 보니 관리인은 16시 넘어서오니 들어와서 쉬라는 내용이었다. 











20g 고추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늦은 점심은 아침에 챙겨둔 빵과 음료수로 대신했다. 부엌에 있는 셰어 박스를 보다가 내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비행기에서 비빔밥 먹을 때 주는 20g 자리 고추장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한국 떠난 지 26일 만에 보는 고추장이었다. 영주 씨에게 보여주니 부대찌개 해 먹자고 한다. 시간을 보니 피에스타 시간이라 슈퍼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16시 30분에 문을 여는 슈퍼가 있었다. 그때 재료를 사기로 하고 쉬었다가 마을 구경하기 위해 나갔다. 








햇볕은 따스했다. 따스한 햇볕을 쬐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과 순례자들은 바르의 외부에 앉아서 한가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닫혀있는 가게의 외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음악을 들었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 이렇게 편하게 있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없었다. 떠나보니 바쁘게 살아온 일상에 이런 휴식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슈퍼가 다시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추어서 우리는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재료와 야채밥과 내일 아침거리까지 구입해서 알베로 왔다. 20g 고추장으로 만들어진 부대찌개는 정말 맛있었다. 26일 만에 맛본 그 얼큰함은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옆에서 매운 기운 때문에 연신 기침을 하던 아일랜드 순례자가 신기하게 우리를 보았다. 그에게 한번 먹어보겠냐 하니 “yes” 하길래 이거 무지 매운 것이라고 했다. 매운 것 잘 먹는다고 어깨를 으쓱하기에 한 국자 퍼서 주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 먹은 후에 곧바로 엄청난 양의 물을 들이켰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웃었다. 바닥까지 싹싹 먹어치우는 우리를 그는 존경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26일 만에 맛본 고추장의 맛. 잊지 못할 천상의 맛이었다.

20g 고추장의 힘은 정말 강했다. 사실 20g 고추장은 비행기에서나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구할 수 없고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작은 고추장은 그 진가를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의 결핍은 그것이 작고 볼 품 없어도 소중한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비싼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한국인의 주식은 그래도 아직은 밥이다. 쌀 미(米)는 여덟 팔(八)이 두 개 결합된 한문이라고 한다. 쌀 한 톨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든여덟 번의 손길이 들어간다며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쌀 한 톨도 이러할진대 20g 고추장 만드는데 들어가는 손길이나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작은 것 하나라도 이제는 그냥 넘기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영주 씨 발바닥 덕분에 둘은 잊을 수 없는 식사를 했다. 정말 맛있었고 지금도 폴라 데 아얀데 하면 부대찌개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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