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파묻힌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며
일상에 명상 일흔여섯 스푼
서울은 며칠 전까지 폭설이 내렸다가 지금은 다시 맑아졌다. 볕이 들지 않은 응지에서 녹지 않은 눈은 때가 낀 채 서서히 풍화되고 있다. 대로변의 눈이 다 녹은 자리에는 숨어있던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오들오들 떨며 뭉쳐 있다.
녹지 않은 눈들과 얼어있는 은행나무 잎
어울리지 않는 두 조화를 오랫동안 쳐다본다. 사실 2~3주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 가을 같지 않고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더러 반팔 입은 사람도 있었고, 11월 중순임에도 내가 주로타는 7호선은 종종 에어컨이 나왔다. 아무래도 덥다고 하는 사람들의 민원에 못 이겨 기관장이 켰으리라.
그런데 그때 그 지하철에 있던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2주 뒤 서울에 11월 기상 관측이래 117년 만에 최대 강설량이라는 폭설이 올 것을 알았을까?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아내와 10월 초 몰디브에 신혼여행을 갔었을 때였다. 지상낙원이라는 이명을 가진 몰디브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단, 신혼여행 4일까지는.
5일 차에는 눈이 바가지로 퍼붓듯 물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있던 작은 섬이 잠기는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그래도 50년을 버텨온 리조트니까 이런 것은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아내를 다독였지만 해도 해도 너무 많이 왔다. 아니 발목까지 물에 잠기는 거 같은데? 하늘을 가리키며 길 가던 버틀러에게 물었다. 물론 아주 짧은 영어로.
"Is it ok?"
"No problem, this is maldives. enjoy"
버틀러의 말대로 다음날 일어나자 물에 잠겼던 섬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을 배출해 냈다. 그리고 다시 요란한 햇볕을 비췄다. 전날의 비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이. 몰디브의 사람들도 그랬다. 늘 아주 강하고 튼튼한 우산이 리조트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해가 뜨면 선글라스를 끼고 선크림을 발랐고 비가 오면 곁에 있는 우산을 썼다.
지구 온난화가 더 심해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혹자들은 정말 봄과 가을이 없어질 거라고 예측한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보다는 열대화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그런데 봄과 가을이 없어진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나는 1년 중에 5월과 10월을 가장 좋아하니까.
근데 만약 진짜 봄과 가을은 없어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게 되면 어떻게 될까
봄이라는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로, 가을은 가을 아침이라는 노래로 교과서 속에서만 미래의 아이들에게 관념 속으로 주입되고, 봄과 가을은 어른들에게 기억과 추억으로 남는 세상 말이다.
그건 마치 조울증과 같은 날씨겠다. 미칠 듯이 뜨거웠다가 미칠 듯이 추워지고, 비가 퍼부었다가 며칠 뒤면 눈이 퍼붓는 날씨. 생각만 해도 이상하긴 한데 내가 죽기 전에 이런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폭설 속에 파묻힌 은행 잎들도 봤으니까 말이다.
날씨가 변화하듯 세상도 몰라보게 달라진다. 2008년의 우리가 현재 정도의 스마트폰 기술을 예측하지 못했듯 우리는 10년 뒤의 모습을 과소평가한다. 인공지능 로봇은 BMW 공장에서 이미 가동을 했고, AI는 예술계와 노래, 소설, 에세이 시장까지 점령했다. 날씨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더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정말 영화 아이로봇처럼 로봇이 상용화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걸까. 10년 뒤 2034년 내 옆엔 상용화된 가정용 로봇이 앉아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갈 것이다. 몰디브 인들이 비가 오면 아주 크고 단단한 우산을 펼쳐 들고, 해가 뜨면 선글라스를 끼고 선크림을 덧바르듯이. 아마 우리는 반팔을 입고 롱패딩을 입지 않을까. 흠... 그렇다면 아주 가벼운 압축 롱패딩이 나올 듯하다.
뜬금없는 소리 같겠지만, 지금 나는 경복궁 옆 은행나무를 생각한다.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5번 출구 옆에는 아주 큰 은행나무가 있다. 1918년 조선총독이 심었다고 추정한다. 100년을 넘게 산 셈이다. 100년의 세월이라.. 고목나무는 광복절도 보았고, 6.25전쟁도 치렀고, 우리나라 모든 역대 대통령을 다 보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모든 날씨, 모든 변화를 겪고 그 자리에 지금까지 있다. 올해도 노란빛으로 세상을 물들였다가 미련 없이 자기의 이파리들을 떨쳐낼 것이다.
나와 아내는 이 공간을 참 좋아한다. 아늑하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늘 우리를 반겨준다. 아니 반겨준다고 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그냥 있다. 누가 오던 자기의 곁을 내어주고, 누가 가던 붙잡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언제든지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일까. 이 공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석촌호수에 며칠간 뜨는 풍선 인형에는 사람들이 많지만 말이다. 물론 사람이 많이 없어서 아내와 나는 더 좋아한다. 한 참을 은행나무 밑에서 앉아서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다가 온다. 짧게 유한한 것에는 늘 관심이 집중된다. 몇 주도 못 가는 꽃들은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어느 사진에도 잘 담기지 않는다. 그냥 말 그대로 배경일뿐이다.
그래.. 이제야 알았다.
나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무가 새순을 틔우고, 울창해졌다가, 단풍이 들고 낙엽을 떨어 뜨리듯이
나도 카디건을 입다가, 다시 반팔을 입고.. 마침내는 다시 롱패딩을 꺼내 입을 것이다. 아니면 반팔 입다가 롱패딩만 입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지구 열대화니까.
그런데 날씨와 세상에 불평하지 않고, 누가 오든 누가 가던, 변하지 않는 나의 중심을 세워보고 싶다. 경복궁 옆 은행나무처럼. 100년을 채 못 사는 인생이지만 세상의 풍파에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지켜나가려 한다.
물론 죽고 나서도 내 의지가 이어져 200년 300년 이어지면 더 감사하고 말이다.
11월의 마지막 날 풍화되는 눈에 박힌 은행나무 잎을 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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