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명상 아흔 네 스푼
이랬던 내가... 모든 종교의 신을 찾으며 복을 빌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전화통화도 잘하고 목소리도 정정하셨는데, 의식이 저하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사정을 해서 3차 병원으로 전원 시키는 일이 전부였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결과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을 때 초조함과 불안함이 몰려왔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언가 의지할 곳을 찾게 된다.
자연스레 두 손이 모아졌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한 번도 신을 안 믿던 사람들이 갑자기 불러서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이 뜨끔 놀라셨는지는 모르겠다
"얘 내들 이럴 애들이 아닌데"
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나?
기도가 제대로 먹혔는지 모르겠지만
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말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이 많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내가 겪은 것처럼 그렇다.
나약한 한 인간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의지할 만한 초월적인 존재를 찾게 된다.
바로 신이고, 종교다.
기존부터 생각해 왔던 종교에 관한 생각을 오늘 적어볼까 한다.
종교를 공부하다 보며 드는 생각은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은 하지만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두려움, 불안함이 없는 상태에다가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상태인 것이다.
불교의 공(空), 무아(無我) 사상을 한 번 살펴보자.
불교적 명상 훈련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아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내면에서 나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고 외면에서도 본질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모든 것이 공(空)하다.라는 것이다.
대개 우리의 고통의 원인을 살펴보자면 '나의 것'이라는 이라는 집착 때문에 괴로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나의 것'이라고 규정짓는 것 때문에 만들어지는 고통들은 별게 아닌 게 될 수 있다.
이를 단박에 깨달으면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나는 이해는 하지만 여전히 중생의 삶을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에서 묵상 기도를 아주 오래 하게 되면
신과 합일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라는 존재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면 지금 이 고난과 고통 모두 신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슬퍼할 것도 아니며 두려워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두려움 없이 타인에게 베풀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내 피부 바깥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것을 아버님께 맡길 뿐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진정 합일이 된다면, 예수가 겪은 숱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불교의 모든 것들이 비어 있어서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것.
기독교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얼핏 보면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모습은 다르지만 자아와 세계와 경계가 사라지는 같은 말인 것이다.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011
산행을 한다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처음에 A라는 코스로 갈 수도 있고, B라는 코스, C라는 코스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에서 본다면 A든, B든, C든 어떤 방향이던지 다 의미가 있는 길인 것이다.
그러니 A로 가는 게 맞다, B로 가는 게 맞다 싸울게 아니라.
서로 같은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종교를 믿던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이전까지 나는 기복신앙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왜 굳이 누구한테 빌어야 하나?라는 거만한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 둘 곳 없는 상황에서 정말 힘들 땐 누군가에게 그냥 기도 하는 게 정신적으로 더 나을 수 있다.
왜 연구 결과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무교인 사람들 보다 더 장수한다고 나와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평소에 종교의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힘들 땐 가끔 신에게 기도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매번 빌 때보다 안 빌다가 한 번씩 빌면 기도빨(?)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다가 정말 수행이 많이 되어 깨달은 자가 되어버린다면.. 아마 이런 고민 따위는 안 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