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안녕, 한 평 텃밭

<소박한 한 평 텃밭러의 사계절> 겨울 2장

by 조이홍

고라니에게 양보했던 마지막 배추 한 포기마저 보이지 않았다. 밑동만 남기고 참 알차게 먹어 치웠다. 첫눈 나리던 날, 배고픈 고라니 가족의 허기를 달래주었기를 바랐다.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적인 마음을 담아 자연에 되돌려 준 약소한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났다. 한 평 텃밭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흙을 뒤엎고 거름을 주고 구획을 나누어 알차게 모종과 씨앗을 심었다. 아쉽게도 새 생명이 두터운 땅을 뚫고 세상을 향해 삐죽 고개 내미는 결정적 장면은 놓치고 말았지만, 조그맣고 파릇한 녀석들이 대견해 저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더랬다. 자연발생이 의심되는 작은 돌멩이들을 수시로 고르고 한여름 뙤약볕은 말할 것도 없고 온화한 봄볕에 행여 목마름이라도 느낄까 물 주기에 여념 없었다. 잡초의 역습에 닭똥 같은 땀을 뚝뚝 흘렸고 지루한 장마와 위협적인 태풍에 배수구를 더 넓게 파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반나절은 안절부절못했다. 비실비실한 녀석들에게 괜스레 미안해 웃거름을 듬뿍 뿌려 주고 빼꼼하게 솟아난 쌈채소들을 부지런히 속아주었다. 달랑 한 평 텃밭에 뭐 할 일이 그리 많겠어 싶지만, 들어간 정성으로 따지면 한 마지기(200평)에 버금갈 터였다. 아낌없이 쏟아부었고 부족함 없이 얻었다. 적어도 한 평 텃밭에는 등가교환이 있었다. 계몽주의와 자본주의가 해내지 못한 일을 자연주의자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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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 텃밭에 소복하게 눈이 쌓이면서 소박한 텃밭러는 비로소 텃밭의 공백을 바라본다. 늦겨울과 초봄의 경계에서 스치듯 만났다가 세 계절을 돌아 다시 마주했다. 욕망과 욕망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곳, 한 평 텃밭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또한 삶의 일부이기도 했다. 이제까지 한 평 텃밭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했다면 이제 비어 있는 그대로의 여백을 즐길 시간이다. 전지적 텃밭러의 시점, 봄의 푸르름도 여름의 울창함도 가을의 농염함도 없지만 겨울의 스산함이 싫지만은 않다. 어쩌면 마음까지 하얗게 표백해 주는 첫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괜스레 외투의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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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 위에 정체 모를 발자국이 텃밭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네 발 달린 짐승 인지도 의심스러운 일렬로 된 자국이었다. 어쩌면 새끼 고라니나 멧돼지, 어쩌면 파양 당해 동네 뒷산을 제2의 보금자리 삼은 길냥이일지도 몰랐다. 그 발자국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먹을 거라고는 전혀 없는 12월의 빈 텃밭을 터벅터벅 걸었을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쩌면 '무의 세계'로 돌아간 도깨비처럼 너무 외로워 뒷걸음쳤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발자국이라도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몸부림 말이다. 할 일 없는 텃밭러에겐 발자국 하나도 상상의 요람이 되고 드라마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 이것이 진정 '여백의 미'를 즐기는 방법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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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파리한 줄기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가만있자. 맞다, 쪽파가 남았더랬다. 하얀 솜이불 속에서 늦잠 자다가 다리가 삐져나온 우리 집 개구쟁이들 같다. 한겨울에 핀 천진난만함이라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 두툼한 솜이불 아래에 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터였다. 카렐 차페크는 자연의 겨울잠에 대해 '너무 바쁜 나머지 위를 향해 자라는 걸 잠시 보류한 상태"라고 묘사했다. 자연의 역동성은 겨울이라고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득 지난 장마에 어렵게 모셔온 토룡(지렁이)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살을 에는 추위가 닿지 않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아늑한 겨울잠에 취해 있기를 바랐다. 부디 낚싯바늘이 꿈에 나오지 않기를. 우리가 아는 것보다 지렁이들은 훨씬 많은 일을 한다. 식물의 유기농 재배는 그들이 없다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베푸는 그들의 선행에 비해 우리는 지렁이를 하대한다. 아니, 혐오한다. <휴먼카인드>에 의하면 다른 종에 대한 배척은 '낯설기' 때문이란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막힌 세상, 우리 아이들이 평생 지렁이와 만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지적처럼 '접촉'만으로 우리는 세상의 골칫거리를 절반은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봄은 아직 멀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단지 '내일 일은 내일 하기' 위해 한 평 텃밭의 이야기를 끝내려고 한다. 당장이라도 이면지 한 장을 꺼내 손바닥만 한 텃밭을 어떻게 나눌지 그려보고 싶지만, 그 설렘과 기쁨은 나중을 위해 저금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하늘 같은 아내는 그렇게 식물을 가꾸고 싶으면 집안에 있는 화분들한테 관심 좀 가지라고 꾸짖는다. 노노, 그건 오롯이 아내의 기쁨이다. 누가 감히 절대자의 희열을 훔칠 수 있겠는가. 오, 그런데 빈 화분 하나가 눈에 띈다. 그럼, 저기에 새로운 걸 심어 볼까? 레몬그라스나 딜(dill, 한해살이 허브)은 어떨까? 어쩌면 소박한 텃밭러의 겨울이 조금 바빠질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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