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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y 11. 2024

슈퍼히어로

<한뼘소설> 16화

 그녀와 처음 마주한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두 속아 넘어갔지만, 나는 그녀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차렸다.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보는. 방호복을 입은 그녀에게 “여긴 병원이 아니라 우주 어디인가 봅니다.”라며 건넨 말을 평범한 사람들은 시답잖은 농담으로 여겼지만, 그녀는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태연한 척했지만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주사 놓을 때 "방호복이 익숙하지 않아서"라며 헤매는 척 연기까지 했다. 서툰 행동들이 제법 그녀를 평범하게 보이게 했지만, 오히려 내겐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레벨 D 보호구는 무게가 3kg이나 나갔다. 부직포와 필름을 여러 겹으로 덧대 입고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것뿐인가? 마치 달에 착륙한 우주인처럼 행동이 둔해졌다. 고글에 습기가 차 수시로 시야를 방해하고, 두세 겹 낀 보호장갑 때문에 손끝 감각도 무뎌졌다. 게다가 두 시간 착용하면 네 시간 쉬어야 할 정도로 체력을 소모시켰다. 평범한 인간은 30분도 버티기 힘든데 그녀는 온종일 날아다녔다. 그것도 연신 미소 지으면서. 사실 나 말고 다른 환자들도 하나둘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이곳을 떠난다. 시원섭섭하다. 수많은 환자가 이곳을 거쳐갔다. 대부분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두 번째 삶을 얻었다. 모든 게 그녀 덕분이다. 병원을 떠나기 전에 당신들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해주려고 한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정체를 숨기고 코로나 19 중증환자를 돌보는 특별 격리 병동에서 의사로 일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적과 싸우는 중이다. 그녀에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하냐고? 그럴 필요 없다. 당신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 이미 그녀는 당신 곁에 있을 테니까. 그녀의 정체는 B619 행성에서 온 슈퍼히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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