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May 05. 2024

연 날리는 아이

<한뼘소설> 15화

바람이 분다. 그날처럼. 

내 작은 해마는 그날의 기억을 꼭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한눈팔면 달아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날이 좋았다. 도깨비씨 기분이 좋은 듯했다. 수채물감을 풀어놓은 듯 투명한 파랑 하늘, 흰구름 하나가 무리를 이탈한 어린양처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누가 4월을 잔인하다고 했던가. 활짝 핀 봄꽃들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다. 자연이 건넨 인사가 절정을 향했다. 봄의 향연 속에서 그날도 아빠와 나는 연을 날렸다. 독수리가 그려진 평범한 연이었다. 중앙공원에 있는 아이들 열에 아홉은 모두 같은 연을 날렸다. 딱 하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 연은 진짜 새처럼 창공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비상했는데, 우리 독수리만 매번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재미없다! 그만할래요, 아빠." 

"포기하면 안 돼. 한 번만 더 해보자."

"벌써 열 번도 넘게 해 봤잖아요. 우리 독수리는 날지 못하는 게 분명해요." 

"아빠가 요령이 없는 걸지도 몰라. 틀림없이 날게 될 테니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이글대는 아빠의 두 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빠는 두 손으로 연을 잡았고 나는 줄을 당겨 앞으로 내달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내 마음에서 온 것인지, 아빠가 외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더 빨리 달리고 싶었다. 오른쪽 다리만 아니었다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아빠는 연 날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질끈 눈을 감고 있는 힘껏 달렸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 같던 독수리가 이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줄을 더 풀라고 아빠가 소리쳤다. 줄을 풀어 하늘로 흘려보냈다. 마침내 우리 연이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바람을 타고 하늘에 닿았다. 그 모습이 마치 진짜 살아 있는 독수리처럼 보였다. 기뻐서 그 자리에서 겅중겅중 뛰었다. 오른쪽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참을 만했다. 뒤돌아 보니 다 큰 어른이 엉엉 울고 있었다. 내가 본 아빠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날은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날이었다. 그 사고로 나는 3년 동안이나 휠체어 신세를 졌다. 어린 나는 엄마의 부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에게 물어봐도 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신다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아빠 몰래 편지를 썼다. 보내지는 못해도 왠지 엄마는 내 편지를 읽을 것 같았다. 아마 아빠가 내 편지를 훔쳐본 모양이다. 그날 연이 하늘 끝에 닿자 갑자기 아빠가 연줄을 뚝 끊었다. 그리고는 내가 쓴 편지가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전해졌다고 말했다. 아빠가 왜 그토록 연을 날리라고 했는지 그제야 이해되었다. 


이제 나는 그때 아빠만큼 나이를 먹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오른쪽 다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그날 이후 매 해 같은 날 연을 날렸다. 커다란 독수리 연에는 언제나 두 통의 편지를 담았다. 한 통은 엄마, 또 한 통은 아빠에게 보냈다.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 편지를 받고 기뻐하실 거 상상하면 무척 행복했다. 그런데 매번 눈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이 아빠는 울보라고 놀려댔다. 나도 그날 그랬다. 

이전 14화 메시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