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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24. 2021

Dread of Life


빵가게의 이름은 분명 <Bread of Life> 맞다. 하지만 여행 일기장에 B D 겹쳐 적어 놓는 바람에 <Dread of Life> 읽히기도 한다. 철자를   실수를 했던 모양이다. 단지 알파벳 철자 하나의 차이지만  의미는 Bread() Dread(두려움)으로 확연히 달라진다. 빵가게 이름으로 <삶의 두려움> 따위를 사용할리 없다. 역시 <생명의 > 같은 풍요로운 이름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바라나시라면, 가게 이름을 삶의 두려움으로 하든 불안한 삶으로 하든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갠지스 강에서 마주한  삶의 민낯은 두려움으로 가득했고, 확실히 죽음보다  질기고 강렬한 맛이 났으니까.


인도 여행에서 손꼽아 기다리던 곳 중 하나가 갠지스 강이다. 특별히 강에 매력을 느꼈다기보다는 ‘갠지스’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묵직한 존재감을 동경했을 것이다. 여행자들의 마음속에 각인된 인도는 곧 갠지스이며, 모두의 여정은 오로지 이 강으로 흐르기 위함일지 모른다. 강은 여러 다큐멘터리와 여행기를 통해 익히 접했던 그대로 인도인들에게 더없이 신성하고 고귀한 것이었다.


흔히 인도를 ‘신의 땅’으로 부르지만 당시 나는 종교가 없었기에 믿음이 깊지는 않았다. 다만 신이 그곳에 거해 있으리라는, 그로부터 곧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정도가 있었다. 아주 그럴싸하게 삶의 마지막을 강물 위에서 장식할 수도 있을 거라고, 청춘의 허세도 좀 부렸다. 물론 그즈음 해서 죽느니 사느니 하는 생각보다는 간절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지만.


나는 기대감을 잔뜩 안고 강가로 내려갔다. 저녁이었고, 뿌자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으며, 엄청난 인파들로 가트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정신줄을 놓는 순간 강물에 꼴사납게 빠져버릴 수도 있었다. 천주교인이  지금은 신을 섬기는 신자들의 정성을 알지만, 당시 나에게 신이란 램프를 문질러 깨우는 지니 같은 존재였다. 급할    모아 기도하면 소원을 이루어 주는.


제사장들이 램프에 커다란 불을 넣어 신성한 예배 의식을 시작하자 축제라도 열린 듯 주변이 환해졌다. 하지만 쉼 없이 몰려드는 관광객과 불빛 아래 다닥다닥 붙은 불나방들로 오래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다. 바라나시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을 꼽자면 강물에 몸을 담근 인도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물에 몸을 씻고 머리를 적셨으며,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아 마시거나 호기롭게 수영을 하기도 했다. 강물은 마치 인도인들의 삶과 촘촘히 연결된 ‘운명’인 듯 보였다.


뒷날 오후, 나는 시내 베지터리언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볼리우드 영화 한 편을 봤다. 흥겨운 영화가 끝나자 아씨가트를 시작으로 메인 가트까지 강가를 따라 긴 산책을 즐겼다. 그 시각, 강물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의 보트들은 뾰족한 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래 사이로 조그만 조개껍질들도 보였다. 물론 여기에 온갖 쓰레기와 악취를 더해야 하지만.


대낮의 갠지스 강은 저녁의 신성함 대신 소위 ‘똥물 가까운 품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해가 뜨고 물이 빠져나가자 강바닥 아래에 숨겨져 있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물의 빛깔은 한눈에 보아도 탁하고 흐릿했다. 방금 전까지 분명 신성했던 갠지스의 강물이 옷자락에 튀기만 해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강은 이방인의 영혼을 절대 품을  없다는 . 나는 나대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 한강물이 그립기는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 이제  눈을 감습니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세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세요.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야영장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캠프파이어를  때면 선생님들은  이런 멘트를 하셨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울었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나는 “눈을 감습니다.에서 제일 먼저 울었다. 내가  커버린 탓일까? 불꽃이 피어오르던 강가의 화장터를 보며 야영장의 캠프파이어만큼의 감정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무시무시한, 엄청난, 두려운, 고귀한, 영원한 . 그러나 그날 장작더미 위에서 타오르던 망자의 모습은 되려 심플한 것이었다. 이제 편안함보다는 허무함에 가까운.


“설마 이게 끝이야?” 죽음은 나무토막 하나가 불에 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중엔 어느 게 사람이고 어느 게 장작 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나는 강가에 피워 놓은 모닥불을 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허탈했다. 눈으로 직접 보았던 죽음은 그랬다. 누군가, 누구든 세상을 떠난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그러나 오히려 가장 배신감이 드는 것은 삶 쪽이었다. 무자비하며 때때로 역겨운 삶에 비해 죽음은 너무도 단순했다. 정작 내가 느낀 두려움은 죽음이 아닌 삶이었고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화장터에서 돌아와 숙소 침대에 누웠다. 우울한 생각을 끊어버리기가 어려웠다. 사는  의미 없다 말하던 허무주의자는 온데간데없고, ''이라는 커다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20 나의 삶은 민낯을 드러낸 강바닥처럼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기엔 부족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도 아름답지 않은  제대로  삶이 아니라 여겼다. 나는 타오르는 ‘모닥불앞에서 삶이 주는 무게를 절절히 느꼈다. 때로는 바보처럼 멀리 도망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받아내고 견디어낸 청춘은 일그러진 그대로 아름답고 강한 것이었다.


산다는 게 매일 배부른 빵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만큼 고귀한, 그 자체로 양식이 되는 축복임이 분명하다. 20대 내내 구호처럼 외치던 죽고 싶다는 말은, 생명이 주는 강렬한 무게 앞에선 더없이 무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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