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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희 Oct 22. 2023

꽃은 사람을 위해 피지 않는다

  우리 집 뜰 옆 길가에 난 바랭이풀을 잘라내다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개암나무 열매를 보고는 다른 풀들과 함께 갈퀴 자루로 긁어내는데 냉큼 끌려오질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올봄 싹이 나 있었던 것인지 흙에 콕 박혀있는 게 보인다. 두껍고 단단한 껍질을 가진 열매인 개암이 싹이 난 것이다. 개암(헤이즐넛), 장호두(피칸)나 밤 열매가 땅에 박혀 있다가 날카로운 도구로 깨어지지 않은 열매들이 발아하는 모습을 보면 어떠한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  그 씨앗들은 맨 손으론 어림없고 예리한 도구를 들이대도 쉽게 갈라지지 않는 씨앗 껍질이 싹 틔울 때를 맞이하면 입이 쩍 하고 벌어지듯 두 갈래로 갈라진다.

 때론 그 씨앗이 열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씨앗이 벌어질 때는 사람의 가슴처럼 가슴이 뻐개지는 아픔 있을까'

 '씨앗들만이 가진 희열일까'  

씨앗이 움트기 좋은 때를 만나 스스로 뿌리를 내린 식물 씨앗은 화분에서 사람이 관리하는 것에 비하면 초기 발아는 좀 늦을지 몰라도 아주 잠깐의 차이일 뿐 이후 식물의 스스로 살아가는 능력은 사람의 도움 없이 홀로 싹을 틔우는 경우가 훨씬 빠르고 건강하다. 단단한 개암 껍질 뚫고 올라온 줄기를 보면 씨앗엔 대체 어떤 에너지가 모여 있을까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람은 씨앗을 뿌리기도 하고 심기도 한다. ‘뿌린다’함은 흙 위에 놓아둠을 말하고, ‘심는다’함은 몇 가지의 방법이 따로 있겠는데 구멍을 파고 씨앗을 집어넣고 꼭꼭 다져놓는 방식도 있고, 흙을 덮지 않고 하늘을 보게끔 해주는 방법도 있다. 앞의 경우는 흙의 봉분만 없다 뿐이지 무덤을 만드는 것이고, 적절하게 심는 방법은 두 번째 경우이다. 나는 씨앗을 심을 때 흙 속에 구멍만 뚫고 넣어주고 흙은 덮지 않는 방법으로 심는다.

  어떤 씨앗이든 심을 땐 흙 속에 푹 집어넣지 않고 가볍게 표면 가까이 닿게끔 밀어 넣어주는 것이 좋다. 그 위에 피복물이 고루 덮여 있으면 조류 피해를 막을 수 있고, 보습 효과도 누림과 동시에 풀(자생초;잡초) 발생도 억제한다.

  보통 우리 생각으로는 씨앗들이 떨어진 걸 보면 흙 속에 잘 묻어주어서 이듬해 싹이 트게끔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에서 자라 긴 수명을 자랑하며 잘 자라는 나무들 어느 것도 사람이 씨앗을 심고 관리해 주어서 싹을 틔우고 자란 난 것이 아니다. 저 스스로 자라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떨구면 그 씨앗은 때가 되면 스스로 싹을 틔워낸다.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은 후 열매를 맺어 제 종족을 유지하고 번식시켜야 하는 유전적 임무를 띠고 있다. 그래서 땅에 뿌려진 모든 씨앗은 뿌리를 내리려 하고 그것은 본능 이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씨앗에 안에 다 담겨 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아기는 태어나 엄마의 모유를 먹듯이,  본잎을 틔우기 전 씨앗의 알맹이가 모유 역할을 하여 잎은 우유빛깔 씨앗 젖을 먹는다.

그 힘을 무시하고 사람이 만든 인공 화학 물질을 무조건으로 부어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볼 때 식물의 처지는 살아 숨 쉬지 못하는 생명체가 된다. 사람이야 갈수록 가공 조제된 먹을거리에 길이 들여지는지 몰라도 '식물에게까지 그래서야 될까'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자연의 울타리에 자라는 식물의 입장에서 관리해야 서로 상생할 수 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별나게 생긴 열매가 생기면 따로 씨앗을 분류하여 채종 한다. 이는 자연교배로 이루어진 우량종이라 보기 때문인데 유전자 변형된 종자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열매가 맺히는 것은 씨를 남기기 위한 식물의 본능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식물의 자연 본능이 왕성하게 살아 있는 작물을 섭취해야 몸과 마음도 함께 건강해진다. 씨앗을 맺지 않아도 되는 혹은 씨 맺을 필요가 없는 더 나아가 씨앗을 맺을 상황조차 되지 않는 식물은 생존본능이 치열할 리 없다.

'사람이 주는 대로 얻어먹고 살면 그만일 테니까'

  식물은 싹을 틔울 때 아름답게 피어나고, 꽃으로 또 한 번 피어나고 그리고 열매로 거듭 새롭게 태어난다 함은 삶이 이어지는 생명의 환희이며, 식물의 절정은 열매 맺는 가을을 맞이함이다.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커지면 식물은 가을이란 계절을 감지한다. 식물들은 때를 알고 씨를 맺기 위한 막바지 성장에 온 힘을 기울인다. 내 몸을 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면 최소한 씨앗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의 자연 생태에 따라가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한다.

“꽃은 사람을 위해서 피어나지 않는다.”

“꽃은 씨앗을 남기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씨앗을 남기지 못하거나 씨앗을 남기더라도 대를 이을 능력이 없는 씨앗은 식물의 본성을 온전히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식물의 본성이 살아있는 작물만이 사람이 먹었을 때 보약이 된다. 식물의 본래 성질과 성품을 죽여놓고 입맛만 찾으려 든다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보다 더 볼상 사나운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식물이 스스로 씨앗을 맺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다. 스스로 씨를 맺고 대를 이을 능력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이 식물을 관리하는 방법이고 식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식물마다 씨앗마다 발아하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화분에 넣은 콩은 깊이 박지를 않고 흙으로 살짝 덮어줄 정도만 심어도 물 주기 몇 번 하다 보면 씨앗이 표면 위로 올라와 있고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씨앗을 숨 막히게 깊이 심지 않아도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놓는다. 자연에서 태어난 생명은 스스로 살아가게끔 설계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사람이 판단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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