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나, 배려하는 나.

by 감사렌즈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지쳐 있다는 걸 느낀다.
무언가 잘못된 걸 알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조차 헷갈린다.

새로 다니게 된 회사는 일이 너무 많고, 강도도 높았다. 외워야 할 것도 산더미 같았다.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결정을 내리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나보다 회사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팀장님의 기분을 살폈다.
‘지금 말하면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업무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마음은 이미 떠났지만, 몸은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주말 내내 고민이 이어졌다. 월요일 아침이 밝자, 마음속 긴장도 함께 커졌다.
일을 하면서 오른쪽 눈이 자꾸 떨렸고, 대상포진 증상까지 나타났다.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다.’
이제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침엔 팀장님 기분이 상하실까 걱정되고, 점심 이후가 좋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퇴사를 말하고 난 뒤의 어색함, 혹시라도 관계가 틀어질까 두려운 마음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결국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팀장님, 면담 가능하실까요?”

면담이 시작되고,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번 고민했는데… 일이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동안 쌓였던 감정과 생각들을 담담히 전했다.

팀장님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고,
“신중하게 결정하신 것 같네요. 여진 씨 입장을 이해합니다.”라며 오히려 나를 배려해 주셨다.

면담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토록 무겁고 두려웠던 상황이, 막상 닥치고 나니 생각보다 덜 아팠다.
머릿속에서 수백 번 돌리던 불안은 현실보다 컸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동안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를 너무 쉽게 밀어냈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진짜 배려는 상대를 생각하면서도,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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