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실타래를 푸는 법

by 감사렌즈

아침 8시, 출근을 하지 않는 날.
어제까지 다녔던 회사를 더는 가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이,
뜻밖에도 자유가 아니라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둘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왼쪽 무릎 근처가 간헐적으로 뜨거워졌다 식는 이상한 증상.
대상포진 초기일 수도 있다기에 겁이 나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신경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그런 걸 수도 있다며
신경 관련 약을 저녁에 복용하라고 하셨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에
덜컥 겁부터 났다.

약을 손에 쥐고 병원 문을 나서는 길,
텅 빈 마음과 싸늘한 바람이 동시에 느껴졌다.
‘ 왜 이렇게 자주 아플까.’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하지.’
머릿속에서만 뱅뱅 도는 생각들에 숨이 막혔다.

무작정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평소 가고 싶었던 동네 산책길,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그 길로.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땅 위로 올라오는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메타세쿼이아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귀를 스쳐 지나간다.
“사아아—”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는
마치 누군가 조용히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나무 아래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나무 끝을 올려다본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왜 나는 이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좁은 생각에만 갇혀 있었을까.

메타세쿼이아는 말이 없지만
그 길쭉한 몸으로 조용히 이야기한다.
“세상은 넓고, 너는 그 안의 아주 소중한 일부야.”

그 말에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바람이 또 한 번 불고, 낙엽이 살며시 흩날린다.
까치 한 마리가 유유히 걷는 걸 보며 웃음이 난다.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평범한 순간에 숨어 있었다.

달리듯 걷다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숲 쪽으로 옮겨주고는,
조금 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걸었다.



자연에 있으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작음이 위로가 된다.
나는 자연 속에 스며 있는, 고요하고도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사실이
이토록 따뜻하다니.

마음의 실타래는 억지로 푸는 게 아니다.
조용히, 천천히, 자연 속을 걷다 보면
언젠가 바람이, 나무가, 흙냄새가
마음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준다.

그렇게 나는 오늘,
나를 다시 꿰매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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