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가 보고 싶어?”
불쑥 튀어나온 아이의 질문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응, 그렇지. 슬퍼.”
“엄마는 네 살 때 돌아가셨잖아.”
기억 속에 없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예전엔 ‘아빠’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감정은 무언의 약속처럼 가슴 깊이 눌러두는 거라 믿었다.
말하지 않으면 없는 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젠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아이 앞에서도, 스스로에게도.
기억나지 않아도 그리울 수 있다는 걸
말로 꺼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슬픔은 마음을 다해 떠나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며칠, 몇 달, 아니 몇 해가 걸릴지도 모른다.
표현할 수 없을 땐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건넌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음식으로 채운다.
또 누군가는 침묵하고, 책을 펼치고, 음악 속에 잠긴다.
내 슬픔을 꺼낼 수 있게 해준 건 노래였다.
범진의 ‘인사’
“안녕, 멀어지는 나의 하루야.
빛나지 못한 나의 별들아.
차마 아껴왔던 말,
이제서야 잘 지내 인사를 보낼게”
가사를 듣는 순간, 오래 묶어둔 감정이 흘러나왔다.
네 살이던 해, 아빠는 서른 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창 빛나야 할 나이였는데, 그 빛은 꺼지고 별이 되었다.
기억엔 없지만, 마음은 그를 놓아주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날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안녕, 아빠. 잘 지내.”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감추지 않고 흘린 눈물은 마음 깊은 곳을 닦아주었다.
슬픔은 감추기보다 흘려보내야 제자리를 찾는다는 걸,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캐롤조차 슬프게 들렸다.
세상의 모든 노래가 마음에 걸렸다.
그게 억눌린 감정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한다.
지금은 다르다.
음악이 가볍게 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하지 못한 시간만큼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걸 배웠다.
그 감정은 약해진 마음을 무너뜨리러 온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