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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스나 Oct 28. 2022

그가 바둑을 그만둔 이유

“나는 이세돌 때의 그 제품이 아니오.”

  소설가 고수영 선생이 10년 만에 소설 작업을 끝내고 출판사에 전화하니 없는 전화번호라는 응답이 나왔다. 

  ‘번호가 바뀌었군.’

  작업의 막바지에 이르러 오는 전화도 잘 받지 않았더니 그새 이사라도 했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출판사는 이사한 게 아니었다. 그냥 망해버렸다. 생각해보니 편집자에게서 전화를 받은 지 한참 되었다. 

 이를 어쩐다? 5천 매에 가까운 역사소설을... 

 고수영 선생은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난감했다. 분명 마누라가 해 놓은 반찬이 있을 텐데 눈에 익은 락앤락 통이 보이지 않았다. 마트라도 다녀와서 출판 걱정을 해야겠다, 하고 선생은 지갑을 챙겼다. 

 엘리베이터 5층에서 한 꼬마 아이가 탔다. 어디서 뛰어놀았는지 작은 얼굴이 발그스레해져 있었다. 하긴 오늘은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의 날씨였다. 꼬마는 선생을 빤히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아휴! 내 평생에 오늘같이 더운 날은 처음이네.”

 아이가 자기를 바라보며 말했으므로 선생은 뭔가 말 대접이라고 해야 할 듯했다. 

 “그래, 너는 몇 살인데?”

 “일곱 살이요.”     

 “허허. 일곱 평생에 처음으로 더운 날이라고?”

 꼬마는 대답 대신 당돌하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몇 살인데요?”

 “나?”

 “그럼 여기 누가 또 있나요?”

 엘리베이터를 둘러보며 야무지게 말하는 아이를 향해 선생은 장난하듯 대꾸했다.

 “칠십이다!”

 꼬마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런 나이도 있어요?”

 암, 하고 대답하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박박!”

 아이가 선생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생은 대하소설을 쓰면서 거의 칩거 생활을 했다. 자료를 찾고 문헌을 뒤지고 하면서 밥 먹고 똥 사는 일 이외에는 외출하지 않았다.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일은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으나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으니 절간에 혼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통장 관리서부터 세금 납부, 주민 센터 출입 등 바깥일도 마누라가 관장하니 그로서는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런데 10년 면벽에 하산한 땡중 꼴이라니.. 일곱 살 꼬마 아이가 남긴 ‘박박’ 소리에 발목이 잡혀 그는 엘리베이터에 잠시 갇혀 있었다.

 

 마트는 아파트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왔다. 그는 식품부 반찬 코너에 가서 멸치볶음과 취나물 무침, 깻잎 장아찌를 샀다. 그리고 주류 코너에 가서 막걸리 한 병을 사서 계산대로 갔다. 그런데 계산대에 사람이 없었다. 가끔 올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던 계산대 여직원들이 보이질 않아 두리번거렸다. 박스를 나르던 남자 직원 하나가 한 곳을 가리키며 지나갔다. 거긴 ‘셀프 계산대’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붙어있고 그 밑에는 네댓 개의 기계들이 나란히 정렬해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니터에 무슨 글자가 떠 있긴 한데 처음이라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계는 네모난 웃음을 지으며 ‘노인이시군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선생은 손에 쥐고 있던 카드를 화면의 카드 모양 네모에 슬쩍 갖다 대었다. 옆을 슬쩍 보니 한 처녀가 카드를 위에서 아래로 주욱 긋는 게 보였다. 어디선가 직원이 달려오더니 ‘계산 도와드릴 께요.’ 했고 30초 만에 결제는 끝났다.

 선생은 마트를 나오며 딸네 집에 가 있는 마누라를 원망했다. 손자가 감기에 걸려 며칠 더 봐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제사 아파트 근처 거리도 많이 변한 게 보였다. 이름만으로는 뭔지 알 수 없는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맛집도 간판과 내부를 싹 바꾸었다. 모두 영어 일색이었다. 영어가 아니고 단지 영문으로 표기된 간판도 있었다. 혀를 잔뜩 꼬부려 읽으니 'Tteokbokki'.

 떡볶이.

 하긴 그가 사는 아파트도 놀이터를 보수공사하더니 ‘Kids Garden'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다. 그 뿐인가. 건물 외벽에 쓰인 아파트 이름도 아예 영자로 바꾸었다. 

 공공 기관의 현수막에도 버젓이 영어 표기를 하는 마당에 장사하는 사람들 간판이 뭔 대수랴.... 채널을 돌리다 화면에 뜨는 '줌인! 겜파라치'(게임+파파라치)‘ 라던가  ‘두뇌혁명 프로젝트 No Brain Survival 패러디’ 같은 프로 제목을 보면 진짜 머리가 노브레인이 되었다. 하긴 한자 전성시대를 겪은 기성세대로서 영어의 융단 폭격에 할 말은 없었다. 해방 후 일본말을 재빨리 청산하지 못한 나라가 아닌가? 근데 눈에 거슬리는 건 이뿐이 아니었다. 방송에서 넘쳐나는 존칭이 그것이었다. 그동안 TV에서는 시청자를 존대의 대상으로 두고 그 누구에게도 존칭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개 교수가 발표했고 미 대통령이 지적했다, 가 아무개 교수가 발표하셨고 미 대통령이 지적하셨다, 로 되었다. 왜 갑자기 시청자를 하대하게 되었는지 국립국어원에 문의를 했지만 종무 소식이었다.

 선생이 우리말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국어 선생 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 권의 소설책을 낸 작가이기도 해서였다. 소설은 말로 지은 집이니 집의 벽돌 하나도 예사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쓴 소설이 역사물이고 배경이 조선도 아닌 700년 전 고려 시대가 아닌가? 먼 친척을 말하는 ‘결찌’, 총각이 혼인하지 않고 틀어 올린 ‘외자 상투’, 뭇매를 치듯 세차게 내리는 비 '모다깃비'... 고려 때 썼던 고유의 말들을 취합하는데 진을 다 빼고 나니 ‘박박’, ‘어쩔티비’ ‘MSGR; 미숫가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망해버린 출판사에서 선생의 원고를 담당했던 최인철이 전화했다. 

 “선생님께서 집필을 끝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근데 ‘박박’이 무슨 말인가?”

 “박박이요? 누가 선생님 작품에 그런 감탄했나 보군요. 박박은 대박을 두 번 말하는 겁니다. 대박 대박!”

 그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고 했다. 

 “제가 감히 선생님의 대작을 출판하겠습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잘 팔리지 않을 텐데...”

 “교양도서로 지원도 받고 크라우드 펀딩도 하겠습니다. 제자분들 많으시잖아요.”

 “고맙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설마 원고지에 쓰신 건 아니지요?”

 “나를 뭘로 보나? 그 정도는 아니네.”

 휴~ 하는 소리가 수화기 속으로 들려왔다.   

 

 그 후 1년 동안 원고 교정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10년 공백을 메우려고  부지런히 공부했다. TV도 보고 유튜브도 보았다. 마트에서 혼자 계산도 하고 식당에선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줄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달라지면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이 ISBN 도서번호를 받고 출판한 다음 날 '도서출판협회'라는 데서 전화가 왔다. 출간에 대해 인터뷰가 필요한데 영상 통화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선생은 느긋하게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코로나 때문에 일곱 살짜리 손자 녀석과 자주 하는 편이라 ‘영통’은 나름 익숙했다. 녀석은 영상이라도 감염될지 모른다고 마스크를 쓴 채 화면에 나타나곤 했다. 그 아이의 요즘 놀잇감은 종이로 PCR 검사표를 만들어 할머니, 엄마, 아빠를 검사하고 양성, 음성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화면에 나타난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람 모양의 그림이고 목소리도 기계음이었다. 그림은 사무직처럼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그냥 통화만 하면 되지 이게 뭔가 싶었다. 

 “저는  CG-R38이라는 제조 번호로 협회에 고용되어 있으며 출간에 대한 의례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책을 내셨습니까?”

 아, CG라면 컴퓨터 그래픽? 하고 멍청히 있자 ‘맞으면 네, 아니면 아니오라고 대답하시오.’라는 창이 떴다.

 “네,”

 “선생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네? 어제 출간되었는데 벌써요? 4권이나 되는데...”

 “저희는 많이 학습되어 있습니다.”   

 아, 기계가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제 세상은 따라갈 수조차 없이 달라지고 있구나 싶어 침울하게 물었다.  

 “알파고 같은 것인가요?”

 “나는 이세돌 때의 그 제품이 아니오.”

 그가 이세돌, 이라 말할 때 오작동 같은 떨림 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 

 “우린 눈부시게 달라졌지. 잠깐 배터리 교체하는 시간을 빼고 18분 44초 만에 당신의 그 지루하고 한자 많은 작품을 다 읽었소."

 뭐? 18분 44초 만에? 선생은 어이없어하다가 상대가 기계라는 걸 인식했다.

 "한자가 많긴 많았지요. 역사 소설이니..."

 "한자는 나의 부품에 중국산이 많아서 좀 수월했소. 그런데 길고 지루한 건 둘째치고 약간의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킬 소지까지 있어서 연락한 거요."

 "넷? 정치적이라니요. 나는 다만 고려에 대한 소설을 썼을 뿐이요."

 "그럼 왜 만주 지방이 고구려 것이네, 우리 땅이었네 떠드는 것이요? 요즘 중국에서 고구려부터 말갈까지 그들 역사책으로 만들어져 나오고 있는 것도 모르시오?"

 "맙소사, 동북공정은 진즉에 알았지만 그건 몰랐소. 그리고 소설은 과거 얘기요."

 “과거 또한 중국 것이요. 만약 중국 측에서 문제를 삼는다면... 하찮은 것에도 그들은 민감하다오. 또.”

 영상은 잠시 무표정이 되었다. 뭔가 검색을 하는 모양이었다.

 “선생은 유난히 구글 어스를 많이 드나드셨더군.”

 “구글 어스? 그거야 내 소설의 무대가 지금의 개성이고 주인공이 원나라를 수시로 다니던 사람이라 위치 파악하느라 참고한 거요. 그나마 북한은 지명도 제대로 안 나오더구만.”

 그러자 자신의 낡은 컴퓨터가 떠올랐다.

 “그럼 내 컴퓨터를 해킹인가 뭔가 한 거요?"

 “자뻑이 심하시군... 무슨 해킹씩이나... 고기 많은 바다에 우리 그물이 크고 촘촘할 뿐이요.”

 이젠 비속어에 시적 비유까지 쓸 줄 알다니 이 망할 놈의 기계 같으니라고... 선생은 알 수 없는 분노에 부르르 떨었다.     

 “선생은 이 소설에 10만 자의 단어를 쓰고 1만 자의 한자를 썼더군... 우리 CPU엔 얼마나 많은 단어가 들어가 있을까? 최근에 몇 편의 시도 만들어냈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기계 주제에 어디서 긁어모은 단어 쪼가리들로 글을 쓰겠다고? 시? 어쩌면 법조문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CG 얼굴이 눈썹을 조금 움직였다. 꽤 놀랐나 보군, 하면서 선생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한 마디 했다. 

 “이세돌이 왜 바둑을 그만두었는지 아나?”

 그가 은퇴 선언을 한 후 여기저기 인터뷰한 내용이 그 촘촘하다는 그물에 걸려들었을 텐데 기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바둑을 그만둔 천재에 대한 데이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뭔가 전원을 끈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를 종료하겠습니다.’

 라는 창이 뜨고 CG는 사라졌다. 

 ‘도서출판협회’의 홈페이지 화면은 평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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