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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어택 Oct 21. 2024

(25화) 오빠에게 (1)

오빠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오빠 글을 마음대로 열어봐서 미안해. 글의 서두에는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이 이 글을 읽을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지만, 그 다른 사람에 내가 포함되진 않는다는 걸 잘 알아.


 오빠의 글을 읽으면서 놀란 부분도 많았어. 그리고 아내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야. 오빠가 여전히 이전의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고, 심지어 젊은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오빠의 아내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당연하겠지. 


 하지만 나는 오빠를 믿어. 적어도 오빠가 쓴 모든 글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오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거야. 오빠는 오빠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곳에 오게 된 거니, 어쩌면 원래의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일 거야. 불륜을 저지른 것도 오빠는 모르는 일이었을 거고. 적어도 지금의 오빠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 


 내가 마음대로 오빠 글을 읽어 버렸으니, 반대로 내 이야기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차피 오빠는 이미 많은 걸 알게 된 것 같기는 한데, 여전히 모르는 것도 있어. 그리고 오빠가 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내가 왜 오빠를 믿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될 거야. 그땐 반대로 오빠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랄게. 


 우선 나는 오빠의 글을 읽으며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어. 오빠가 7년 전 나와 헤어진 이유를 경제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줄 몰랐어. 물론 오빠가 그렇게 느껴서 힘들었다면 그건 내 잘못이겠지.


 오빠와 연애하던 시절 내가 늘 서운했던 건 오빠의 경제력 때문은 아니었어. 나는 오빠를 정말 많이 사랑했고, 오빠와 연애하는 동안 오빠가 내 인생의 전부였어. 그런데 오빠는 대학원생일 때 공부하느라 바쁠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일도 하느라 늘 시간에 쫓겼지. 나한테 연락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도 드물었으니까. 당연히 하는 일이 바빠서일 테지만 나에게 표현을 많이 해주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오빠와 연애하면서도 늘 외로웠던 것 같아.


 그런데 이런 걸로 화를 내고 섭섭함을 표현하기는 자존심이 상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일부러 다른 것들로 핑계를 대면서 섭섭함을 표현했던 것 같아. 내 친구들은 더 근사한 식당에도 가고, 더 비싼 선물도 받는다고 말이야. 사실은 오빠의 주머니가 가벼운 건 나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어. 그저 나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 주길 바랄 뿐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나도 참 어렸던 것 같아. 그렇게 해서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


 하지만 우리는 결국 그 이유로 헤어졌지. 나는 오빠와 헤어지고 나서 정말 후회를 많이 했어. 사실 주변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남자를 만나고 다니기도 했어.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늘 오빠와 비교하게 되고 오빠 생각이 더 커지더라. 그래서 오빠와 헤어진 이후에 했던 연애는 다들 그리 길지 못했던 것 같아. 


 오빠는 SNS도 안 하는 사람이었기에, 소식이 궁금해도 알 수가 없었지. 그래서 나중에는 상헌 오빠를 통해 종종 오빠의 소식을 물어보기도 했어.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에는 나랑 상헌 오빠도 같이 친하게 지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상헌 오빠가 먼저 말을 해 주더라. 오빠가 곧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어. 사실 난 내심 기대했던 것 같아. 오빠도 나처럼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반대로 나를 그리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몇 년 동안이나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오빠한테서 온 연락이기를 기대했던 적도 많아. 


 결혼을 앞둔 상황이라는데, 연락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지. 하지만 이렇게 오빠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면 나는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 오빠에게 너무나 연락하고 싶었어. 수십 번은 더 고민했고, 수십 번은 더 메시지를 지웠다 수정했다 했지. 그리고 고민 끝에 문자를 보냈어. 딱 한 번만 보내 보고, 답이 없으면 포기하자는 생각으로. 오빠 글에도 나오는, 큰 정전이 일어났던 그날이었지.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오빠의 연락은 오지 않았어. 나는 며칠 동안 혼자 펑펑 울었어. 더 이상 인생에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어. 그때 상헌 오빠가 내가 걱정됐는지 먼저 연락을 했어. 나는 상헌 오빠를 만나서 또 펑펑 울었고, 상헌 오빠가 나를 위로해 줬지.


 그날을 계기로 상헌 오빠와 사이가 더 가까워져서 그 뒤로도 종종 만났어. 그리고 몇 번 만난 후에 상헌 오빠가 말하더라고. 사실은 내가 오빠와 연애하던 시절부터 나를 좋아했었다고. 오빠와의 관계를 저버릴 수 없어 마음을 누르고 있었지만, 오빠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이제는 오빠도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이야. 


 오빠가 처음 이 일을 겪었을 때, 상헌 오빠가 이상하게 오빠한테 차갑게 대했다고 했지? 어쩌면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상헌 오빠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고, 이 우주에선 내가 오빠와 결혼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상헌 오빠와 연애를 시작했어. 연애 경험이라곤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한테 정말 잘해줬지. 오빠에게 섭섭했던 그 마음을 그 사람은 느끼지 않게 해줬어. 그런데 참 웃긴 일이지? 그렇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연애하면서도 나는 오빠를 계속 잊지 못한 것 같아. 


 2년 정도 지나고 상헌 오빠는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어. 나는 그에게 솔직히 말했지. 상헌 오빠에게도 좋아하는 마음이 많이 생긴 건 사실인데, 여전히 오빠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이 상태로 결혼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이야. 하지만 상헌 오빠는 상관없다고 했어. 어차피 오빠는 다른 여자와 잘살고 있으니, 결혼하고 나서 본인이 더 노력하겠다고 했지. 며칠 고민하긴 했지만, 그렇게 나는 상헌 오빠와 결혼했어. 


 결혼하고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상헌 오빠와 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 하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서 오빠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상헌 오빠의 친구 결혼식에 같이 가게 됐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혼식에 절대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때는 거기에서 오빠를 보게 될 줄은 몰랐지. 사실 오빠와 상헌 오빠는 오랫동안 친구였으니 겹치는 인맥이 있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나는 연회장에서 밥을 먹는데, 우연히 저 멀리에서 오빠를 보게 되었지. 오빠가 아내와 딸과 같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 너무도 화목해 보였어. 그때 나는 또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 그동안 눌러왔던 그리움이 폭발했달까? 그런데 그것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리움을 넘어 부러움의 감정이었어. 오빠와 함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그 아내가 부러웠지. 


 그날 이후에 나는 우울감에 빠져 살았어. 오빠 옆에 있는 아내가 나라면 어떨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오빠와 헤어지지 않았을 내 모습이 상상의 상상을 물고 퍼져나갔지. 내가 오빠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일상을 상상하다가 하루가 다 가기도 했어. 그러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내 옆에는 오빠가 없었고, 나는 다시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지.


 점점 나는 남편에게도 소홀하기 시작했고, 부부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어.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어. 점점 삶에 의욕이 없어지고 예민해지는 내 모습을 보고 상헌 오빠가 상담을 받아 보는 건 어떠냐고 말했지. 


 그래서 나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어. 인터넷 카페에서 찾은 곳이었어. 과거에 대한 후회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게 전문이라고 했는데,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내 상황에 딱 맞는 곳이었지. 처음에는 상담 센터에 가서 터놓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어. 나는 조금씩 다시 삶에 의욕을 찾는 것 같았지.


 그런데 평범하게 시작한 심리상담이었는데, 몇 달 동안 받으며 상담 내용이 조금씩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상담사가 점점 이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지. 구체적으로 바꾸고 싶은 과거가 어느 시점이냐고 묻더니, 그 과거를 바꿀 수만 있다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겠냐는 이상한 질문을 했어. 나중에는 내 경제력을 묻기도 했지. 


 얼마 뒤에 상담사는 내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치료법이 있다면서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사람을 만나 봤지. 여기까지 읽었으면 오빠도 그 사람이 누구였을지 예상이 가지? 구신효 박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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