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은 오빠가 겪고 있는 일이랑 비슷해. 구신효 박사는 내가 살고 있을 다양한 우주의 모습을 보여줬어. 그중에는 당연히 오빠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우주가 있었지. 나는 화면 속에서 그 모습을 보자마자 펑펑 울었어. 내가 너무도 원했던 인생이 실제로 어디선가 펼쳐지고 있다는 게 놀랍고도 행복했어. 한편으로는 그 인생이 내 것이 아니고 화면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비참한 기분이 들었지.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인생을 꼭 가지고 싶었어.
결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며칠 뒤에 나는 구신효 박사를 통해 다중우주를 이동했지. 바로 지금 오빠의 곁으로 오게 된 거야. 그렇게 나는 1년 전부터 오빠의 아내이자 주원이의 엄마가 된 거야.
처음에는 정말 행복했어. 오빠와 함께하는 것 자체로 행복했고, 주원이는 내가 낳은 기억은 없어도 너무나 소중한 아이였지. 그토록 갈망했던 인생을 누리는 기분에 하루하루 꿈만 같았어.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 오빠가 나를 예전만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았어. 처음에도 그런 느낌이 들긴 했지만, 갈수록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 나에게는 신혼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오빠에게는 나와 결혼한 지 5년이 넘은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편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려고 애썼지.
그런데 오빠는 가끔 나 몰래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어. 내가 보면 급하게 핸드폰을 끄곤 했지. 나는 오빠가 화장실에 갔을 때 몰래 오빠 핸드폰을 열어봤어. 알고 보니 오빠는 다른 여자의 SNS에 들어가 보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여자는 내가 상헌 오빠 친구 결혼식에서 봤던 오빠 아내였어. 그때는 이름도 몰랐지만 아마 미연이라는 사람이겠지. 이 우주에서 오빠는 분명 그 여자와 헤어지고 나랑 결혼했잖아. 그 여자는 그저 나와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였을 텐데, 오빠는 여전히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나 봐.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
그때부터 나는 오빠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심하기 시작했어. 또 그 여자의 SNS를 훔쳐보는 건 아닐까, 그러다가 혹시 연락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어. 나도 그렇게 오빠를 믿지 못하자, 오빠와 나의 관계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 오빠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지. 이상하게 오빠가 야근한다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늦게 오는 날이 많아졌어.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했지.
어느 날 오빠가 나와 외식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늦게 온다고 통보한 날이었어. 나는 몰래 오빠의 학교를 찾아갔지. 정말 오빠 말대로 연구실에서 야근하는 건지, 아니면 혹시 미연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닌지 의심했지.
하지만 내가 본 광경은 더 충격이었어. 오빠는 밤늦은 시간에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와 함께 연구실에서 나왔어. 그 여자는 내가 보기에도 미연이라는 사람과 닮았지만, 그 사람은 분명 아니었어. 나는 오빠 뒤를 몰래 따라갔어. 그리고 오빠가 그 여자와 함께 호텔에 들어가는 걸 봤어. 오빠는 아마도 미연이라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그 사람과 닮은 제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던 거야. 오빠 글을 읽으며 더 확실해졌지.
나는 도저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오빠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 오빠랑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먼 우주를 이동했는데도 왜 내 인생을 이럴까 절망스러웠지.
나는 구신효 박사를 다시 찾아갔어. 구신효 박사의 말에 따르면 수많은 우주가 있다고 하니, 그 우주 중 오빠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주도 있지 않을까? 나는 구신효 박사한테 그곳으로 나를 다시 보내달라고 했어.
그런데 구신효 박사는 오빠와 나 사이에 주원이가 있는 우주는 여기가 유일하다고 했어. 오빠와 함께하는 다른 우주는 많지만, 다른 곳은 모두 아이가 없거나 다른 아이가 있다고 했지. 오빠의 글을 읽어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어. 어쨌든 당시에 난 그 말을 믿어버렸지. 나는 이미 주원이 엄마였어. 내 상황이 아무리 절망스럽다고 해도 주원이를 버릴 수는 없었어.
그때 구신효 박사는 다른 제안을 했어. 반대로 오빠를 다른 우주의 오빠와 바꾸면 어떻겠냐는 거야. 오빠를 다른 우주로 이동하게 하면 그 우주에 있던 오빠가 여기로 올 테니까.
문제는 오빠가 다른 우주로 가고 싶어 한다면, 거긴 분명 미연이라는 사람과 가정을 꾸린 우주일 거라는 거였어. 이미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린 사람이 갑자기 이곳으로 온다면 나를 사랑해 줄까, 걱정이 되긴 했지. 하지만 오빠는 나를 옆에 두고도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이었어. 절대 회복할 수 없는 관계였어. 불륜을 저지른 오빠만 아니라면 그 어떤 오빠가 와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영문도 모르고 이곳으로 이동한다면 오빠는 분명 혼란스러워하겠지. 하지만 그런 오빠를 내가 잘 감싸준다면 우리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결심이 서자 나는 구신효 박사가 시키는 대로 했어. 나는 구신효 박사에게 오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고, 아마 구신효 박사는 오빠 이메일로 마음변화센터의 홍보 메일을 여러 번 보냈을 거야. 나는 마음변화센터의 명함을 몰래 오빠 가방에 넣어두기도 했어.
그리고 마음변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 오빠가 가입했었다는 그 카페야. 겉보기에는 단순히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카페인 것처럼 운영되는데, 회원 중 정말로 다중우주를 이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변화센터에서 따로 연락하는 방식이라고 해. 나는 오빠 노트북을 켜서 오빠 아이디로 몰래 그 카페에 가입해 두기도 했어. 혹시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고.
그런 식으로 몇 달을 하고 나니 구신효 박사한테 연락이 왔어. 오빠가 마음변화센터를 찾아갔다고 하더라. 며칠 뒤에는 다중우주를 이동하기로 했다고 알려줬어.
지난주 아침에 오빠는 옆에 내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을 거야. 오빠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계획된 상황이었어. 나는 오빠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 오빠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연기하면서.
모든 건 나로 인해 일어난 일이야. 결국 다중우주를 이동하겠다는 선택은 원래 이 우주에 있던 오빠가 했겠지만, 내가 그렇게 만든 거니까.
한 가지 더 말해 주자면, 상헌 오빠도 마찬가지야. 한 달 전쯤 나는 오빠 연구실에 찾아갔었어. 마음변화센터 명함을 연구실 문틈에 몰래 끼워넣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그날 우연히 상헌 오빠를 만났어. 상헌 오빠가 술을 한잔하자고 하더라.
상헌 오빠는 내가 몰래 오빠 연구실 앞을 찾아온 상황이 이상해 보였나 봐. 나는 오빠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어서 몰래 왔다고 둘러댔지. 당시 오빠가 불륜을 저지르던 건 사실이니까. 상헌 오빠는 술에 취해서 오빠 욕을 엄청나게 해 댔어. 그러다가 사실 나를 좋아했었다고 말하더라고. 몇 달 전까지 내 남편이었던 사람한테 다시 고백받으니 기분이 묘하더라.
상헌 오빠는 내가 지금이라도 오빠를 떠나서 자신에게 오는 걸 바란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나한텐 이미 주원이가 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빠가 다중우주를 이동하게 만들고, 새로운 오빠와 다시 가정을 꾸리는 거였지.
그런데 상헌 오빠가 술을 마시다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이 넓은 우주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말고도 비슷한 삶을 사는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중 상헌 오빠랑 내가 함께하는 우주도 있을 수 있다고. 내가 그 우주에서 온 것도 모르고 말야.
그리고 그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어. 나도 술에 많이 취해서 그랬던 것 같아. 가방 속에 한 장 더 있던 마음변화센터 명함을 상헌 오빠한테 줬지. 나랑 함께하는 우주를 정말로 찾고 싶으면 여기에 연락해보라는 말과 함께. 상헌 오빠는 무슨 소리냐고 코웃음을 쳤지만, 나중에는 연락을 해 본 것 같아. 결국 다중우주를 이동했으니까.
며칠 전 상헌 오빠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참 웃긴 광경이었어. 나도 상헌 오빠도 기억 속에는 부부인데, 둘 다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오빠들이 왜 우주를 이동하게 됐는지 다 알고 있었지. 상헌 오빠는 그 상황을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여서 안쓰럽기도 했어. 하지만 내 눈앞에 함께 앉아 있는 나의 두 남편을 보니 더 확신이 들더라.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오빠라고 말야.
정말 미안해. 오빠에게도, 상헌 오빠에게도. 내가 먼저 우주를 이동하지 않았다면 오빠도 상헌 오빠도 우주를 이동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내가 우주를 이동했더라도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오빠가 나를 바라봐 주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도 있지만, 오빠를 탓하고 싶진 않아. 다 내 잘못이야.
그래도 모든 건 내가 오빠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나는 오빠랑 주원이랑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우주를 이동하는 것쯤이야, 할 수만 있다면 수백 번도 더 할 수 있어. 사랑해…… 오빠에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지만, 오빠를 사랑해서 벌인 일이니 조금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오빠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할게. 원래의 아내가 있는 다른 우주로 가버린다고 해도 이해해. 며칠간 나와 함께한 오빠는 다른 곳으로 가겠지만 오빠가 내 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또 다른 오빠가 내 곁에 있을 거고, 나는 오빠와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사랑해. 수만 개의 우주가 있다면 분명 나는 그 모든 우주에서 오빠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 영원히 오빠를 사랑하는 민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