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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콘셉트 언어를 만들자

말이 세상을 만든다, 그리고 콘셉트가 있는 언어는 세계관이 된다.

by 좋은이야기연구소



"말이 세상을 만든다(Word Creates World)"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은 단어를 넘어서 사고방식이고, 사고는 결국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렌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며, 세계를 정리하는 도구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언어는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좌표와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향을 바라보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좌표가 흐릿하면 나도 길을 잃고, 남도 나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선명한 언어는 나도 나를 이해하게 만들고, 타인도 내 세계로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연다. 말은 결국, 나를 소개하는 가장 정직한 초대장이다.

결국 '말'은 누군가를 내 세계로 초대하는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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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언어란 무엇인가

정체성을 눌러 담은 초대장 : 나라는 사람의 핵심을 응축해 담아 타인에게 건네는 한가지 말


나는 커리어 코칭을 할 때 '콘셉트 언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콘셉트(Concept)는 본질을 설명하는 문장이며, 언어는 그것을 세상과 연결하는 도구다. 말하자면 콘셉트 언어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가장 정확하고도 응축된 형태로 표현한 문장이다.

콘셉트 언어는 자기다움을 단지 감각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단어와 구조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문장이다.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어휘로 정제해, 타인에게도 ‘아, 이 사람은 이런 세계를 가진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게 만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나는 단순한 문장으로 복잡한 세계를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가지고 산다. 누군가는 “사람들의 잠든 가능성을 깨우는 촉진자”라는 문장을 가진다.

이 문장은 짧지만, 그 사람의 정체성, 일하는 방식, 미학, 태도, 방향성을 모두 담고 있다.

이 문장이 바로 그 사람의 콘셉트 언어다.



그럼 '콘셉트'는 뭐고 '언어'는 뭔가?

콘셉트는 중심 생각이자 정체성이다. 말하자면 내 세계관의 핵심 기둥이다. 정체성, 태도, 미학, 기준, 방식 등이 이 콘셉트 하나로 통합된다. 브랜드가 있다면 브랜드 미션이 될 수도 있고, 작가에게는 세계관의 뿌리 같은 것이다.

언어는 그 콘셉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떤 단어를 고르고, 어떤 문장으로 조립하고, 어떤 리듬으로 말할지를 결정한다. 같은 본질이라도 언어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말맛 하나에도 분위기와 맥락이 얹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이 글에 콘셉트 언어라는 말을 쓸 것이다.


말과 언어는 어떻게 다를까?

은 구체적인 행위다. 말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실제적인 문장이고, 발화다. 그 순간에 필요한 감정과 목적에 따라 조정된다.
언어는 나의 사고방식과 표현 습관이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체계다. 내가 고르는 단어, 문장의 흐름, 생각을 조립하는 방식이 모두 포함된다.

이 글에서 말과 언어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해서 쓰고자 한다.


예를 들어 “괜찮아요”라는 말도 어떤 언어 체계를 가진 사람은 따뜻하게, 어떤 사람은 무심하게, 어떤 사람은 권위 있게 전달한다. 이게 바로 말과 언어의 차이다. 말은 순간이고, 언어는 시스템이다.


정리하자면,

콘셉트: 나의 본질, 세계관, 방향을 정의하는 핵심 생각

언어: 그 콘셉트를 표현하는 체계

콘셉트 언어: 나의 본질을 타인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한 줄’





하지만 정확한 말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마치 익숙한 길을 떠나 낯선 지도를 펼치는 일과도 같다. 어떤 말이 ‘정확한가’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알던 나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믿어왔던 세계는 조금씩 흔들리고, 모호했던 경계는 점점 또렷해진다.

때로는 내가 가진 언어들이 부끄러워지고,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말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예쁜 표현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나를 통과해 나온 세계관을 정돈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마침내 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단 한 줄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그 단 한 줄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몇 가지 질문들을 지나야 한다.

이제, 그 질문들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콘셉트를 만드는 네 가지 질문



1.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답하기 어렵다.

추상적이고, 너무 커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질문을 잘게 쪼개야 한다. 나의 감정, 반응, 선택, 행동, 기억, 가치 같은 조각들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조금씩 정리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질문’이다. 잘 던진 질문은 나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게 만든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드러내고 겹겹이 쌓여 있던 감정의 결들을 찢고 들어가 본질을 꺼내게 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신이 나고, 어떤 순간에 침묵하는가? 나는 어떤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가? 이 질문들을 꾸준히 던지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조금씩 또렷해진다. 이건 레이어처럼 한 층 한 층 겹겹이 쌓아놔야지만 어떤 그림인지가 점점 보인다. 질문은 내 안에 묻혀 있는 단서를 찾는 손전등이고, 그 단서들을 이어붙여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퍼즐 조각이다.


아래는 그런 탐색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은 단순한 ‘자기소개서용 질문’이 아니다. 당신이 정확한 콘셉트 언어를 가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자기 탐색의 도구다.



① 경험을 통해 드러나는 나

몰입의 순간은 본질과 가까운 순간이다. 몰입했던 경험을 되짚으면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살아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경험에 가장 몰입했는가?

그때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감정은 무엇이었는가?

누군가 나에게 “그때 진짜 너 같았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② 가치관으로 드러나는 나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용납하지 못하는 것에는 내 핵심 가치가 숨어 있다. 가치는 나의 판단 기준이며 말의 기초다.


내가 반드시 지키고 싶은 신념은 무엇인가?

내가 싫어하는 말투, 태도, 방식은 어떤 것인가?

갈등 상황에서 나는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가?



③ 타인의 반응으로 비춰지는 나

정체성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나의 사회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나에게 주로 어떤 역할을 부탁하는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타인이 고마워하거나 감탄하는가?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 중, ‘이건 나 같다’ 싶은 것은 무엇인가?


④ 선택을 통해 드러나는 나

선택은 말보다 정직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반복해왔는지를 돌아보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내 본질이 드러난다.


나는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가장 오래 고민했는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는가?

내가 일부러 포기한 것은 무엇이었고, 그 결정은 옳았는가?






2.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역할의 질문)


내가 일하는 분야, 내가 발 딛고 있는 산업은 나의 콘셉트를 명확히 규정짓는 조건이다.

예를 들면 나는 교육기획과 설계, 조직문화, 브랜드라는 키워드 위에 선다.

이것은 나의 무대이고 내가 대화를 나누는 대상의 세계다.


일이란 늘 목적지가 있는 여정이다. ‘나답게’만 하다 보면 종종 길을 잃는다. 나다움은 출발점이지, 도착지는 아니다. 그러니 도착지를 향한 방향타로서 나의 전문성과 산업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3.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긍정탐구의 질문)


긍정탐구(Appreciative Inquiry)는 ‘내가 무엇을 잘했는가’에 집중하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자원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법론이다. 문제를 고치는 대신, 잘된 경험을 확대해 보는 방식이다.

나는 이 방법을 워크숍, 인터뷰, 교육 설계 과정에서 자주 활용한다.

예전에 교육 강사분들과 간담회를 할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 참여자들이 가장 프로그램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의 피드백은 어땠나요? 어떤 과정에 가장 반응했나요?

-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 어떤 교육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나요?

- 프로그램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 새로운 접근 방식이나 기법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나요?

- 생각하고 있는 성과물의 최종 형태는 어떻게 되나요? (브이로그, 책, 등)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영역도 달라진다.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경험 속에서 긍정적인 속성들을 탐구하고 정리해보는 것이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것에 더욱 가까워지는 일이다.

이 질문들은 하나하나 별개의 퍼즐 조각처럼 보이지만, 맞추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강사로서 가장 잘 작동했던 지점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유머였다. 어떤 사람은 섬세한 피드백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묵묵히 있어주는 다정함이었다. 각자의 방식이 있었고, 모두 정답이었다.


긍정탐구는 단지 ‘강점을 찾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잘했던 일에서 출발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길이기도 하다.

예컨대 나는 ‘복잡한 걸 정리해서 남에게 설명해주는 일’에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광고회사에서도 AE로 일할 수 있었고 교육자의 정체성은 계속 가지고 있게 되었고, 그래서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내 친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결국 기획자이자 강사가 되었다. 세상에 할 말이 많은 사람은 결국, 무언가를 만들고 만다.


말은 그렇게 세계를 끌고 간다.
우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잘했던 순간들 안에는 이미,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계가 숨어 있다.





4. 나는 어떤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가? (속성 정리의 질문)


나는 ‘말맛’을 사랑한다. ‘파랗다’, ‘푸르다’, ‘푸르딩딩하다’는 모두 다른 세계를 만든다.

언어가 다르면 세계도 다르다. 정확한 언어를 가지려면, 속성에 대해 집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안성재를 보자. 그는 셰프이기도 하고,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나온 방송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성재를 방송인이라고 표현하면 맞기도 하지만 부족한 느낌도 든다. 방송 역시 안성재의 일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안성재의 직업적 본질과 멀리 있기 때문이다. 안성재에게는 셰프라는 중요한 일이 있다. 하지만 안성재는 자신을 단순히 [셰프]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안성재는 스스로를 [단순한 플레이팅 안에서 가장 복잡한 맛을 구현하고자 하고, 손님들이 발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셰프]라고 소개한다.


SOXz79TuQHliU_OhZTs0PUpfYNA.PNG 출처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이 말을 지키기 위해 서빙을 하는 종업원들에게 발레나 현대무용을 권장하기도 하고, 같은 음식도 레시피를 10번 이상 바꾸기도 하며, 주방에서는 “요리사가 손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손님이 음식을 더 좋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나이, 성별, 경력 다 내려놓고 실력으로 평가 받아라”라고 하기도 한다.

안성재가 발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노력은 여러 가지가 있고, 단순한 플레이팅 안에서 가장 복잡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개발한다.






이 질문들은 보자마자 대답하기 어려울수도 있고 당장 질문하고 답변하는 방식에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보다 이런 과정들을 잘 거치기 위한 몇 가지 방법/기법도 함께 남기니 지금 당장 질문에 답해보는 진지한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방법 1. 스토리 회고 기법 (Life Mapping)
: 인생의 전환점을 시기별로 정리하면서 각 시점에서의 감정, 배운 점, 선택의 이유를 적어본다.
→ 전환점에서 반복되는 주제(예: 갈등, 도전, 관계, 창작 등)를 발견하면 정체성이 드러난다.
방법 2. 자기기술 인터뷰(Self as Interviewee)
: 나를 인터뷰 대상자라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변해본다. 실제로 말로 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자기 언어가 나온다.
→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하셨어요?", "힘들었을 텐데 왜 멈추지 않았죠?"라고 말하며 스스로 답한다.
방법 3. 비유나 상징을 활용한 탐색
: "나는 어떤 동물 같다고 느끼는가?", "내 삶은 어떤 장르의 영화 같았는가?"
→ 보다 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인식하고 탐구한 것을 바탕으로 나의 속성을 표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있지만 ’전문가인 내가 쓰고 비전문가인 누군가가 읽는다‘는 전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상대의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언젠가 <골목식당>에서 시장 상인들이 대다수의 고객인 한 식당에서 김치나베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아마 당신의 고객들은 이 말을 모를 거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이후 수정된 것은 ‘일본식 김치찌개’였다. 그제서야 방문한 시장상인들은 더 편안한 표정과 안심하는(?) 마음으로 이 메뉴를 주문한다.


최근에는 나는 커리어 코칭에서 언어를 정리하는 게 처음이라 어려운 사람에게 처음에는 일단 아래와 같이 정리하게 돕고 있는데 대부분의 참여자분들이 이 문장을 활용하면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정리하신다.


나는 내가 가진 _________________ 를 가지고,
__________한 고객들에게
_____________ 가치를 제공하고 싶은
___________다.


물론 하다보면 더 많이 탐구하고 완벽한 문장을 적고 싶어 적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땐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콘셉트는 내가 나의 과거나 사실, 현상을 인지하면서, 또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변할 수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린다. 오늘 기록하면 앞으로의 나에겐 나를 더 나은 언어로 설명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문장은 집에 가서도 자유롭게 고쳐도 된다고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성장이나 궤적을 확인하려면 지금은 지금의 언어로 완성해야 한다.






결론: 말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나는 생각한다. 말이 세상을 만든다고.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정확한 말이 사람을 불러모은다고.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달라진다. 나의 콘셉트를 명확히 한다는 건, 결국 나와 어울릴 사람들을 불러오는 주문을 외우는 일이다.


콘셉트는 자기다움과 타인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피어나는 세계관이다.

그 세계관이 풍성할수록, 세상과 나의 연결은 깊어진다. 콘셉트 언어는 타인과 나 사이에 선명한 다리를 놓아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신만의 언어를 찾길 바란다.

그리고 그 언어가 갈수록 풍부해지기를, 때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물론 언어가 있어도 말이 되기에는 또 용기가 들어가야 한다. 어떤 일에 진심을 다해 부딪혀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게 나야’ 하고 말하는 순간의 떨림을. 나도 그렇다. 나를 설명하는 말을 입에 올릴 때면, 마치 세상에 나를 한 줌 던지는 기분이 든다. 말은 가볍지만, 그 말에 담긴 나는 무겁다. 무언가를 걸고 나를 드러낸다는 것, 그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묘한 희열. 나는 그 감각을 내가 어떤 말로 나를 표현할 때마다 느낀다.


누구에게나 무대가 필요하고, 그 무대를 기왕이면 내가 만들면 좋다. 콘셉트 언어가 있는 사람은 물론 평가를 받겠지만 그 안에서 무대를 꾸미는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나는 언어가 나의 무대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지반이고, 어떤 모양이던 그게 내 무대가 될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세상이라는 무대에 올리는 것, 그걸 내가 해낼 수 있다면 참 멋있을 것 같다. 평가 하나에 무서울 수도 있지만 말이 만들어내는 이 세계에서 내가 디딜 땅 하나 없는 게 더 무서운 일일수도 있다.


내가 어떤 말을 쓰느냐는, 내가 어떤 세계에 살고 싶은지를 말해주는 선언이다. 세계관은 허공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에서 시작되고, 말로 정리되며,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구조물이고, 내가 세상을 향해 가는 작은 우주다. 말은 나를 대신해 세상에 닿는다.


나는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신만의 세계관을 세우기를.
그 세계관 속에서 관계를 만들고, 기회를 부르고, 다음 이야기를 쓰기를.

우리는 각자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확장하는 사람들이다.


나만의 언어를 찾고, 그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여정을 시작해보자. 그 여정은 당신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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