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배웠다.
시에 대해 생각하기
사람마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이 있다.
나에게는 그게 국어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거치는 동안 변하지 않고 국어 시간을 좋아한 이유 중 하나는 '시'였다.
정확히 말하면 시를 배울 때 그 안에 깃든 감정이나 심상이 무엇일지를 유추하면서 이리저리 살피는 행위가 좋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음에도, 품고 있는 마음이 복잡했음에도 그것을 어떻게든 단순하게 적어냈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같다. 시간과 마음을 뺏는 유려한 표현과 문장만큼이나 시간과 마음을 배려하는 절제된 표현과 단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장황하게 풀어쓴 소설보다 짧게 마음이 다 드러나지 않은 그 간극에서 오히려 나는 더 깊은 감정을 마주한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때는 문학시간에 시가 너무 아름답다고 운 적도 있었다.
가끔은 긴 말보다 짧은 말 뒤 침묵이 강렬하고, 존재보다 부재가 더 강렬하다.
그래서 나는 시가 주는 정확하고 가끔은 생경하고 모호한 표현과 그 뒤에 오는 여자나 여운이 참 좋았다.
생각해보면 할많하않의 역사는 아마 시에서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억압받던 시대에 작은 소리마저 허락되지 않아도 시는 있었고 사랑이 너무 애달퍼서 그 마음 다 전달하지 못할 때도 시는 있었다.
하고 싶은 말보다 할말하않이 나의 상황과 마음을 더 잘 표현해줄 때가 있다.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나 한 칸의 여지나 여운을 허락하겠다는 그 태도가 내가 뭣도 모르는 이 시에 담긴 배경과 마음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줬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오히려 몰랐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내가 나를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시를 이해하는 시간은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떤 시에 담긴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나면 내 마음이 세포분열을 마친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겨서 참 좋다'
그런 방식으로 나는 더 정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마음과 생각은 좋은 언어를 가질 때에서야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정교한 마음으로 다양한 생각을 하며 내 마음과 생각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겼다.
마음 한 켠의 스테디셀러, 김춘수의 꽃
서점처럼 내 마음 한 켠에 시와 관련된 스테디 셀러 좌판대가 하나 있다면 김춘수 시인의 꽃이 가장 가운데 잘 보이는 곳에 놓여져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오래 좋아한 시를 뽑으라면 당연히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 내 생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시이기도 하다.
근데 이 시는 나만 좋아한다고 하기에 너무 많은 한국인들에게 사랑 받는 시가 아니던가?
이 시는 아마 이 구절로 가장 유명할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시를 다음 구절 때문에 좋아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고등학교 때는 추상적으로 이 구절이 좋았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배우면서 이 구절은 내가 배움으로 실천해야 할 것, 즉 소명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들, 이름 없는 것들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 내 마음이 가장 끌리는 일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자주 이야기될 수 있도록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생기면 부를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관찰하게 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고 보면 교육학을 할 때도 교육철학 중에서 구성주의를 지지한 것, 역사학에서도 문화적 제국주의론, 유럽의 지방화하기와 같은 탈식민주의 분야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어쩌면 같은 결이라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자기의 빛깔과 향기를 찾고 그에 맞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모든 사람이 너무 외롭지 않게 서로에게 꽃이 되어주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어쩌면 이 시는 내 평생 가슴에 안고 살 시다.
와중에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작년에 이 시를 소개하면서 '평생교육 대학원 입시 성공 기원'이라고 쓴 것을 봤는데, 은아 너 성공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 사랑
두 번째로 좋아하는 시를 꼽자면 바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이다.
나는 일단 사랑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연락이든 뭐든 빠른 시대에 살아서 그런가 사랑에 대한 시를 볼 때마다 부럽긴 하면서 뭐 혼자 저렇게 절절하고 급발진이다 싶어서... 왠지 찾아보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 주제에 이성에 대한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도 큰 진입장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이 필요한가하는 의문이 떠오르다가도 사랑에 대한 논의를 왜 철학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지 생각하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내가 이 글에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했던 것에서 보면 행복하기 위해선 사랑은 꼭 필요하니 사랑은 인간 목적의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정의는 모두가 다르다.
누군가는 사랑을 자연적인 것으로
누군가는 호르몬의 작용으로
누군가는 열정-책임-친밀감의 적절한 조화로 보기도 한다.
지금보다 조금 어릴 때 나에게 사랑은 ‘열정’이었다. 어쩌다 마주치지 않을까 비비적대고, 안 보이면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 어쩔 줄 모르는,, 사실 작년까지의 얘기다.
내게 사랑은 열정 빼면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전 시대의 사랑시 속의 애달픔과 그리움에 사무치는 사랑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고 잠시라도 그리울 틈 없는 현대사회에서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싶어서 SNS를 한다지만 나는 기억되고 싶어서 SNS를 끊었어’라는 말을 보면서 우리는 보여지느라 그리워할 틈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우리는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어쩌면 강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뭐 다시 돌아와서 조금 성숙해진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기다림’이다.
그리고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는 기다림을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낸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궁금해지면 이 시를 읽는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 없이 있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 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것 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_황동규, 즐거운 편지
내가 기다림을 사랑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릴 적 내가 젓가락질을 못했을 때, 나의 부모님은 그냥 기다려줬다.
젓가락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알아서 배울 것을 알기 때문에
학창시절 내가 잠시 힘들 때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그냥 기다려줬다.
결국 스스로 답을 내리고 알아서 해낼 것임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가 너무 힘들 때 한마디 건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온전히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너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
너는 내가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너 스스로 훌륭해질 것이라는 것
너는 스스로 일어서서 언젠가 나한테 올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요즘 사랑이 궁금해질 때 저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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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사랑이 지속적 상태로 들어섰다는 하나의 지표이고,
그 사랑에 성숙하게 머물러 있는 태도다.
이제 나는 서로 미쳐버리는 열정적인 것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을 믿으면서도,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열정 뿐인 관계는 기껏해야 서로를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떨어져 있을 때 누구든지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라는 그 마음.
떨어져 있으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더 잘 보이는 사람
그제서야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음은 존재할 때 내게 강렬한 존재라면
사랑은 부재할 때 마저도 내게 강렬한 존재라는 그런 정의를 내려보고 싶다
태도가 되어주는 시
바다를 사랑하려면
바다가 되어야지
섬처럼 네 영혼이
외로워 봐야지
숲을 사랑하려면
숲이 되어야지
나무처럼 네 생애가
흔들려 봐야지
하늘을 사랑하려면
하늘이 되어야지
구름처럼 네 가슴이
먹먹해 봐야지
_ 공석진, 사랑하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된다.
낮은 곳에 살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_ 이정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 있다면 더 많은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비워야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Z세대한테는 노래 가사도 시인데요?
- 좋아하는 가사들 모음.ZIP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1
진심으로 빌게 너는 더 행복할 자격이 있어
#2
외로웠던 만큼 너를 너보다 더 사랑해줄 사람 꼭 만났으면 해
내가 아니라서 미안해 주는 게 쉽지가 않아
#3
사랑해줄 거라며 다 뭐야
어떤 맘을 준건지 너는 모를거야
_ 이런 엔딩, 아이유
사랑했던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별의 순간 가장 아름다운 말들 모음 같다.
#1
우린 아직 흑백영화처럼 사랑하고
언제라도 쉽게 빠르게 표현하고
맘에 없는 말들은 절대 고민하지 않고]
뭔가 아쉬울 땐, 밤 지새우고
남들이 아니라는 것도 상관 없지
우린 같은 템포, 다른 노래인거야.
아직 더 서투르고 솔직해야 하지만
반복에 기계처럼 계산하고 준비된 사랑을 하지만
자기야 나는 매일 다른 이유로 너를 더 사랑했었고
이젠 한시 오분 멈춰있는 시계처럼 너 하나만 봐
#2
투명해진 날 누가 볼 수 있을까
_ 검정치마, 한시 오분
프로포즈 할 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
#1
운명으로 친다면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
좋은 구두 신으면
더 좋은 데로 간다며
멈춰지지 않도록 너를 찾을 때까지
#
길을 찾아 떠난 갈색머리 아가씬
다시 사랑에 빠졌고 행복했더라는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이야기
_ 아이유, 분홍신
내가 개명하게 된 이유
#1
많은 이름에 힘이 드나요
불안한 미래에 자신 없나요
자고 나는 그깟 봄 신기루에
매달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아
#2
Because I'm a miss korea
세상에서 제일 멋진 Girl이야
_ 이효리, 미스코리아
결국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난
'나는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라는 말이 너무 좋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시는 필수불가결 하니까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나는 아름답게 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