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티 Jan 25. 2021

그리피스 도착

또 뜨거운 것이 흐른 곳

우리 집은 친가, 외가 모두 천주교를 믿는다. 그래서 나도 초등학교 때는 주일학교는 물론이고 계절마다 캠프도 가는 등 나름 열심히 종교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런 신실한 성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상이나 사주를 상당히 흥미롭게 생각하는 편이다. 가끔 주말이나 심심할 때면 곧잘 무료 사주 사이트에 접속해 내 생년월일을 쳐보곤 하는데,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어떤 사이트든 비슷하게 나오는 내용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때 부모님 중 한 분이 운이 쇠하면 해외로 나가는 등 인생이 크게 바뀐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20대와 30대에 파산을 몇 번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두 사주 모두 맞는 말이다. 20대 초반에 부모님 한 분이랄 것도 없이 가세가 심하게 기울면서 또래와 조금 다른 인생길을 걷게 됐고, 내가 도박을 하거나 유흥, 사치를 한 건 결코 아니지만 호주에서 생활하다 상황상 통장 잔고가 0이 된 적이 꽤 많다.


앞서 호주에 처음 도착해 정착비를 다 쓰고 시리얼과 요거트로 끼니를 때웠던 때 외에도 탬워스 다음으로 간 그리피스에서 사실 나는 통잔 잔고가 0이 되어 파산을 한 적이 있다. 탬워스에서 H 언니와 그리피스로 넘어오면서 또 일이 없을까 봐 애초에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백패커로 들어갔다. 이런 백패커는 호주 관광청에서 매년 발행하는 워홀 책자 맨 뒤에 있었는데, 당시는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사실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목록을 쭉 훑어보니 그나마 가깝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그래 봤자 역시 깡촌이었던)그리피스에서 대표적인 겨울 작물인 귤이 있는 걸 확인하고 일자리 주선도 해준다는 백패커를 찾아 먼저 연락을 했다. 그리고 다행히 백패커 주인은 일자리가 있으니 와도 좋다는 확답을 했다.


탬워스에서 구직을 한 방식과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노련미와 준비성을 겸비한 워홀러의 모습. 물론 그리피스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백패커에 도착하고 제일 처음 본 것은 백패커 주인 소유의 고급 차량 3대였다. 그에 비해 백패커는 그다지 좋지도 않았는데, 백패커의 고혈을 짜내는 사람인가 싶어 은근슬쩍 걱정부터 들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체크인을 하며 일은 언제 시작할 수 있냐고 물으니 요즘 귤 농사가 흉작이라 일은 바로 없고 계속 알아봐 주기는 하겠다는 말부터 했다. 하지만 이미 그리피스에 도착한 마당에 일단 짐은 풀어야 했으니 찜찜한 마음은 뒤로 하고 우리는 숙소 키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사실 일 보다 더 큰 문제는 돈이었다. 물론 이때까지 돈이 문제가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급하면 할 수 있는 한인 잡도 없는 깡촌에 있다는 점에서 돈이 정말 큰 문제가 되어버렸다. 거기다 탬워스에서 분에 맞지 않게 한량처럼 유유자적하면서 그나마 시드니에서 벌어온 돈 대부분을 썼고 백패커 입소비까지 다 내고 나니 또 알거지가 되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집에는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는데 원래 살던 집도 다 팔고 부모님 팔자에도 없는 반지하로 들어가 산다는 둥 흉흉한 소식을 들어서 나라도 억지로 잘 사는 척해야 했다.


어쨌든 나는 살아야 했고 같이 간 H 언니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사람이 가난할 때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건 식비다. 사람은 아주 아주 소량의 음식과 물만 있으면 연명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장을 보는 대신 숙소에 다른 워홀러들이 떠나면서 남기고 간 각종 레토르트 식품부터 섭렵했다. 이때 우리가 먹었던 식품은 Uncle Ben's Instant Rice인데 아주 맛대가리 없는 볶음밥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끓는 물에 포장 채 데워먹는 종류와 냄비밥으로 직접 해 먹는 종류가 있었는데 조리법과 상관없이 맛은 일관되게 형편없었다. 그래도 밥이다 보니 허기는 지지 않아 감지덕지하며 먹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마저 금세 동이 났다.


Uncle Ben's Instant Rice. 맛없어요 ㅎㅎ


그래서 우리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심각하게 웃픈 일이지만 당시에는 생존을 위해 해야만 했던 일을 했다. 바로 우리 방에 있었던 장식용 호박을 깨 먹기 시작한 것이다. 기억에 한국에서 죽으로 해 먹는 큰 주황색 호박 한 개랑 호주에서 butternut squash라고 부르는, 호박과 단호박 중간 식감과 맛을 가진 호박이 몇 개 있었다. 식량이 점점 동 나기 시작하면서 H 언니와 나는 호박을 주시하기는 했지만 저것까지 먹어버리면 왠지 인간의 존엄성까지 해치는 것 같아 망설였다. 하지만 일은 없고 잔고는 이미 0이 된 마당에 존엄성이고 뭐고 일단 배부터 채워야 했다. 그래서 어디서 꿀까지 구해 쪄먹고, 구워 먹고, 죽 해 먹고 온갖 호박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먹었다.  


이게 Butternut squash입니다. 딱 호박과 단호박 중간이에요. 맛있습니다^^


요즘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조금만 슬픈 장면이 있어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당시만 해도 나는 잘 우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절박한 상황이 딱히 슬프거나 우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호박으로 저녁 잘 먹고 침대에 누우니 뜨거운 것이 눈에서 흘렀다. 한 세 방울 흘렸나? 슬프지 않았는데 눈물이 흘러 당황스러웠는데 도저히 흘린 눈물의 의미가 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자기 설움인가, 아니면 반복되는 힘든 상황에서 느낀 좌절감인가? 그래서 그냥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내일은 뭐 해 먹나 고민이나 했다.

 



이전 15화 The Three Jobless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