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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Jan 12. 2021

The Three Jobless

세 얼간이가 아니라 세 백수

옛말에는 세 사람과 관련된 것이 많다. 여자 세 명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세 사람이면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 등이 있는데 그만큼 옛날부터 세 사람이 모인 집단은 뭔가를 하기 알맞았나 보다. K 언니, H 언니와 나를 포함한 삼총사 역시 물론 구직은 실패했지만 구직에 도전했던 한 달 동안 탬워스에서 셋이서 몰려다니며 나름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다. 


소소하게는 아침마다 하던 '의식'이 있다. 우리 셋은 아무래도 여자들이고 도시 생활을 하다 와서 그랬는지 탬워스에서 지내면서 단 하루도 화장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 우리는 깔끔하게 세안를 하고 백패커 방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누구 보여줄 사람도 없었는데 열심히 분칠을 했다. 그 열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각자 화장을 시작하면 삽시간에 방이 고요해졌고 그 어떨 때보다 진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거기다 거울을 바라보는 언니들의 표정이 너무 엄숙해 보여 하루는 내가 우리 무슨 의식 치르는 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의식부터 하자는 말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당시 우리가 일할 줄 알았던 고기공장에 직접 이력서를 넣으러 간 일이다. 탬워스에 온 지 꽤 지나고 점점 조바심이 나는 찰나에 K 언니가 직접 공장에 가면 일을 구할 확률이 더 높다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에 도시 괴담처럼 떠도는 얘기가 있었다. 바로 구직에 계속 실패한 모 워홀러가 고기 공장에 직접 찾아가서 애걸복걸 사정을 하고 하루를 꼬박 공장에서 마치 농성하듯 있었더니 그 정성에 감복한 공장 관계자가 일을 줬다는 얘기다. 


위에 쓴 것처럼 이건 그냥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일단 고기공장이나 농장의 경우, 호주 내에서 그다지 인기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이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시골에 위치해서 젊은이들은 대체적으로 시드니, 멜버른 같은 도시로 떠나고 고향에 남은 중년 어른들이 많이 하는 일이 이런 1차 업종 일이다. 그러니 사실 일손이 모자라면 모자라지, 사람을 가려 받을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육가공 공장이나 농장의 경우 지원을 여러 번 했는데도 구직에 실패하면 그냥 거기서 진행하는 채용이 없다는 의미고 빨리 지역 이동을 하는 게 좋다.


이런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했던 우리 세 중생은 이미 지원서도 여러 번 넣었고 채용 담당자에게 이메일부터 시작해 전화까지 했음에도 일을 못 구한 마당에 이 소식을 듣자마자 꺼져가는 불길에 부채질하듯 새롭게 희망이 샘솟았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세운 계획은 아침에 고기 공장에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출근 버스를 (몰래) 타고 가서 농성을 하고 퇴근 버스를 (몰래) 타고 오자는 것이었다. 일단 아무래도 구직 의사가 확실했던 우리라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떠나는 출근 버스에는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한 공장에서는 상쾌한 새벽 공기와 감색 하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물론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지고 간 공장 리셉션에서는 그다지 상쾌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리셉션 아주머니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다고 일이 구해지는 건 아니다고 했고, 내가 여기서 채용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그건 안된다고 못 박기까지 했다. 그런데 생각 보면 아주 당연한 게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도 않은 대기업 빌딩에 찾아가서 채용 담당자랑 얘기를 나누겠다는 지원자랑 뭐가 다른가. 막말로 그냥 미친 짓이었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돌아오는 길도 퇴근 버스를 타고 올 요량이었는데 그 계획마저 한꺼번에 무산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제발 빨리 사라져 달라는 아주머니의 눈길 덕분에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장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 새벽은 이른 아침이 되어 점점 해도 올라오는데 우리 셋은 갈 곳 잃은 양처럼 잠깐 멍해졌다. 그러다 어차피 파투 난 마당에 시간도 많겠다, 그냥 우리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역시 미친 짓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길을 나서고 인도도 없는 도로를 거의 반나절 동안 걷고 또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으니까. 


한참 걷다 만난 신기하게 생긴 염소.


이 외에도 우리 셋은 코딱지만 한 동네에서 도서관, 슈퍼마켓, 일자리 주선자 집, 구직 센터 등으로 참 잘도 몰려다니면서 매우 한가로운 백수 라이프를 즐겼다. 물론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지내고 K 언니가 먼저 아는 사람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H 언니와 나도 호주 정부에서 발부하는 워홀 안내서를 참고해 탬워스에서 몇 시간 떨어진 그리피스로 떠났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도 당시 원망스러울 정도로 파란 탬워스 하늘 아래서 한껏 분칠을 하고 올망졸망 몰려다녔던 우리 셋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뭔가 잔뜩 사고 숙소로 가는 K 언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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