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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Oct 20. 2019

5. 그게 아주 옘병이라더라





    본격적으로 봄에 대학에서 죽어났던 얘기를 쓰기 전에, 지금(10월 18일 오후) 내 허리가 죽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


    4화까지는 속칭 ‘세이브 원고’였기에, 이 5화가 브런치  작가로서 쓰는 첫 글이다. 작가 신청에 통과했다는 메일을 받고, 저녁 내내 부모님께 자랑을 하느라 앉아 있었고, 브런치 프로필을 열심히 편집했고, 매거진으로 올릴까 브런치 북으로 올릴까 고민하고, 1~2화의 퇴고를 한 번 더 보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아직도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 허리는 다 때려치우고 누우라고 소리친 지 오래인데! 모르겠다! 까라고 해!


    …실제로 좆깔 마음은 없다. 아까 진통제인 트라마돌을 복용했다. 여러 진통제를 전전하다가 찾았는데, 일부 효과가 있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정말 ‘머리에 힘을 줘서’ 나머지 통증을 참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기쁘다.


    나는 글쓰기에 반드시 독자가 필요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동기가 될 수는 있지. 댓글이 1개 달리는 것보다 10개 달리는 편이, 10개 달리는 것보다 100개 달리는 편이 보람찰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대개 쓰고자 하는 글이 정해져 있고, 댓글이 1개 달리건 100개 달리건 그것을 써야 하므로 독자가 없어도 쓴다. 쓴 뒤에 반응이 없으면 슬프지만, 말했다시피 그건 이미 ‘쓴 뒤에’ 일어나는 일이다. 독자가 없을 거라 해서 글쓰기를 중단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픽션 에세이’는 독자가 필요했다. 필요하다 못해 간절했다. 내 얘기를 듣고 통증을 알아줄 사람이 절실했다. 섬유근육통이라는 병이 있다더라, 그게 아주 옘병이라더라, 하고 말을 옮겨줄 사람이 긴했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랬다. 네이버 카페 <섬유근육통 환우의 모임> 회원수가 16,000명이고 게시글이 31,700개다. 가입인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모두가 절실하게 섬유근육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절실함이 멀리 퍼져나가길 나는 절실히 바랐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 섬유근육통에 관해 아는 사람이 16,000명 밖에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식이 부족하다’처럼 고루한 문장을 쓰고 싶지 않지만, 섬유근육통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부족하다. 많은 한국인이 비가시화 통증을 인정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고 여긴다. ‘아프다’는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예민하고’ 아픈지, 남들보다 ‘참을성이 없고’ 아픈지, ‘보기엔 멀쩡한데’ 아픈지 판단한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은 평생 섬유근육통 환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현대의학이 추측한 바로) 통증에 대한 지각 이상이 있어 예민하게 아픔을 느끼고, 극심하고 만성적인 통증을 겪으므로 참을성이 없으며, 의학적인 수치는 이상할 정도로 멀쩡하다. 따라서 의심되는 모오든 질병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지고, 그 모오오오든 질병이 아닐 경우 섬유근육통 확진을 내리는 배제 진단이 이루어진다. 어쨌든 진단이 이루어진다는 게 중요하다. 질병 코드도 있다. M79.7.


    섬유근육통은 실존한다. 실존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환자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사람을 엄살쟁이로 몰아 신뢰를 잃게 하고, 죽도록 아프게 하지만 당장 죽이 않는다. 증상의 스펙트럼이 광활해 내가 지금 섬유근육통 때문에 아픈 건지 실제 문제가 생긴 건지 구분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병에 관하여 늘 아군이어야 할 의사에게 ‘성격이 예민하신 것 같은데 스트레스를 줄이시고 적당한 운동을…’ 따위 소리를 듣게 한다. 특효약도 없거니와, 증상을 완화한다고 알려진 약물은 대부분 중추신경계 약물이라 부작용이 화려하다. 기타 등등. 적다 보니 개빡친다.





    위와 같은 정보는 검색만으로 나온다. 문제는 인지도가 낮아, 사람들이 검색할 병명 자체를 모른거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분명히 알게 되었겠지. 나는 중복되는 단어를 사용하기 싫어서 Ctrl+F를 이용하며 습관적으로 단어를 바꿔가며 쓰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 글에 9번이나 ‘섬유근육통’이란 단어를 썼다. 이제 10번이다. 섬유… 그거 뭐더라? 하고 헷갈릴 여지가 많으니까. 생소하고. 심지어 나도 아직 영어로는 못 쓴다. fibro 뭐였는데, 그 뒤의 철자가 어려워서…


    농담이다. 병명만이 중요하진 않다. 물론 통증 명명함은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도 불분명한 통증을 지속적으로 호소해준 덕분에, 2019년의 내가 ‘섬유근육통’이라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질환을 진단받게 되었다. 과거의 질환자들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다. 그리고 현재의 질환자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명명된 통증을 알리는 일. 쓰고 보니 거창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우리를, 우리의 통증을, 우리의 삶을 알아주면 좋겠다.


    독자가 필요했던 이유와 독자에게 바라는 바, 모두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납작 엎드려 알아달라고 굽신거리는 것이 아니다. 고개를 쳐들고 알아야 한다 분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알아달란 말이다. 감기라는 질병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콧물이 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 이후에 감기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개인의 자유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한다. 안쓰럽게 여기며 쌍화탕을 건네든, 괜찮냐고 한 마디 걱정하든, 한낱 감기 정도로 엄살을 피우냐고 불평하든, 마스크를 끼고 철통처럼 전염을 피하든, 완전 자유다.


    (참고로 섬유근육통은 전염성이 없다.)





    다만 감히 ‘우리’라고 싸잡은 섬유근육통 환우들에겐, 납작 엎드려서 사과를 하고 싶다. 보통 중년에 호발하는 질병이라 나는 평균적인 환자보다 연령이 어리다. 수년, 어떤 경우 수십 년을 앓은 환우도 있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병력이 짧다. 지난 연재에 적었다시피 정신적인 문제를 더 오래, 주되게 겪어왔다. 나는 누군가에 비하면 약한 통증을 겪을 것이고, 합병증의 개수가 적을 것이고, 먹는 약의 용량이 낮을 것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더 나은’ 상황에서 병을 앓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결코 섬유근육통 환자 전부를 대변할 수 없다. 하물며 일부조차 대변할 수 없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섬유근육통을 제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삶을 사는 중이다. 프로필에 휴학생이라 기입하긴 했으나 복학 예정은 불분명하다. 일과의 대부분이 통증을 느끼고, 통증을 참고, 통증을 완화하는 일로 이루어졌다. 질병에 소속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우리’라고 적고 싶었다. 원치 않게 싸잡힌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오직 질환자만이 질환자를 이해할 수 있다’고 1화에 말한 바 있다. 섬유근육통이야말로 그런 병일 듯하다. 가장 많은 하소연을 들어주는 엄마조차 내가 정확히 무엇에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안아주고, 가엾어하고, 무엇보다 병원비를 전적으로 지원해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환우 카페의 짧은 게시글에 보다 직접적인 위로를 얻는다.


    나는 그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일반 독자에게 바라는 바가 ‘알아주는 것’이라면, 같은 환우에게 바라는 바는… ‘위로받는 것’이다. 이 또한 절대로 강요가 아니다. 누구도 섬유근육통 환자에게 강요할 수 없다. 절대로! 아무도! 섬유근육통 환자에게 뭘 시키거나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 이미 엄청 아픈데! 이 경우, 오히려 부탁이나 바람에 가깝다. 환우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기를. 이유 없이 오늘보다 내일 덜 아프기를. 오늘 밤은 통증을 잊고 푹 잠들기를.





    밤이 깊었다. 허리가 더는 참아줄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누워야겠다. 본래 5화는 <대학에서 죽어나기>라는 제목으로, 강의실에 (문자 그대로) 드러눕는 재미있는 얘기를 쓸 예정이었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작가 선정 메일이 왔다. 정신적으로 고양된 채 소감문이라도 작성할 기세로 쓰다가 길어졌다. 맞다, 할머니에게도 자랑했는데. 인터넷이 뭔지도 잘 모르는 할머니가 Daum과 카카오는 알고 계셔서 설명이 용이했다. 역시 대기업은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시고, 저를 ‘작가님’이라는 대단한 호칭으로 불러주신 브런치 팀에게 감사드립니다. 의미 있는 글을 꾸준히 쓰겠습니다. 사람을 잘 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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