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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리안 Oct 26. 2019

누구나 그렇게 작가가 된다

빙점(氷点)



 1964년 천만 엔의 상금을 내건 아사히신문의 현상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한 미우라 아야코는 초등학교 교사로 7년간 재직하다 폐결핵에 걸려 교사직을 그만두고 요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결핵성 척추염에 걸려 13년이나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지만, 그녀는 자신과 싸우되 시간과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퇴원 후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나갔고, 밤이 되면 추운 날씨 탓에 얼어붙은 잉크병과 씨름하며 이불로 몸을 두른 채 떨리는 손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빙점氷点』입니다. 그 후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96편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999년 다장기부전증으로 향년 7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그녀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가 집필을 결심한 시점에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이 얼어붙는 것 같았을 테지만, 작품이 완성되는 그 순간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진정한 빙점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물이 얼고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온도.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어쩌면 병마가 아닌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미우라 아야코는 인간의 존재와 사랑의 본질에 다다르기 위해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며 쉼 없이 꿈꾸었습니다.





 시간은 인생의 동전이라고 합니다. 시간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동전이고, 그 동전을 어디에 쓸지는 각자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같은 개수의 동전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다고는 하나, 실제로 쓸 수 있는 시간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똑같은 목표가 있다고 해도, 어떤 이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롯이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는가 하면, 직장 생활을 하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거나 주말에만 겨우 글 쓸 여유가 생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전자의 경우가 훨씬 유리할 것 같지만, 꿈을 먼저 이루게 되는 쪽은 의외로 후자일 때가 더 많습니다. 


 이유는 바로, 시간을 대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전자는 자신에게 시간이 아주 많다고 여기는 탓에 서두르지 않게 되죠. 보유한 동전이 많으므로 그만큼의 소비가 이루어지기도 하고요. 저도 지망생 시절에 무작정 직장을 때려치우고 집에 틀어박혀서 글을 써본 경험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의욕을 불태우며 창작 활동에 매진했지요. 


 그러나 ‘작심삼일’이 지나자, 의욕과 열정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소재를 얻고 자료조사를 하겠다는 그럴싸한 핑계로 온종일 인터넷 기사만 읽는가 하면, 종영한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서 보고, 뜬금없이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질 않나, 아이디어 떠올리는 데는 역시 산책이 최고라며 집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죠. 산책은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사람에겐 정말로 필요한 부분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외의 것들은 글쓰기 싫어서 스스로 만들어낸 ‘불필요한 활동’에 불과했지요. 그렇게 자기 합리화의 나날들이 늘어갔습니다. 


 그 결과, 기획했던 소설은 초반 10장 정도를 쓴 뒤로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어요. 시간이 많으면 작업에만 매달릴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딴짓’을 하느라 그 많은 동전을 허비하고 만 것이죠. 생각해보면, 직장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썼던 시절에는 ‘시간’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전업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과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작가의 꿈을 영영 이루지 못한 채, 원하지 않는 직장을 평생도록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감정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주어지자, 가진 건 시간밖에 없다며 흥청망청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제 기분은 마치 ‘로또 1등 당첨자’였거든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건, 동전의 개수가 아니라 동전을 값지게 쓸 줄 아는 능력이며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결국,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시간의 많고 적음은 애초부터 큰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나는 참 게을렀고,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나 봅니다. 



글. 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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