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대학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전생을 믿는가? 나는 전생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지나 버린 것들, 지난 시간 속의 선택, 과거의 사람들에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현실이 될 수 없는 전제 조건을 다시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다시... 한다면?'이라는 전제가 가능성이 0%여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있는 힘 다해 즐기고, 에너지를 적당히 분산해 미래지향적 목표를 위해 추진하는 게 유익이라고 믿는다.
나의 성향을 정리하면, 10% <회의주의>와 50% <현실주의>, 남은 영역 40% 정도는 <미래 지향적인 성향>이 차지할 것이다. 이러한 뇌 구조의 보여준다 해도 어떤 지인이나 친구는 끝까지 묻곤 한다.
"다시 과거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거야?"
"제일 돌아가고 싶은 나이는 언제야?"
대답은 일관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값지게 찾고 발견해 온 <지혜의 깊이>와 <성숙도>를 가지고 되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야? 인생의 지혜는 능숙한 채 나의 신체 조건만 젊어지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어떤 젊고 좋은 시절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 되돌아가서 다시 반복하라고? 이미 거쳐 온 시행착오, 미숙함을 다시 반복하는 거 나는 진짜 끔찍해. ㅎㅎ 무조건 나는 지금이 좋아. 그간 살아온 삶이 쉬웠어? 나는 아니거든. 그걸 왜 반복해야 해? 지금까지면 충분해."
"예이 그래도 ~"
"<그래도>라는 전제 따위는 없어. 10대는 혼란과 전쟁 같은 시간이었고, 20대는 진정한 질풍노도였어. 다들 꽃다운 20대라고 하더라. 내 마음은 꽃밭이 아니라 공사판이었거든. 하루하루가 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 중'말이야. 고3 시기가 인생에서 진짜 힘들잖아. 고3 끝나면 장미빛 같은 희망이나 다른 뭔가를 기대했는데, 장미빛은 개뿔!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지던데. 대학 시절은 외롭고 우울한 시기의 시작이었어.
덕분에 얻은 건 하나 있더라. 20대가 끝나가면서 얻어지는 기쁨이 있긴 있었어. 어제가 너무 힘들 때는 말이야. 오늘의 긍정적인 변화가 아주 미미한 크기일지라도, 그 미미한 변화에 많이 행복해지더라. 어제의 암흑 같은 절망도 알고 보면 내일 다가올 좋은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암과 명의 역할을 하더라. 덕분에 소소한 행복이 소소하지 않았고 큰 감동과 혜택으로 깨달아졌어. 20대가 통째로 긴 절망의 터널 같았는데, 버텨내긴 한 모양이야. 이후의 시간은 매일매일 한 줄기의 빛만 다가올 뿐인 데도, 그 가느다란 빛줄기가 온 우주를 비출 것 같은 희망이 되어 가고, 그래서 감사하고 만족이 되더라 ㅎㅎㅎ"
그런데 이 작품에서 만큼은 기회비용을 따지면 의미 없는 소비로써 값비싼 가치지불이 될지언정, 가정을 해보련다. 판타지 코믹 영화 속에 내가 주인공으로 출현했고, 다시 '대학 입학생'으로 되돌아갔다는 전제를 가져볼 생각이다.
그 시절의 내가 된다면 나는 이렇게 변할 것이다.
여중 여고만 다녔지만, 학교 밖에서도 잘 놀았던, 쾌걸한 성격의 여자 중고생이 나였다. 그러다 보니 남사친은 많았고 남자 친구는 빈번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나는 남자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랬을까? 그랬다면 홍일점으로서 남자들과 학교 생활하는 것이 힘들지 않아야 했다. 요리 잘하는 사람이 요리하기 싫을 수는 있지만 요리하는 일이 힘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공대 홍일점으로서 사는 게 힘들고 어려웠다. 365일 중 울며 지낸 날 수가 훨씬 많았다.
게다가 성장기동안 정감 넘치는 지역 '전라도 광주'에서 보냈다. 이 사실 또한 눈물 많은 여자 공대생의 한 가지 연약함이었다. 정감 넘치는 문화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개인주의가 약한 문화로써 이는 타인의 일을 나의 일로 동일하게 공감하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문화다. 개인의 좋은 일, 나쁜 일, 그 밖의 소소한 모든 일상에 대해 격하게 동요하면서 '너와 나의 각 자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만드는 성향이 짙게 깔린 지역문화다.
지역적 문화 때문에 고등학교 친구들 간에 버릇처럼 길들여진 생활 습관 하나는 다음과 같다. 여자 고딩이였던 우리는 화장실을 같이 다녔다. 같이 매점에 가고, 같이 밥을 먹는 습성은 당연한 생활인데, 화장실 같이 가는 건? 좀 의아할 수 있다.
친구가 화장실에 가니까 본인의 생리적 현상에 상관없이, 친구 따라 강남도 아닌 화장실을 간다? 이 행동은 지금의 나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지니까. 확실한 건, 그때 우리에게는 당연한 처사였다. 친구끼리 일상의 부분을 '동행'으로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건 힘들었던 고등학교 생활의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암묵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공대 홍일점이 되면서 화장실 같이 갈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토목공학과' 정원은 학번마다 60명, 그중 59명은 남학생, 달랑 한 명만 여학생이었고 이들은 수업을 같이 들었다. 다들 기다리던 쉬는 시간에 우르르 강의실밖으로 나왔다. 몇 미터를 더 걸어가는 것까지는 같았다. 그다음 바로,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남자 동기들은 무더기로 한 종류의 화장실을 선택했는데, 나만 혼자 여자화장실로 향했다. 심지어 공대 건물에 여자화장실은 모든 층에 존재하지 않았다. 숫적으로 여학생이 적다 보니, 2층과 5층에서만 여자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건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분리에 대한 단순한 의미라기보다 다른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중세 시대부터 화장실에서 회복과 공감을 나누는 문화가 '파우더룸'에 존재했다. 딱히 이상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백화점의 고급화로 인해 '화장실'도 고급화되어서 어떤 공간은 집의 거실보다 안락하고 호사롭다. 화장실이 다만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는 공간이 아닐 수 있다. 어떤 연예인 신랑되시는 분은 한 프로그램에 출현해서 아내가 못 먹게 하는 초코파이를 몰래 숨겨서 화장실에서 먹는다고 밝혔다.
입학하고 동아리를 순회하면서 나의 진정한 동기를 밝혔다.
서로 초면이기에 인사를 나누는데 나의 인사말은 솔직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토목공학과 신입생이다 보니, 화장실 같이 갈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상황입니다.
화장실 같이 갈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20대 시기를 돌아보며 가장 후회하는 점이다. 한 분야의 실력이 쌓이려면 그 분야의 활동을 반복해야 한다.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냐면? 능숙해질 때까지! 이 법칙은 연애 영역에도 통한다. 그런데 나는 중요한 시기에 경력 쌓기를 멈춰 버렸다.
중고등학교 시절, 연애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성교제를 어설프게 했던 탓이었다. 막상 대학교에 와서는 흥미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의 심리는 참 묘한 데가 있다. 사과도 몰래 훔쳐 먹는 사과가 더 맛있는 법이다. 허락된 시간에 사과의 맛은 그때보다 못하다. 이 원리와 흡사했다. 하지 말라고 할 때 어설프게라도 맛을 봐 버렸더니 그 맛이 설익은 맛이었다 해도, 자유로운 시간에는 정작 호기심이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나의 특수한 상황은 오히려 지레 겁먹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렸다. 남학생만 군대처럼 존재하는 상황말이다. 말 다한 셈이다.
이는 한 이성 즉 연인과 관계의 굴곡이나 상실에서 비롯될 수 있는 희로애락을 전혀 모른다는 의미였다. 특히 헤어지고 난 후의 상실감을 조금도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헤어짐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단짝 친구가 2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되는 수준이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의 정의나 각 자의 방법이 매우 다르고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20대에 알아야 할 에로스적 사랑의 오만가지 감정과 그로 인한 발산적인 행동이 있다. 이것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것 매우 중요한 여정이라고 확신한다. 이 과정은 '자아의 발견과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중요한 통로 중 하나다. 나아가서 인생의 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결혼이라는 법적 동반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함께 성숙하기를 멈추지 않는, 시간이 더할수록 신뢰도 쌓이는, 동반자이자 동역자를 의미한다. 만날 수도 있고 결혼은 했지만 그러한 동역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대상일 수도 있다. 결국 홀로 서 가는 게 인생이지만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멈추지 않는 동역자를 배우자로서 만난다면 그건 큰 축복이다.
당시 나는 이런 축복을 찾는 일보다 더욱 희박한 가능성을 기대하며 찾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동성끼리 화장실 같이 다니는 사이에나 존재하는 '우정 관계'를 새로운 남자들의 집단에서 찾으려 했다. 동기와 선후배 통틀어 200~300명 안에서 한 명 정도는 존재할 거라 기대했는데 너무 과한 기대였을까? 나의 기대가 과했던 건 남자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다음은 순전히 경험적인 나만의 소견이다.
구태의연하게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냐? 남사친 여사친도 있지 않냐?"이런 질문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거나 주장하려는 의도는 없다. 존재할 수도 있고, 절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여부는 진리의 문제라기보다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다. 당사자가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믿음대로 실수 없이 행동하면 존재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곧장 피곤한 선택이 된다. 존재하지도 않는데 굳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니까 그 의지적 반응이 피곤해질 게 뻔하다.
나는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수년의 경험을 돌아보니, 가능성은 희박했다. 상대도 동일한 반응을 보여야 성립되는 전제였다. 그런 어려운 '우정관계'를 남녀 사이에서 찾느니, 진정한 에로스적 신뢰를 찾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아싸리* 연애 실컷 할 테다.'
"아니 홍일점이라면 확률적으로 유리하고 높은 상황인데 그때는 연애를 왜 안 했냐? 인기가 많으셨을 텐데?" 의구심 있을 수 있다. 홍일점이라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연애를 했을 것이다. 나는 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지난 6화에 < 놀아본 사람들 >에 등장했던 희진이 캐릭터와 비슷한 소유자였으니까. 남녀 관계에 있어서 자기 중심성이 강한 희진이는 이성의 호감에 대해 즐겁다면, 거절하는 법을 잘 몰랐다. 어떤 이성에게나 잘 웃어주는 친구였다. 비슷한 기질이 나에게도 있었다. 희진이와 함께 등장했던 진지한 민정이는 걱정이 되었지만 희진이가 걱정되지 않은 이유였다. 우리 둘 사이의 큰 차이는 이것뿐이었다. 희진이는 남녀 성비가 서로 적당한 영문과였고 나는 59대 1의 성비를 가진 토목공학과였다.
이런 과 상황에 한 명을 사귀는 것은 "이 친구와 내가 좋은 이성 상대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의미라기보다 "이 친구는 나의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될 것이요!"라는 대전제를 온 학교에 발표하는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부담이었다. 사귀다 헤어진다? 헤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헤어지는 선택을 2명의 이상의 남자와 반복한다? 다시 3번째 대상을 또 만난다? 그런데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요약하자면 나를 감당할 수 없는 이미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갓 스무 살인데, 뭘 믿고 상대를 영원한 시간을 함께 동행할 동반자로서 교제를 허용한단 말인가? 나는 어느 쪽에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학 4년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차라리 결혼에 적당한 사람을 따로 만나는 편이 좋다고 여겼다.
아버지 성향상 내 맘에 든 상대를 만난다 한들,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라면 결과 또한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나와 상대의 마음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놓으실 분이었다. 애초에 아버지 기준에 맞지 않을 사람과는 시작조차 않는 게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중고등학생들은 아니니까.
재밌는 상상이지만 돌아간다면 정말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