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무조건적 공감과 사랑에 대하여.

-어머니들은 예수가 부처가 아니다

by 실루엣


많은 심리학 및 아동 전문가들이 엄마들에게 말한다.


부모가 무조건적으로 공감해주세요.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세요.


죄송하지만, 난 이게 심각한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일명, 배운자의 헛소리다. 양육 현장에서 아이와 직접 뒹굴며 잠못자며 고생하며 뛰고 있는 수많은 '전문적인' 양육자들에게 묻는다. (이후 내 감정이입을 위해 그냥 편의상 엄마로 가정하겠다. 아빠들 서운해 마시길)


당신은 매순간 아이에게 무조건적으로 공감이 되는가? 혹은 자기가 아이의 마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yes 라고 대답한다면,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그녀는 아이에게 위험한 엄마가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해로운 '엉터리 독심술'과 '이중메시지', 그리고 '이중구속'을 자주 사용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공감에 대해 얘기해보자.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을 말한다.


이는 우리가 흔히 공감이라고 착각하는 '동일시'에서 체험되는 감정과는 다르다. 동일시에 의한 감정은 '너와 나'를 착각하여 그 경계가 무너진 채 발생하는 감정이다. 즉, 상대가 겪고 있는 일을 내 일이라 생각하는 주체의 혼란이 일어나면 '동일시' 가 된다. 흔히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공격받으면, 내가 공격받는 것처럼 화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공감은 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너' 와 '나' 의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 "내가 너였더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너의 지금의 선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라는 나의 자리에서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길 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공감은 상대에 대한 이해가 될 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지, 우리가 공감한다고 해서 되는 의지가 포함된 '능동사' 가 아니다.


양육자는 아이와 별개의 존재다. 양육자는 자신의 삶의 무대와 입장이 있으며, 아이도 아이의 상황과 입장이 따로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어느 한쪽에 무조건적 공감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에 가깝다. 찰나도 힘든데.


내가 이런 심리학 또는 양육 전문가들이 '무조건적 공감' 을 좋은 육아의 해결책으로 들고 나오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이는 모든 양육자들에게 '나는 왜 아이에게 무조건적 공감이 안되고 화를 낼까'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라는 죄책감을 남몰래 심는다. 그리고 아이를 망치고 싶지 않은 엄마들로 하여금 '속마음과 표현되는 말'이 서로 다른, 이른바 이중메시지 및 이중구속을 아이에게 사용하게 되는 더 안좋은 결과를 유발시킬 수 있다. 이는 솔직하게 "너 때문에 정말 화가 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훨씬 해롭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이중메시지>의 해악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 결과도 많고, 지금은 논란이 많아졌지만 조현병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었다.


아이는 엄마의 영역 안에서 자란다. 뱃속에서 한 몸이었다가 자라나면서 분리되어서도 엄마의 영역을 계속해서 침범한다. 그녀들의 잠을, 그녀들의 공간을, 그녀들의 시간을, 그녀들의 체력을. 침범당하면 일어나는 본능적인 감정이 '화' 다. 엄마지만 사람이기에 아이가 분리되어 개별존재로 떨어져 나가면서 자연스레 올라올 수 있는 감정이다. 다만,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열심히 참고 있을 뿐. 화를 느끼거나 내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에게 무조건적 공감이 잘 안 되는 건 당연하다. 나는 나의 감정과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세요' 에 대해 볼까. 난 이 주문이 악용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치고 싶은 상황에서도 화가 나는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일단 담아두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니가 마음이 상했구나, 그걸 하고 싶었구나? 그랬구나..


이게 바로 아이에게 행해지는 이중메시지다. 엄마는 사실 내게 화가 났는데, 나를 위하는 척 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해해주는 척 한다. 게다가 내 마음을 내게 묻지도 않고 아는 척 한다. 물론 그게 실제 아이의 마음과 일치한다면 문제없겠으나, 자신이 사실 화가 났다는 걸 인정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가, 매 순간 아이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내고 올바로 표현하게 도울 수 있을지부터가 의심스럽다. 뭐든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방법은 엄마가 그걸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좋은 뜻에서 그랬을지 몰라도, 아이가 그 순간 엄마에게 배우는 것은 '자신의 부정적인 진짜 감정은 숨기고 안그런 척 해야한다' 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감정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감정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더 전문가이다. 감정을 숨기는 법, 방어기제가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어른이 가르치는 것이다 . 자신의 물건을 빼앗긴 두 살 아이를 본 적이 있는지? 바로 드러누워 운다. 빼앗기면 화내고 울고, 자신이 원하는 게 좌절되면 실망해서 또 운다. 아이들 자체가 감정과 바로 연결된 감정덩어리 그 자체인데 그들에게 감정을 가르친다는 것은 또 무슨 어불성설인지. 그들은 그들의 감정을 스스로 이미 충분히 안다. 다만 표현이 서투를 뿐이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사회적으로 순화된 감정의 표현방법' 일 뿐, 감정에 관해서는 그 무엇도 가르쳐서도 안되고, 막아서도 안 된다. 우리 어른들은 이미 수많은 방어기제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그 자연스런 감정을 찾기 위해 상담실 의자에 앉아야 할 정도니까.


아이는 엄마가 그 감정을 '읽어주고' 아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줘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른들을 직접 관찰해서 보고 배운다. 엄마가 엄마 마음과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아이도 그것을 보고 배운다. 물론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의 '표출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의 '표출방식' 이다.


그럼, 대안은 뭐냐고?

뭐 대안이랄 것까진 없지만 차라리,


몰래 비밀 일기를 쓰세요.
'나 대화법' 을 배우세요.
거울보고 자기주장훈련을 하세요.


아이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자주 세밀히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글로 정리하면, 내 마음도 잘 알 수 있고 감정들이 순화되는 효과가 있다. 상대에 대한 비난 말고 내가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습관이다. '나 대화법' 을 통해 상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 '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표출 못한 감정이나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이야기들을 마음속으로 혹은 거울보고 연습한다. 이게 자기주장훈련이다.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고 적는다.

최대한 '비폭력적으로' 상대에게 표현한다.

최대한 '부드럽게' 상대에게 묻는다.


물론, 이 대안도, '솔직하게' '비폭력적으로' '부드럽게' 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최대한 노력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스킬이다.


아무래도 부처나 예수님만 가능할 법한 범인에겐 불가능한 '무조건적 공감'이라거나, 무조건적 이해라거나, 상대의 마음을 읽으라는 아무도 못한다는 '독심술'을 아이에게 쓰라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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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저도꾸준히노력중입니다

#안그래도힘든엄마들더힘들게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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