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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08. 2023

디즈니 다시보기 - 라푼젤  

  - 진정한 모성애에 관하여 (feat. 도날드 위니컷)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 에서 유명한 노래, Mother Knows Best 가 있다. 아무런 맥락 없이 가사만 들으면 우리가 엄마에게 들었을 법한, 또 엄마라면 우리 아이들 (특히 딸이라면) 에게 했을 법한 아주 평이한(?)  잔소리다.  


Mother Knows Best

엄마가 제일 잘 알아

Listen to your mother

엄마 말 들어

'I love you very much, dear.'

사랑한단다 , 아가야

'I love you most.'

내가 제일 사랑한단다.


하지만, 맥락과 함께 영상을 보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괴기스런 마녀가 아이를 '가스라이팅' 하기 위한 노래를 대놓고 하고 있다.


https://youtu.be/-7jWt3JvJto?si=sOBx0cTMhDvGn3ci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로, 아동 발달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던 대상관계 이론 학파로 분류되는 도날드 위니콧 Donald Winnicott 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 의 형태의 원형이 우리들의 평범한 '어머니' 라는 주장을 하였다.


언뜻 들면 반감이 들 만한 주장이지만, 대상 관계 이론에서는 우리는 아기 시절부터  '좋은 엄마' 와 '나쁜 엄마' 를 잘 통합하는 과제를 이루어야 어머니에 대한 관념이 통합을 잘 이루고 내면화 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모든 어머니는 '좋은 면'과 '나쁜 면' 이 모두 있는데, 이 두 가지 면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적절히 통합할 수 있어야 아이는 건강한 '어머니상' 을 가지고 자랄 수 있게 된다. 그렇지 못할 때, 어머니는 '마녀' vs.  '좋기만 한 왕비' 가 된다.


나쁜 엄마 vs. 좋은 엄마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라푼젤> 은 보통 세계의 엄마와 딸의 관계를 묘사한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서 독립하지 않고 '모성' 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서로 기생하는 어머니-딸 의 관계를 잘 그려냈다. 그러한 모녀의 관계가 바로 라푼젤과 마녀의 관계다.


우리는 보통, '마녀' 는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라푼젤을 억압하는 나쁜 존재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어머니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의식의 세계가 아닌, 무의식의 세계라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무의식의 세계는 질서라는 것이 없다. 사회적 관계 또한 없이, 그저 존재와 존재들의 욕망의 얽힘 관계만 있을 뿐인 굉장히 '혼돈적인 세상' 이다. 그 세계에서 어머니의 원초적인 욕망은 자신을 닮은 딸을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연명하려는 욕망이다. 자신과 가장 비슷한 처지에 있는 딸의 인생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 하려는 어머니들의 시도가 무의식적 '생명 연장' 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거부감이 들지 모르지만,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도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 이루 세어 말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그 자식이  '자신의 분신' 이라 생각하는 어머니들.  

-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아이들에게 심어, 자신이 이루어야 할 꿈을 아이들이 이루도록 강요하는 어머니들.

-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것' 이라고 "너를 위해서"를 외치는 어머니들.

- 자식들의 모험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과잉보호하는 어머니들

- 그들이 모두 컸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시키지 않고 계속 '엄마' 라는 타워에 가둬두고 보살피려고 하는 어머니들.


모두, 큰 범주에서 보면 라푼젤에 나오는 <마녀> 상이다.

그 어머니들과 마녀의 공통점은 '자신의 생명력'이 없다는 것에 있다. 



아이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야 하는 어머니들에게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키우는 것' 외에 진정한 자신의 생명력과 활기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삶의 원동력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집착하고, 그들을 떠나보내지 않으려 하며, 끝까지 '어미'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 타워에 머물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라푼젤의 마녀는 , 자기애적인 보통의 어머니들을 상징한다. 첫 등장 장면에서 그녀는 거울에 비친 모습에 자신의 '딸' 역할을 하고 있는 라푼젤이 아니라, 자신을 보며 자신의 미모에 감탄하고 신경쓴다. 그러한 젊음과 생명력을 주는 딸이므로 (라푼젤의 머리칼을 만지면 젊어지기 때문에) 라푼젤을 놓칠 수가 없다. 라푼젤의 머리카락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머리카락) 을 쓰다듬으면서 젊음을 유지하기 때문에, 라푼젤이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강력한 '도구' 로서 가치를 갖는다.  마녀가 라푼젤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무척 사랑했을 것이다. 없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하는 어머니와, 라푼젤을 자신을 평생 살아갈 수 있는 젊음을 되찾는 도구로 생각하는 마녀는 본질적으로 아이들을 어떤 '이용 목적' 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마녀는 '라푼젤'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라푼젤을 곁에 두고 그녀를 통제해야만 한다.
라푼젤의 삶은 없다. 그녀의 어머니를 위한 삶을 살고 있을 뿐.


하지만, 그녀 마음 속에 자신의 삶을 되찾을 단서는 존재한다. 모든 이에게 그러하듯이.

그 단서는,


매년 자신의 생일마다 온 세상을 뒤덮는 등불,
그리고 어떠한 자신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When Will My Life Begin?


디즈니에서는 주인공들이 다 공주라며 신분제도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공주' 나 '왕자' 의 신분을 우리 내면의 <주인공> 을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중요성과 값어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잘 드러낼 수 있는 장치가 '신분' 이므로.


자신이 한 나라의 '공주' , 즉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적인 권력을 가진 '공주' 였음을 잊고 자란 라푼젤은 마녀(가짜 어머니, 가짜 모성)를 위한 삶을 살면서도 그 의문의 끈을 놓지는 않는다. 그 의문과 욕망은 이 노래로 표현된다.


도대체 내 삶은 언제 시작할까?


https://youtu.be/kRXmAIHYQR4?si=IlM1eesGrbTyOtud


매일 매일 '엄마' 라는 타워 안에서 갇힌, 루틴한 삶을 살고 있는 라푼젤에게 그 신기한 등불은 희망이다. 자신의 생일마다 피어오르는 그 등불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하루 하루 살고 있을 즈음, 그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직업이 '도둑' 이다. 직업이 도둑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도둑은, 숨겨진 것을 잘 찾는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잘 알아보고,

몰래 잘 훔치기도 한다.


일단, 사람에게 값어치 있는 것을 낚아채는 능력을 가진 것이 '도둑' 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꿈 분석 이론을 들여다보다보면, 우리가 꾸는 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우리 내부의 어떠한 '성질' 그야말로 '특징' 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우리 내부의 이미 존재하는 어떤 성격이다. 그 이론을 참조해서 보다보면, 라푼젤이 '도둑' 을 만나 자신의 희망인 '등불' 을 보러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난생 처음으로 빛나는 세상에, 자유롭게 뛰어든 라푼젤은 그 '도둑' , 자신의 남성성을 만나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가 가장 거칠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자신도 크게 소리내어 노래한다.


I've got a dream 난, 꿈이 있어요


그녀의 꿈은 소박하다. 자신의 생일에 떠오르는 등불을 직접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소박한 꿈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자신의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 자기가 왜 타워에서 나와 세상의 모험을 감행하고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서 위험할 수 있을 지언정 매일 매순간 다채롭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고자 하는 그녀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https://youtu.be/zi5Z6rNU9Hw?si=LY5jj09-oq4tyR39

그래서 그녀는 엄마가 피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던 그 '위험한 사람들' 앞에서 순수하게 소리높여 노래한다. 꿈이 있다고. 자신이라는 타워를 떠나서 너무 행복한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녀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는지도 모른 채로.


Again, Mother Knows Best


독립하려는, 엄마를 벗어나는 시도를 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를 향해 다시, 엄마의 노래가 시작된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라푼젤에게 쏟아붓는 마녀 엄마의 분노는 아주 흔한 사춘기 아이들과 어머니와의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배경과 캐릭터를 제외하고 , 전달되는 내용만 보면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쥐려는 아이들과 , 아이들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 않으려 하는 어머니간의 치열한 전투를 엿볼 수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아직까지도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핵가족화가 되면서 어쩌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https://youtu.be/JUyM1ESwGW0?si=wJJaHl8hc7yPtvNR


독립하고자 하는 아이를 향해, 어머니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과 협박으로 아이를 되찾으려 하고 어떤 경우에는 어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그 엄청난 모성애라는 힘에 대항할 자신의 힘이 없어서, 또는 그저 독립할 필요가 없어서 '기생관계' 를 계속 유지하곤 한다.


독립, 머리카락을 자르다.


우리는 태어나서 두 번 독립한다.

신체적으로, 물리적으로는 어머니와 탯줄을 자름으로써 독립된 몸을 갖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어머니와 연결된 보이지 않는 영혼의 연결지점을 끊어냄으로써 독립된 정신을 갖는다.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성인' 으로서,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 과정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이다.


https://youtu.be/y-OP1mCiJ5M?si=-KcVVQlrICWc7YLM


잘린 머리카락은 남을 살려내는 그 찬란한 생명력을 잃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라푼젤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을 치유하고 살려내는 능력’이라는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 자신’ 이라는 한 존재로서 살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떨어져 있던 자신의 진짜 엄마와 만난다. 그 국가의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권력을 지닌, '왕비' 를 말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일 수도, 한 여자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어머니와 딸 (또는 어머니와 아들) 간의 기생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도 하다. 서로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서로를 속박하고 구속하면서도 사랑하는 애증의 관계를 끊어내고, 서로가 서로의 생명력을 의지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찾아나가는 삶. 그리하여  자신의 삶의 주인인 '공주'의 삶을 되찾아가는 그 과정을 그린 만화이기도 하다. 또 어떻게 보면, 진정한 모성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거짓된 모성애는 보살핌을 통해 은밀한 통제를 한다. 모성애라 함은, 보살피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늦게 하도록, 혹은 못하도록 그 자리에 주저 앉히는 데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스스로 밥을 해먹을 수도 없고, 스스로 옷을 사 입지도 못하고, 스스로 무엇을 먹을지 반찬 조차 이 '어미'의 존재가 필요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지극히 자기애 적이어서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를 위해 자식이 존재하는 구조다.


아직 내가 필요하지? 내가 해줄께.
날 떠나지마.


자식이 없는, 자신만 있는 그런 자기애가 모성애의 이름을 뒤집어 쓴 경우다.


진정한 모성애는 자식이 연약할 때 보호하며 스스로 능력을 키우도록 교육시킨다. 그 자식이 스스로 살아가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최대한 강하게 그 능력을 키우도록 보살피고 때로는 가혹하게 훈련시킨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자식이 평생 내 곁에 남아 나를 보살피고 보호하고 위로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독립' 하여 자신의 삶을 어려움 없이 개척해나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성애다.


그래서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성애는 스스로 자식이 독립하는 그 순간에 끝이 난다. 진정한 모성애일 수록 , 그 자식에게서 감정적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고, 경제적인 서포트를 받으려 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 자식이 스스로 '자신으로 설 수 있도록' 응원한다.


진정한 모성애란 무엇인가?
독립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삶을 되찾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난 이 애니메이션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오직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 받기보다 주는 데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여자, 그녀 자신의 실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여자만이 어린아이가 분리 과정을 밟고 있을 때에도 사랑하는 어머니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사랑을 할 수 없는 여자는 어린아이가 연약한 동안에는 상냥한 어머니일 수 있으나 사랑하는 어머니일 수는 없다. 사랑하는 어머니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 시금석은 분리를 견디어낼 수 있는가, 분리된 다음에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사회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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