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새의숲 Jan 07. 2024

나는 무엇을 사랑했던 걸까

 - 그 남자였을까, 프랑스였을까, 자유로웠던 나였을까. 

한국에서 단 세 번 만났던 남자와, 유럽에서 재회했다. 

그것도 나의 부름으로, 그는 기꺼이 여름휴가 4박 5일을 과감히 내어 성수기 티켓을 끊고 파리로 날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약속하며 꿈꾸는 사이가 되었다. 



그가 돌아간 후, 나는 다시 돌아갈 한국에서의 생활을 다시 한번 꿈꾸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든가, 연애라든가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의 행복한 일상을 '함께 나누었던' 그 경험 하나로 그는 내게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장 화려하고 행복한  나의 일부분을 소유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연애에서의 가장 현실적인 조언은, '내가 가장 행복할 때 만난 사람을 사랑하라'라는 것이다. 그 사람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스스로 행복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을 만나야 그 사람과의 미래가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만난 이 인연이 내가 가장 홀로 잘 서 있을 때 만난 인연이라 가장 길게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가장 사랑한다는 말은, 가장 심하게 집착하고 있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가장 열정적이라는 말은, 상대와 아메바처럼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나타낼지도 모른다. 너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은, 나를 위해서 너를 착취할 것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파괴적인 '사랑'의 의미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내게, 그때의 그 인연의 선택은 너무도 적절했는지도 모른다. 


정열적이라기보다는 평온했다. 

없어도 될 것이었지만,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가 내 인연이 아니라면 나는 그대로 다시 여행을 하면 될 것이었고, 

그가 나를 기다린다 하니 한국으로 돌아갈 생활이 기대되며 다시 한번 살아볼까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은근하게, 그리고 강렬하면서도 평온하게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가 4박 5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파리를 떠난 후, 이상하게 혼자 남은 파리가 재미가 없어졌다. 분명 그 이전에는 여기저기 쏘아다니며 즐겁게 깔깔 혼자 웃고, 잘 사 먹고 잘 지내던 나였는데 프랑스 파리 자체가 이상하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변해버린 4박 5일.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하게 된 것일까? 이렇게 빨리?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남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세 번의 만남과, 낭만적인 프랑스에서의 4박 5일이 전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나를 만나러 지구 반바퀴를 돌아왔다는 그 남자일까? 아니, 나는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다면 프랑스일까? 아니, 프랑스 또한 내 환상으로 가득하게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고작 열흘 정도 지내봤을 뿐이다. 아니면, 나의 자유로운 지금의 상태일까? 혼자 있어도 괜찮고,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더 좋다고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나의 감정에 드디어 솔직하게 된 ' 나 자신'과 사랑에 빠진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유롭게 허용함'이었다. 


사랑이란 거창한 이름 하에 옭아매는 속박이 아닌, 

열정이란 이름하에 질투를 사랑이라 여겨 올가미 안에 넣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착각으로 서로를 보지 못해 일어나는 '콩깍지 현상'이 아닌, 

'너를 위하여'라는 말로 보호라는 미명아래 일어나는 자유강탈이 아닌, 

그야말로 진정한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곁에 있음.이었다. 

그것이 내가 하는 다음 단계의 사랑일 것이었다. 


지금 내가 사랑에 빠진 '저 남자'는 나의 자기 관념의 투사에 불과했다.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며 그리워하는 그 어떤 사람. 


사실, 나를 가장 이해하고 사랑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이해하고 바라봐줘야 하는 그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그의 도움이 살짝 필요한 것일 뿐, 궁극적으로는 그런 사랑의 눈빛으로 나를 봐주는 이가 타인이 아닌 ' 나 자신' 이어야 함을 깨달은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그가 떠난 호텔 뒤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프랑스 여행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느꼈다.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몽빠르나스 역으로 떠나, 생장 피 드 포르 로 향했다. 


까미노 드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는 바로 그 곳이었다. 


#퇴사여행기

#유럽여행기

#프랑스여행기

#여행 중 사랑이야기

#자아발견


이전 23화 파리, 한국에서 나를 찾아온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