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다시, 태어나는 중입니다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을 준비하며

by 파랑새의숲

내 삶을 다시 '태어난 아기’로 리셋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아기의 양육을,

낯선 세상의 이방인들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서른 살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시원하게 뻥 뚫린 고층 한강 뷰,
맑은 하늘 아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런데, 그 멋드러진 풍경 앞에서
이상하게도 숨이 턱 막혀왔다.
그것도 지금 당장 질식할 것처럼.


화려한 경력도, 안정된 월급도,
남부럽지 않은 회사도,
그 통창 너머의 멋진 한강뷰도
더 이상 내 삶을 지탱해주지 못했다.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다.
내 안에 어떤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이.
이만하면 완벽하다 생각했던 삶에 난 틈 사이로
감정의 누수가 시작되었다.


가족, 연애, 회사. 나의 삶.
나도 모르게 묻어둔 온갖 감정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그저 흐르게 두니,

내가 전혀 모르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까지 무심하고 차갑게 억눌러왔기에
지금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
분노, 짜증, 억울함, 두려움…


이것들을 그동안 어찌 모른 척했을까.
어쩌자고 그렇게 깊이 파묻었을까.


강둑이 무너져 물난리가 났다.
남 보기 좋게 가꿔놓은 내 ‘페르소나의 도시’에
큰 홍수와 쓰나미가 덮쳤다.


생각해보니,
이제까지의 삶은 뭔가 늘 빠져 있었다.
이상하게 모든 관계가 공허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그 공허함은 ‘나’라는 존재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관계의 중심에 있어야 할 '나'라는 알맹이가 없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딸,
연애에서는 젊은 여성,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


교육받고 훈련된 대로 역할은 꽤 잘 해냈지만,
정작 있어야 할 ‘나’라는 깊은 자리는 텅 비어

거대한 인형극 속 주인공처럼, 겉만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원래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나 아닌 것들에 둘러싸여 잊힌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중심이 서지 않으니

사람도, 일도, 다 겉만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역할로만 존재하던 나는 탈진했고,

어느 순간 숨이 막혀왔다.


내면 깊은 곳에서 강력한 욕망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나를 만나고 싶다.


이젠 바꿔야 한다.
아니, 지금의 나를 한 번 죽여야 한다.

왜냐하면, 살고 싶으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나'를 존재로서 찾는 여행을 시작해보자고.

다시 태어나보자고.


그 욕망은 나를 가장 낯설고,

내가 내 삶에서조차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내 삶을 초기화하듯,

낯선 곳에서 ‘다시 태어난 아기’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엄마와 가족이 아니라
낯선 세상의 이방인들에게

그 아이의 양육을 맡겨보기로 했다.


아무도 현재의 나를 모르는 가장 낯선 곳.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가 교차하는 도시.


성당이었다가 모스크,
다시 성당, 또다시 모스크가 된

존재의 의미를 바꾸는 건축물, 아야 소피아가 있는 곳.


아시아와 유럽을 모두 품은,

대륙과 대륙을 잇는 도시.

경계의 도시 이스탄불.



현재의 삶을 버리고,

거기서 나는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모두의 만류와 훼방을 뒤로하고
비행기를 오픈티켓으로 끊었다.


돌아오는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

숙소도, 중간 비행기표도, 기차도
아무것도 예약하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여기 이곳과의 삶과는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은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이 낯선 길에서 나는 아기로 다시 태어나고,
길 위의 이방인에 의해 성장해 자라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철저히 예측되지 않는, 낯선 삶이어야 했다.


그렇게, 지금의 아이폰이 없던 시절
2G 휴대폰은 집에 꺼둔 채,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론리 플래닛 한 권과 옷 몇 벌을
30리터 배낭에 넣고
어느 날, 나는 홀연히 떠났다.


단지 하나, 출발 도시행 티켓만 들고.


이. 스. 탄. 불.


그곳에서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여행에세이

#유럽여행기

#심리여행

#자기발견

#인생전환점

#다시태어나다

#나를찾는여행

#내면여행

#자기성장

#경계의도시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삶의초기화

#심리치유여행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