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조각하는 법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 본다.
We see things not as they are, but as we are.
–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
어릴 적 동화책 속에서 늘 보아오던 나라, 스위스.
내게 스위스는 언제나 ‘언젠가 꼭 가야 할 환상의 땅’이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갈 때,
마치 책 속 그림 한 장면에 들어서는 듯한 설렘이 있었다.
동화같은 알프스를 기차로 횡단하던 그날,
열차 안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백인, 그리고 그의 곁에는 체구가 크고
덩치가 엄청 큰, 인상도 험악해 보이는 흑인이 들어와 내 근처 옆 자리에 앉았다.
생각지 못하게 너무도 큰 몸집이었고, 내가 보아오던 흑인들보다 더 검었다.
가지런히 내보이는 하얗게 빛나는 이빨이 드러내는 환한 미소를
내게 건넴에도 불구하고, 난 덜컥 겁부터 났다.
그 낯선 외모에 나는 순간 움찔했달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별별 나쁜 상상을 다 했던 것 같다.
그때 겁먹은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그 옆에 있던 백인이 내게 말했다.
저 친구 어떤 거 같애?
저 친구가 들어오니까 이 기차안에 사람들이 다 움찔하는 거 같아.
이상하게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저 친구는 겉은 아주 검지만, 속은 아주 깨끗한 하얀색인데도 말이야.
말끝에 흑인 친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나를 보고 환히 웃었다.
Outside Black, but Inside Clean White!
밖은 까맣지만, 안은 깨끗한 하얀색이라니까.
나는 잠시 전, 그의 외모만 보고 움찔했던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내 속은 어떤 색일까? 혹시나 반대는 아닐까?
Outside kind, Inside black?
겉은 친절하지만, 안은 시커먼?
물론 우리는 겉과 속이 늘 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다르다면 안쪽이 깨끗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였는데, 다른 이를 겉모습만으로 이렇게 반대로 오해하다니.
편견은 이토록 쉽게 내 안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구나.
뼈아픈 자각과 함께, 그 만남은 그 후로도 오래도록
내 안에 숨어 있던 편견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스위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맑고 푸른 잔디밭, 청명한 공기, 눈부신 알프스.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풀밭에 누워
나는 어린 아이가 된 듯 잔디를 뒹굴며 웃음을 되찾았다.
그곳에서 대학생 배낭여행자들과 우연히 합류했다.
그들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된 대학생활의 자유를 누리며
더 큰 세상을 만나는 여행이었지만,
내 여행은 잊혀졌던 나 자신을 치열하게 만나는 여정이었다.
같은 길 위에 있어도,
20대와 30대의 여행은 달랐다.
나는 그들의 젊음과 활기를 부러워하다가,
문득 내 20대는 왜 저렇지 못했을까를 돌아보았다.
그들과 함께 웃고 사진을 찍으며 알았다.
내 삶에 가장 결핍된 것은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을 나눌 친구의 부재였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살았을 뿐이다.
왜였을까?
상대가 금세 내 이야기를 흘려버릴까 두려웠다.
동정 섞인 눈빛만 남기고 잊어버릴까 허무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닫아버린 문이, 오히려 나를 더 고립시켰다.
하지만 알프스에서, 젊은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뛰놀던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사실, 진정으로 이해받고 싶었던 거구나.
내 이야기가 소중하게 여겨지길 바라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내'가 먼저 들어주어야 하는구나.
스위스는 단순히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
그곳은 내가 피하고 있던 진실을 드러내 준 장소였다.
세상이 던져준 편견의 시선을 벗어나,
나는 이제 내 눈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
겉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내 안의 결핍을 외면하지 않으며,
조금씩 나만의 기준과 생각을 세워가는 과정.
그것은 마치 사춘기와도 같았다.
흔들리고 불안정하지만,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나의 시선’이 생겨나는 시기.
우리나라에서 나는 '입시'와 '대학'이라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 여기며
사춘기를 유예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슬프게 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며,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모두 유예해 왔음을.
그렇게 사춘기가 서른이 넘는 지금까지 유예되어 왔음을.
그리고 물리적으로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해서
나의 시각이 새로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을 만나고,
다른 에너지를 가진 이들과 섞이며,
내가 누구인가 나의 색깔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치열하게 자신에게 묻는 과정임을.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알프스의 청명한 공기와 투명한 하늘은 내게 속삭였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너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스위스에서 나는 다시 배웠다.
사춘기란, 단순히 혼란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내 시선을 만드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그토록 그리던 환상 속 나라에서,
나는 또다시 한 걸음,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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