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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 내 안의 색을 깨우다 — 니스에서

- 나의 정직한 감정 속에 숨은

by 파랑새의숲
타인에게서 짜증나거나 부러운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내 안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Everything that irritates us about others can lead us to an understanding of ourselves.

— 칼 구스타프 융, 분석 심리학


스위스를 지나 프랑스로 들어오면서, 나는 따뜻한 햇살 같은 도시를 갈망했다.
마침내 도착한 니스는 내게 그렇게 웃어 주는 곳이었다.


그날의 바다는 내 생애 가장 찬란한 푸른빛이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눈부시게 반짝였고,

나는 그 풍경 앞에서 숨이 멎는 듯한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햇볕을 피하려 양산을 들던

한국인 여행자들의 모습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이 햇살 속에서 태닝을 하고 싶어졌다.


니스는 다양한 색채의 도시였다.
화가 앙리 마티스의 미술관을 향해 걷던 길에,

노숙자에게 돈을 건네며 “Ça va?” 하고 밝게 웃는 한 행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짧은 인사와 미소가 노숙자의 얼굴을 밝게 바꿔놓는 순간,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는 왜 두려워하며 고개를 돌렸을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부끄러움은 내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무채색의 나, 색채의 각성


마티스의 그림들 앞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 삶은 늘 흑백이었다.
검은 옷, 회색, 흰색, 화장기 없는 얼굴,

심지어 크게 차려야 할 자리가 아니면 액세서리 하나 없는 몸.

나는 그것을 ‘순수함’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앙리 마티스의 원색 가득한 그림들을 보면서,

노란 햇살과 강렬한 태양, 짙은 색의 바다를 보면서

붉은색이 움트고, 노란색이 깨어나며, 푸른색이 마음속 깊이 퍼져나갔다.
초록색은 나를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내 안에 그동안 숨죽여 왔던 색채의 에너지들이 한꺼번에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며 수많은 색의 립스틱을 다루었지만,

정작 스스로는 ‘나는 그런 가벼운 여자가 아니다’라며 색을 외면했다.

그러나 진실은 달랐다.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부러움이었다.

그토록 색채 있게,

형형 색색의 화장품들을 즐기며 다채롭게 살고 싶은 나의 깊은 욕망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강렬히 억눌러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러움을 정직하게 인정하다


그때 깨달았다.
매일 무슨 색 립스틱을 바를까 고민하던 여성들은,

내가 너무 하찮은 것들에 목숨 건다며 얕잡아보려 애썼던 그녀들이

사실 나보다 더 솔직했다는 것을.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않았고, 색채가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비꼬며 철학책이나 심리학책을 읽으며 고고한 척해왔다는 것을.


그러나 프랑스 니스에서, 앙리 마티스 박물관을 나오면서

너무나도 예쁜 바다색을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서로 애정 표현을 하는 커플들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깊은 욕망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잘 꾸미는 화려한 여자가 부러웠다.
돈이 많아 형형색의 립스틱에서 행복을 느끼는 부자가 부러웠다.
부모 덕에 잘 사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큰 굴곡 없이 웃음을 지으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삶에는 잘못이 없었다.

그저 내가 그것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마주하고 나니,

부러움은 더 이상 비겁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저 내 안의 진짜 욕구를 보여주는 정직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자 내 안에 그토록 구겨져 있던 욕망들이

답답한 갑옷을 깨고 나오듯이

서서히 물밀듯 흘러나와 나를 다양한 색채로 물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할 준비


니스의 햇살 아래, 바닷가에서 한 커플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보았다.

예전같으면 망측하게 사람 많은데 뭐하는 짓이냐며 고개를 돌렸을 테지만,
그 순간, 그들이 눈물이 날 만큼 부러웠다.


그 예뻤던 바닷가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제야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부러움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색채로 깨우는 시작이었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내게 내 안의 색채를 되찾아준 도시, 프랑스 니스.
부러움을 비웃음 뒤에 감추는 대신, 그 감정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자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고,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준비가 된 여인으로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성장해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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